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호 문화비평] ‘요리하는 멋진 남자’ : 예능테마로 급부상한 요리본능 기사의 사진
사진= KBS·tvN 방송화면 캡처
TV에서 새롭게 뜨는 셰프들, 예능프로 흥행변수될까

셰프 열풍이 뜨겁다. 그것도 셰프녀(女)가 아닌 셰프남(男)이다. 셰프남들의 현란한 요리솜씨에 경탄하고, 그들의 예능끼에 아낌없이 박수를 보낸다. 경쟁적인 TV출연으로 셰프남들이 새로운 예능인으로 뜨고 있다.

방송가에서 셰프남의 몸값이 치솟는다. ‘먹는 방송’ 소위 먹방으로 재미보던 방송사들마다 ‘요리하는 방송’, 이른바 쿡방(Cooking과 방송의 합성어)하느라 동분서주한다. 타방송사에서 검증되고 명성있는 셰프남을 스튜디오에 모시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셰프남은 말 그대로 점점 금값 예능인이 되어간다.

셰프 열풍은 올초 불어닥쳤다. 지난 1월 국내 개봉된 영화 <아메리칸 셰프>는 비록 흥행은 저조했지만 미국인 셰프들의 일상세계를 엿보게 만들었다. 이어 2개의 TV방송프로그램이 ‘요리하는 멋진 남자’라는 흥행의 코드를 심어놓았다. 이들 프로는 단숨에 인간 내면의 원초적 ‘요리본능’을 강하게 자극하고 나왔다. 다름아닌 KBS의 글로벌 대기획 <요리인류>(연출 이욱정 등)와 tvN의 <삼시세끼-어촌편>(연출 나영석 등)이다.

3년간 24개국을 돌며 제작한 다큐 <요리인류>는 요리하려는 인간의 원초본능을 강하게 자극했다. 반면 <삼시세끼>는 ‘차줌마’라는 아마추어 셰프남의 숨겨진 매력에 흠뻑 빠지게 만들었다. 또 <요리인류>가 역사적으로 ‘요리인류’가 갖는 인류문화사적 해석에 천착했다면 <삼시세끼>는 바로 ‘나’자신이 요리하는 주체라는 새로운 각성을 강조했다. 다시말해 <요리인류>가 인간이 ‘먹는다’는 행위에 대한 철학적, 문화적 내러티브였다면 <삼시세끼>는 차승원을 통한 요리행위 실천이란 행동주의적 로망을 제시해놓았다.

<요리인류>를 제작한 이욱정PD는 방송PD이자 그 역시 셰프남이다. 이PD는 <누들로드>(2008)와 <주방의 철학자-한식을 논하다>(2009), <셰프의 탄생-500일의 레시피>(2012년)을 선보였다. 국수 등 면(麵)의 역사를 짚었던 다큐멘터리 7부작 <누들로드>를 마치고 KBS를 휴직한 뒤 세계적인 프랑스 직업요리학교 ‘르 코르동 블루’에 입학해서 전문세프로도 변신했다. <요리인류>는 이 학교 최고급과정을 졸업한 셰프로서 만든 첫 작품이다. 단순히 요리가 아니라 인류문화사적 관점에서 요리가 내포한 종교적, 철학적 의미를 고증하고 재해석했다. 그래서 <요리인류>는 제작진 말대로 ‘요리에 숨어있던 인류의 무한한 창의성을 감각적인 영상과 스토리로 버무린 프로그램’이다.



<요리인류> 6편 ‘영혼의 맛, 빵’은 생명과 나눔의 상징

<요리인류> 6편 ‘영혼의 맛, 빵’은 인류의 주식인 빵을 ‘나눔의 의미’로 해석했다. 성경의 오병이어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명을 먹이고도 남았다는 예수가 행한 기적을 말한다. 예수가 ‘최후의 만찬’에서 빵을 12제자에게 나눠주며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는 구절을 종교적으로 심도있게 분석했다. 예수가 자신의 몸을 제물로 받친 대속의 의미가 녹아있다. 이때 빵은 생명과 나눔을 상징하는 인류요리다. 그런 점에서 빵으로 시작된 인류의 요리는 그저 생존을 위해 식재료를 단순가공하는 행위는 결코 아니다. 어쩌면 이 표현이 적절할 것이다. ‘나는 요리한다. 고로 나는 인간이다’

이와달리 tvN의 <삼시세끼-어촌편>은 셰프예능에 불을 당겼다. 매일 3번의 식사에 맞춘 리얼다큐다. ‘맛있는 요리를 만들겠다’고 음식솜씨를 보여주는 기존 쿡방과는 다른 장르다. 물적 욕심에 사로잡힌 도시인은 삼시세끼라는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에 그다지 충실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요리는 인간본능이라는 점을 제작진은 꿰뚫어보았다. 하루종일 삼시세끼로 동분서주하는 출연자들의 ‘원시적인 어촌일상’은 철저한 자본논리와 도시중심 사고를 허물었다. 유기농 텃밭에서 뽑아올린 무 한개, 어망에서 막 건져올린 작은 물고기 한마리의 가치를 되새겨보는 사색의 시간을 할애했다.

