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표 교수의 연극 이야기] ①내면의 광기를 그려낸 김소희 연출 “갈매기”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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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전돼 있는 내면의 광기를 풀어내다

혈전돼 있는 인간 욕망의 내면성에 ‘연희단거리패’ 대표배우 김소희가 광기적인 내면에 불을 당겼다. 첫 연출로 연극 갈매기를 바라보는 시선이 매섭다.

안톤체홉의 갈매기(2015. 3. 13~4. 12 대학로 게릴라극장)를 들었다. 강렬한 감정을 들고 냉혹한 시선으로 꿈틀 꿈틀거리는 인간 내면의 욕망들과 싸움을 건다.

연극 ‘혜경궁홍씨’, ‘고곤의 선물’,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서 등장인물의 깊숙한 내면을 굵직한 강렬함으로 들춰냈던 배우(김소희)는 없다. 안톤체홉의 갈매기를 새롭게 그려낸 연출로 무대에 섰다. 진실된 내면에 숨어 있던 욕망의 광기들을 배우들을 통해 게릴라 소극장 무대공간에 깊숙하게 던졌다. 마치 노련한 배우 김소희의 감정의 내면성들을 연희단거리패 동료 배우들에게 전이시켜 놨다. 1시간30분 동안 관객의 시선은 무대로 정지시켜 놨다.

인간 내면의 욕망의 표피들은 뒤섞여져 광기의 덩어리를 이룬다. 표피에 붙어있는 욕망의 끈적거리고 흐느적거림을 들어 올렸다. 인간의 추악한 욕망은 내면의 진실성이다. 연출은 묶여져 있는 거대한 욕망의 덩어리들을 배우들의 강렬함으로 파괴시킨다. 인간내면의 욕망들이 강하게 숨을 쉬고 뱉어진다. 무대를 좁히고, 연극적인 밀도감은 높였다. 4막으로 구성된 갈매기인물 내면의 긴 호흡의 흐름은 간결하게 다듬어졌다. 배우들의 대사와 움직임, 장면전환의 간결함으로 진실된 욕망을 찾아 속도를 높인다.

압축된 감정의 욕망들은 테이블 2개와 의자 몇 개로 장면이 자연스럽게 조합되고 조립되면서 무대배경과 장면을 상징화 시킨다. 체홉의 갈매기를 속도 있는 태도로 새롭게 그려냈다.

김소희 연출에 의해 건축된 ‘갈매기’는 신선한 연출적 발상과 시선으로 무대공간의 거리감을 좁혔다. 압축과 생략은 강렬함으로 내면을 풀어낸다. 공간의 생략과 함축성을 연극적인 언어로 밀도 있게 그려내고 있다. 두터운 인간 욕망의 내면들은 배우들의 강렬한 시선과 움직임, 터져 나오는 감정의 폭으로 투박하게 색칠되어지면서도 완공된 집은 섬세하다. 갈매기의 맺힌 한을 힘 있게 풀어내면서 갈매기가 살만한 집을 만들었다.

밖으로 튀어나온 인간의 내면과 욕망, 그리고 밑바닥 에너지

허름한 옷차림. 트레블레프 역을 맡은 배우 윤정섭이 무대 한쪽 막을 주섬주섬 옮긴다. 의자를 옮기고 놓고를 반복한다. 반복의 행동들은 일상처럼 비쳐진다. 김소희 연출은 안톤체홉의 갈매기 1막 ‘극중극’ 장면을 공연시작 전부터 흡수 시켜 입체감 있게 극을 몰고 간다. 배우 윤정섭의 행동이 갈매기의 한 장면을 만들어가는 트레블레프로써 극중 행동이라는 사실을 눈치 챌 때, 니나와 트레블레프의 불안전한 내면의 욕망은 서서히 고리를 물기 시작한다.

니나의 대사 “아버지와 엄마는 내가 여길 오는 걸 아주 싫어해(생략) 하지만 난 이 호수에 끌려서 왔어...갈매기처럼.. 네 생각만 하면서” 자유로운 영혼은 갈매기로 대체되고, 박재된 인간의 욕망과 영혼은 풀려지기 시작한다. 불안전한 내면의 욕망의 고리들을 김소희는 거침없이 당겨 올린다. 극중극은 인간내면의 진실성을 그려내는 공간이다.

