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희의 맛있는 e담화] 18. 미·일 허니문 즐기는데 왕따가 ‘축복’이라니 기사의 사진
"일본군 위안부는 인신매매 피해자"라며 정부의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이명박정부 초대 경제수장을 지낸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돌직구 스타일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자 미국 은행들이 돈을 빼가면서 외환시장이 요동을 쳤다. 그해 10월 워싱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과 세계 중앙은행 총재 회의에 참석한 강 장관. 휴식시간 헨리 폴슨 당시 미 재무장관과 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에게 다가가 불쑥 “I need swap”(교환을 원한다)을 외쳤다. 뭘 바꾸자는 건지 몰라 어리둥절한 두 사람을 보고 신제윤 당시 기재부 차관보가 끼어들었다. “not wife swap, but currency swap”(부인을 맞바꾸자는 것이 아니라 통화 교환을 원한다)

강 장관은 며칠 뒤 뉴욕으로 가 로버트 루빈 전 재무장관과 지한파로 알려진 빌 로즈 씨티그룹 부회장을 만나 “어려울 때 친구가 진짜 친구다”며 매달렸다. 루빈 전 장관을 통해 통화스와프 체결의 결정권을 쥔 3인방 중 한 명인 티머시 가이트너 뉴욕연준 총재를 움직이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해서 신흥국으론 처음으로 외환시장을 안정시킬 한·미 통화스와프가 체결됐다.

얼마 전 사석에서 만난 전직 장관은 “요즘 우리 외교라인은 뭐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어차피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이든,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든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통화스와프 선물이라도 얻어냈어야 했다”고 한탄했다. 사드의 한반도 배치를 압박하는 미국과 AIIB 가입을 종용해온 중국 사이에서 우리나라는 영락 없이 ‘고래 싸움’에 낀 새우였다. 영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이 맹방인 미국에 등을 돌리고 AIIB로 달려가고 미국이 “AIIB 가입은 각 국가가 결정할 사안”이라며 여지를 두자 뒤늦게 우리 정부는 AIIB에 합류했다.

G2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 체면 구긴 한국 외교

중국 주도의 AIIB 가입을 미루고 미국과 손을 잡은 일본은 “이보다 좋을 순 없다”며 허니문을 즐기는 중이다. 두 나라는 경제·군사협력을 강화할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체결과 미·일 방위협력지침 개정을 준비하고 있다. “나는 열렬한 아베 지지자”(존 매케인 미 상원의원), “아베 총리는 위대한 비전과 평화의 인물”(데이비드 시어 미 국방부 아·태담당 차관보) 등 미국에서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에 대한 찬사가 쏟아지고 있다. 그가 이달 말 들고 올 ‘큼직한 선물’을 기대해서다. 아베 총리가 54년 만에 미 상·하원 합동연설 기회를 얻어낸 것도 지일파 미 의원들을 활용해 공들인 일본 외교의 성과다.

이 틈을 타 아베 총리는 “일본군 위안부는 인신매매의 희생자”라며 막나가고 있다. 미국 정가에선 역사 문제 일변도의 한국에 지쳤다며 ‘한국 피로증’까지 나온다는데 한국 외교수장은 “미·중 양측으로부터 러브콜을 받는 상황은 골칫거리나 딜레마가 아니라 축복”이라고 했다니 착각이 지나쳤다.

“언론에서 우리가 강대국 사이에 끼었다며 ‘아이코 큰일 났네’ 하는데 너무 그럴 필요 없다” “우리는 의연하게 여러 정보를 갖고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결정하는 것이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도 구차한 변명으로 들리기는 마찬가지다.

북핵을 이고 사는 우리나라로선 G2(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절묘한 줄타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양국의 눈치만 살피면서 과거사를 왜곡하려는 일본에 뒤통수를 맞은 지금의 모습은 보기 좋지 않다.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은 “내치에서의 실수는 선거에서 지면 그만이지만 외교에서의 실수는 국가의 파국을 초래할 수 있다”고 했다. 와닿는 말이다.

이명희 국제부장 mhe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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