여기서 ‘차줌마’ 차승원의 요리솜씨는 남자로서는 진기하고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기존 여성적 시각에서 본다면 차승원의 요리는 사실 별거 없다. 여느 여성들의 요리솜씨에 비래 별로 나을 것도 없다.


‘요리하는 멋진 남자’는 남녀평등의 패러다임의 산물

하지만 드라마틱한 반전이 있다. ‘요리=여성 몫’이라는 고정관념을 여지없이 무너뜨려 버렸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고의 영화배우, 그것도 멋진 남자 차승원이 셰프남이다. 그런 그가 ‘나만을 위해’ 맛있는 요리를 만든다. 이 사실만으로도 여성시청자 가슴을 울렁거리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아울러 남자들의 요리본능도 일깨웠다. 더 이상 ‘요리하는 남자’가 품격이 떨어지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사실 우리사회를 지배해온 유교문화는 남녀의 역할을 구별하도록 요구해왔다.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면 큰 일을 못한다’는 전통적인 유교적 가르침은 인간의 요리본능을 억누르도록 하는 심리적 억압기제로 작용했는지도 모른다. 사회 전체로 퍼져가는 수평적 관계의 남녀평등의 패러다임은 이런 남녀 역할의 벽마저 허물어뜨리고 있다. 남성이나 여성 어느 한쪽관점에서 바라보면 분명 ‘여성의 남성화’ 내지 '남성의 여성화’로 폄훼할지도 모르겠다.

요즘 TV예능 대박테마를 PD들은 몇가지로 꼽는다. 여행, 육아, 독신, 경연, 군대, 그리고 쿡방이다. 이중에서 쿡방은 먹방을 대체하고 있다. 요즘 연예인들이 직접 요리하는 쿡방은 출연자나 시청자들 모두에게 내면의 요리본능을 순식간에 되살려놓는다. ‘나도 한번 해볼까?’ 어쩌면 노래방이 아니라 조만간 ‘요리방’이 성업할지도 모를 정도다.

그러다보니 ‘주방장’ 셰프들이 TV예능인으로 거듭나고 있다. ‘세프’(chef)란 단어가 주는 묘한 설레임과 기대는 누구에게나 있다. 셰프남들의 거침없는 입담과 끼, 게다가 외모까지 받쳐준다면 이들은 새로운 예능인으로 손색이 없다.

대표적인 프로그램이 jTBC의 <냉장고를 부탁해>(연출 한선준 등). 게스트의 냉장고를 통째로 들고 와서 그 안의 식재료만을 갖고 셰프들끼리 경쟁하는 요리경연이다. 고정출연 셰프인 최현석, 샘 킴, 정창욱, 미카엘 아쉬미노프는 이미 유명세를 타고 있다. 15분의 짧은 시간에 제한된 식재료를 갖고 만들어내는 셰프들의 요리솜씨에 게스트들은 입을 다물지 못한다. 지난 3월 30일 jTBC <냉장고를 부탁해>에 출연했던 이연복 세프는 KBS 대표주말 예능 <1박2일>에 출연까지 했다. 화려한 그의 중식요리 퍼포먼스가 단연 화제였다.



jTBC의 <냉장고를 부탁해> 가세로 거대한 요리담론을 형성

셰프대세론에 기존 먹방 TV프로그램들도 포맷을 고민할 수 밖에 없다. 시청자들이 맛있게 먹는 장면을 그저 바라만 보기보다는 시청자들이 주방에서 요리하고픈 본능을 충족해야하기 때문이다. 현재 방송되는 먹방 TV프로그램이 적지 않다. MBC 에브리원의 <식신원정대>를 비롯해 KBS <생생정보통>과 의 맛집찾기, MBC의 <찾아라! 맛있는 TV>, EBS의 <최고의 요리비결 플러스>, 케이블 올리브의 <오늘 뭐 먹지>, SBS CNBC의 <식객남녀 잘 먹었읍니다>등이다. 이렇게 TV를 통해 일주일간 방송되는 먹방 또는 쿡방 프로그램만 20여편에 이른다.

셰프열풍은 셰프를 드라마 주인공으로도 등장시켰다. 50부작 주말드라마 MBC <여왕의 꽃>은 불과 방송 6회만인 지난 3월 29일 15.1%라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셰프 레나정(김성영 분)과 외식사업본부장 박민준(이종혁 분)의 열연이 돋보인다. 역시 tvN도 6일부터 <식샤를 합시다>시즌2를 내보낸다.

<요리인류>와 <삼시세끼>는 이렇게 우리사회에서 요리담론(談論)을 새롭게 형성해가고 있다. 이 프로그램들은 인간의 원초적 요리본능을 깨우고는 주요 예능소재로 뒤바꿔놓기도 했다. 과연 셰프남들이 시청자들의 요리본능을 얼마나 충족시킬지 방송가에서 흥미로운 테마로 지켜보고 있다.

방송문화비평가 alps1959@hanmail.net blog.daum.net/alps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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