연기는 ‘나’의 존재로써 등장인물의 ‘너’가 되는 경계다. 이 경계를 허물 수 있는 것은 내면의 진실성이다. 진실 된 내면의 전류가 나의 존재로 옮겨졌을 때 비로소 등장인물의 ‘너’가 될 수 있다. 극중극을 니나 역을 맡은 배우 조우현을 통해 독백의 함축성을 신체연기로 그려내면서 입체감 있게 배치한다. 피어오르는 욕망 속에서 들어나지 않는 내면의 진실성을 숨김없이 무대로 천천히 들어올린다. 극중극의 장면을 트레블레프의 소리의 공간, 니나의 육체의 공간으로 이원화 시키고 분리함으로써 극 속 갈매기에 등장하는 인간들의 내면의 욕망과 진실성들은 부셔지기 시작한다,

갈라져가는 트레블레프 내면의 욕망은 유명배우인 어머니 아르카디나(황혜림 역)에게 그가 쓴 연극(극중극)이 처절하게 무시당하면서 자유로운 영혼과 욕망은 조각나기 시작한다.

니나의 욕망은 유명작가 트리고린(이원희)에게 옮겨 붙어지고, 트리고린은 트레블레프의 엄마 아르까디나로 옮겨져 욕망의 고리를 형성하기 시작한다. 트레블레프를 향한 마샤(황유진)의 욕망적 시선들이 묶여지고, 파편화된 욕망의 조각들은 혼란스럽게 뒤섞여진다.

혼란스러운 파편의 욕망의 조각들을 연출은 묶고 쪼이면서도 트리고린(이원희)를 통해 숨 돌리기를 한다. 장면과 장면은 탁자 두 개로 붙여지고 간결한 공간구성을 표현한다.

2막, 인간욕망의 고리와 내면의 진실성은 배우들에 의해 관객과 거리를 좁히고 감정을 유지한다. 배우들은 집중과 몰입의 에너지로 싱싱한 인물을 꺼내놓는다. 트리고린과 니나의 만남 장면이다. 연출은 트리고린의 대사를 입체감 있는 장면을 구성한다. 설정이 매끄럽다.

탁자는 칠판이 되고, 두 사람의 욕망은 우울한 희극성으로 연결한다. 작가로서 니나에게 꺼내놓는 ‘강박관념’과 성공의 의미를 연출은 대사로만 머물 수 있는 행간의 의미성을 유괘한 행동과 연출적 발상으로 옮겨낸다. 배우 이원희는 능청스러운 연기로 받아내고 그려낸다. 작가로서 성공한 트리고린의 외형성에는 들어나 있지 않은 갈라진 내면의 이중적 욕망을 유쾌하게 그려 낸다. 갈매기의 비극성을 배우 이원희에 의해서 우울한 비극적 희극성으로 장면을 연결한다. 기대되는 배우다.

3막, 연출은 내면의 욕망을 강렬한 속도로 끌어 올린다. 트레블레프를 사랑한 마샤. 기다림 지쳐서 메드베젠코하고 결혼을 결심한 마샤를 트리고린과 육체의 욕망으로 연결시킴으로써 내면에서 꿈틀거리는 진실성에 고리를 걸고 당겨 올린다. 이어, 트레블레프와 아르카디나가 대립으로 싸우는 장면에서 갈라진 내면의 욕망적 광기로 맞선다. 배우는 굉장한 폭팔력으로 감정을 잡아당긴다. 혈전된 분노는 결핍된 욕망의 내면들과 섞여지면서 배우들의 연기를 통해 용해되고 다시 혈전된다.

배우 윤정섭은 잠재되어 있던 인물의 강렬한 내면성을 폭발력 있게 터트려 냈고, 아르까디나 역의 황혜림은 트레블레프와 트레고린, 그리고 니나로 이어지는 내면의 혼란스러운 욕망의 고리들을 한 인간으로써 감정을 풀어헤친다. 덜컹거리는 손으로 입술로 옮겨지는 빨간 립스틱은 갈라지고 찢겨진다. 유명한 여배우의 존재에서 한 인간의 욕망만 꿈틀된다. 내면의 진실성은 찢겨지고 갈라진 채로 무대 밖으로 꺼내놓는다.

