[영옥씨의 미술바구니] 10. 너는 전시만 보러가니? 나는 봄구경도 간다 기사의 사진
봄이 오고 있는 석파정의 뜰 풍경
요즘 회사가 있는 여의도를 향해 올림픽대로로 빠져나오는 출근길에 전에 없던 즐거움을 만납니다. 도로 조경으로 심어놓은 개나리의 개화가 시작돼 ‘노랑 본색’을 조금씩 드러내는 걸 지켜보는 일입니다. 차를 확 꺾어 야외로 나가고 싶은 충동이 일기도 하지요.

지난 19일 강원도 원주 오크밸리의 ‘뮤지엄 산(SAN·옛 한솔뮤지엄)’을 다녀왔습니다. 산 중턱에 위치해서 그런지 5월이면 보랏빛 물결을 이룬다는 패랭이꽃은 아직은 누렇게 시들어 있더군요. 하지만 봄기운이 완연했습니다. 햇살은 따스하고 바람은 어찌나 부드러운지 습관처럼 두르고 나온 겨울 머플러가 민망했다니까요.

일본의 세계적 건축가 안도 타다오(73)가 설계한 미술관으로 가기위해선 지그재그로 이어지는 긴 돌담길을 걸어야 합니다. 기다림의 시간을 의도적인 동선을 통해 만든 것으로, 그 자체가 명상의 통과 의례인 셈이지요. 플라워가든, 스톤가든 등 야외 곳곳에는 알렉산더 리버만, 헨리 무어 등 유명 조각가들의 작품이 멀리 나지막한 산을 배경 삼아 설치되어 있는데, 그 풍광이 무척 여유로워보였습니다. .


뮤지엄 산 입구 풍경



미술관으로 봄마중을 가보는 건 어떨까요. 우선 미술관 자체가 산을 끼고 있어 싸한 흙냄새를 맡으며 물 오른 나무의 연두빛 아우성을 들을 수 있는 곳이어야 제격이겠지요. 물론 잘 짜여진 기획전은 기본입니다.

‘뮤지엄 산’에서 20일 개관한 ‘하얀 울림-한지의 정서와 현대미술전’은 현대미술로서의 한지 40년사를 보는 듯합니다. 창호지나 기름병을 싸던 종이, 혹은 서예의 바탕으로서만 존재해왔던 한지는 1980년대부터 현대적 조형 매체로 활발히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요즘에는 사진작품에도 응용이 돼 한지의 무한변신을 엿볼 수 있습니다. 단색화의 대가 박서보에서 젊은 사진작가 이정진까지 세대를 아우른, 작가 40여명의 작품 100여점이 총집합했더라구요. 너무 많은 작품이 걸려 선택과 집중이 부족한 게 옥의 티라고 할까요.

전시는 조형미를 보여주는 한지, 지지체(바탕)로 쓰인 한지, 섬유질로서의 물성을 보여주는 한지 등 세 갈래로 나눠 진행되고 있습니다. 중장년에게는 한지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살았던 유년의 기억을 건드리는 전시가 될 것 같더군요.

‘뮤지엄 산’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상설 전시되고 있는 미국의 설치미술가 제임스 터렐의 5개 작품입니다. 빛을 공간에 가둠으로써 명상의 공간을 연출하는 그의 작품은 어떤 설명으로도 형용하기 힘듭니다. 오감으로 경험하는 게 최고지요. 입장료는 갤러리권(조각공원+미술관)이 1만5000원, 제임스 터렐관을 합친 뮤지엄권이 2만8000원입니다. 가족 단위로 보려면 얼핏 비싸다는 생각이 들 수 있는 가격입니다. 하지만 터렐의 작품을 보러 일본 나오시마 원정 견학을 가는 미술학도도 꽤 많은 걸 감안하면 보고 나면 후회하지 않을 듯 합니다. 미취학아동은 무료입니다. 8월 30일까지(033-730-9022).


뮤지엄 산 기획전에 출품된 권영우의 ‘무제’


서울 안에서도 산을 낀 전시공간에 볼만한 기획전을 갖춘 전시를 찾을 수 있습니다. 인왕산 자락, 조선시대 흥선대원군의 별서였던 석파정을 끼고 있는 서울 종로구 부암동의 서울미술관입니다. 이 곳에선 이탈리아 ‘국민조각가’ 노벨로 피노티(76)의 회고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전시 제목은 ‘노벨로 피노티: 본 조르노’전. ‘본 조르노’는 이탈리아어로 ‘안녕하세요’라는 뜻이랍니다. 그는 1966년과 1984년 두 차례 베니스비엔날레 이탈리아 대표 작가였고, 로마 성 베드로 성당의 교황 요한 23세 납골당 조각 작업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한국과는 2004년 부산비엔날레 초청작가로 인연을 맺어 을숙도 조각공원에서 그의 작품을 볼 수 있습니다.


서울미술관 석파랑 사랑채에 전시된 ‘의식’


출품된 38점은 대리석과 청동 등 고전적인 조각 재료를 사용하고 있어요. 그러면서도 과감한 생략과 마무리를 통해 구상과 추상을 절묘하게 섞으며, 특히 절단된 인체가 거의 공통적으로 등장합니다. 작가는 “2차대전 당시 수레를 타고 피난 가던 한 가족이 폭탄에 맞아 온몸이 산산조각난 걸 눈앞에서 봤다”며 전쟁 트라우마와 관련이 있음을 시사하더군요.

작품은 실내뿐 아니라 석파정 잔디공원 곳곳과 사랑채에도 설치돼 있습니다. 사랑채에는 소녀 두상을 대리석으로 조각한 작품 ‘의식’을 앉혀 놓았습니다. 마치 손님으로 온 서양 소녀가 인왕산 자락의 풍경을 내다보며 명상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런 석파정 뜰을 거니며 이 봄날, 예술에 취해보는 건 어떨까요. 입장료는 일반 9000원, 대학생 7000원, 초등고생 5000원입니다. 5월 17일까지(02-395-0100).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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