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온의 영화이야기] ⑭빌리 조엘의 영화 기사의 사진
빌리 조엘이 만든 역사 공부용 노래 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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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장사’가 된다 싶어서겠지만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00편’처럼 비장하기까지 한 제목의 책이 출간되는 등 영화와 관련해 갖가지 리스트가 나돈다. 식상할 정도다.

그러나 그중에서 적어도 하나는 눈에 띈다. 특이성 때문이다. 가수 빌리 조엘이 꼽은 ‘역사에 남을’ 영화 목록. 어릴 때부터 ‘역사광(狂)’으로 한때 ‘역사선생님’을 꿈꾸었다는 조엘은 스스로의 술회에 따르면 작심하고 젊은 세대에게 역사공부를 시키기 위한 노래를 만들었다. ‘우리가 불 지르지 않았어(We Didn't Start the Fire)'. 1949년생 미국판 베이비부머(6·25 이후 세대인 한국과는 다소 다르다)인 조엘이 자신의 세대를 대변하는 노래.

49년부터 노래가 발표된 89년까지 약 반세기 동안 일어난 굵직굵직한 역사적인 사건들을 신문 헤드라인 식으로 간명하게 요약하고 있는 이 노래는 물론 세계사적 사건과 인물들로 채워져 있지만 프로야구 월드 시리즈 우승팀같이 지나치게 미국 위주의 사건도 적지 않게 들어가 있다. ‘미국사=세계사’라는 미국인의 왜곡된 대국의식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그것만 빼면 역사공부용으로 손색이 없다. 실제로 여기에는 한국 관련 항목도 몇 개 있다. ‘북한(North Korea) 남한(South Korea)' '판문점(Panmunjom)' '이승만(Syngman Rhee)'.



조엘이 나름대로의 ‘역사 교과서’에 집어넣은 영화들을 보자. 연대순으로 ‘남태평양' '왕과 나’ ‘페이톤 플레이스’ ‘콰이강의 다리’ ‘벤허’ ‘사이코’ ‘아라비아의 로렌스’. 이중 ‘남태평양’과 ‘왕과 나’는 원래 영화로 만들어지기 전 브로드웨이 뮤지컬로 대성공을 거둔 작품들이어서 조엘도 영화보다는 무대극으로 노래에 인용했을 수 있다. 또 ‘페이톤 플레이스’는 1957년에 라나 터너 주연의 영화로 흥행에 성공했고, 1964~1969년에는 TV드라마화해 인기를 끌면서 라이언 오닐과 미아 패로 같은 젊은 배우들을 스타덤에 올려놓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1956년에 발표된 원작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돼 대단히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는 점에서 소설을 지칭한 것이라고 보면 순수 영화작품은 뒤의 4편에 불과하다. 수가 많지도 않을 뿐더러 모두 50~60년대 영화인데 비추어 조엘이 보기에 1970~1980년대에는 아예 ‘좋은 영화’가 없었다는 얘기.

물론 이 4편은 잘 알려진 명작이다. 흥미 있는 것은 그 중 2편이 영국 출신 데이비드 린 연출작이라는 점. ‘콰이강의 다리’와 ‘아라비아의 로렌스’. 린은 두 작품 모두에서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았다. 재론할 여지가 없는 작품들이지만 굳이 설명을 덧붙이자면 ‘콰이강의 다리’는 결과적으로 적군을 위해 다리를 건설할 수밖에 없었던 포로 이야기를 통해 용기와 책임감에 관한 한 최고의 텍스트를 구축한 작품이고, 여자와 러브스토리를 철저히 배제한 채 4시간에 달하는 이야기를 끌고 나간 특이한 구성의 ‘아라비아의 로렌스’는 한마디로 사막에 관한 한 사상 최고의 영화라는 평가를 받는 작품이다.



그런가 하면 윌리엄 와일러에게 역시 아카데미 감독상을 안겨준 ‘벤허’는 할리우드 ‘사극 블록버스터’의 대표선수격으로 작품성과 흥행성 모두에서 그것을 능가할 사극은 여태껏 나오지 않았다. 또 ‘서스펜스의 제왕’ 알프레드 히치콕의 대표작으로 여겨지면서 어떠한 10대 걸작영화 목록에서든 절대 빠지지 않는 ‘사이코’는 세월이 흐를수록 성가가 높아지는, 그래서 종래 B급영화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던 호러영화의 격을 완전히 높여준 작품으로 영원히 기억될 만하다. 이렇게 볼 때 그 숱한 영화 가운데서도 그런 ‘백미’를 골라낸 조엘의 안목을 칭찬할 수밖에.

김상온(프리랜서·영화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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