트리고린을 향한 아르까디나 소유의 욕망은 “(떨면서) 안돼요. 안돼요... 보리스 나는 평범한 여자예요. (생략) 제발 날 괴롭히지 말아요. 보리스... 난 무서워요” 한 여자로서의 욕망의 시선은 흐트려진채로 꺼내진다. “(생략) 당신을 진정으로 아는 건 이 세상에 나 뿐이예요. 당신한테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사람도 나 뿐이예요. 아름다운 보리스, 나의 보리스, 날 떠나지 않겠죠? 같이 가는 거죠?” 연출은 이 장면을 통해 성공한 여배우 화려함 뒤에 감춰져 있는 강렬한 내면의 욕망과 진실의 이중성을 배우 황혜림을 통해 감정의 볼륨을 높여내면서 극대화를 시켜낸다.

강렬하게 감정을 쏟아내고 있는 아르카리나의 내면성을 트리고린 역의 이원희가 느슨함으로 대립되는 감정으로 받아내면서 아르카리나의 욕망은 극대화 된다. 내면의 진실성을 외치지만 진실의 종점은 발견되지 않는다. 사악한 인간의 욕망에서 섞이고 혈전되어 있는 박재된 진실성만 비춰질 뿐이다. 연출은 이러한 모순된 욕망의 덩어리들을 고리에 묶어 한꺼번에 들어올리기를 한다. 도시로 떠나는 장면이다. 연출은 인간들의 내면들을 강렬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정거장을 향해 걸어가는 인물들의 형상을 하나의 연결적 이미지와 움직임으로 중첩시킨다. 인물들의 움직임과 시선을 단순화 시킨다. 인간의 내면은 고리를 물고 있는 끈적거리는 욕망의 덩어리들로 형상화 한다. 희곡 갈매를 통해 내면화 되어 있는 잠재된 욕망성에 김소희 연출은 원을 만들고 고리를 던져 흐느적거리고 강렬한 광기의 욕망을 드러낸다. 해석의 신선함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속도감 있게 연출의 신선함으로 그려진다.

진실성의 내면은 박재된다. 이 욕망의 광기들을 연출은 4막이 열리기 전에 템포감 있는 움직임으로 깨질듯 한 속도를 낸다. 고리에 물려있는 인간욕망들을 섞어내면서 강렬함으로 표면화 시켜낸다. 덜어내지 못하는 욕망의 고리들은 마지막 남아있는 니나와 트리고린으로 이어진다.

이어 하얀 천으로 무대를 덮는다. 무대를 채우고 펄럭거리는 천은 인간의 욕망 성을 더욱 자극하면서 음악적인 리듬을 만들어 낸다. 강렬한 욕망 들추기와 이어지면서 4막의 배경인 겨울을 자연스럽게 상징화 시킨다. 이 차가운 공간에 인물을 하나로 묶고 세워 둠으로써 욕망의 광기들은 내면 깊숙이 붙어져 더욱 차가워진 욕망의 덩어리들을 만들어 낸다. 마치 인간의 내면을 엑스레이로 찍어 현상된 사진처럼.

연출은 시골마을로 돌아온 인간 군상들의 형상들을 그 안에 그대로 세워둠으로써 진실 된 인간영혼과 내면의 욕망들은 그대로 박재시켰다.

연출은 극 초반 극중극장면에서 니나의 대사를 마지막 장면에 트레플레프를 통해 한 번 더 설정한다. 강렬한 욕망 속에 인간의 진실 된 내면은 파괴되고, 치유 될 수 없는 자유로운 영혼은 트리고린 에게 배달된 박재된 갈매기와 중첩되면서 트레플레프의 자살은 그대로 멈춰 선다. “나는 혼자다. 백년에 한번 입을 열어 말하지만 내 목소리는 이 공허를 메아리 칠뿐 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박제되어 버린 인간의 영혼성과 진실

김소희가 그려낸 갈매기는 진심과 진실의 경계가 없다. 진실은 두꺼운 가면의 양면성으로 현실에 위장된 채 깊은 내면으로 빠져 허우적댄다. 욕망은 끈적거림으로 섞여있고, 욕망의 표피는 두껍게 내면을 둘러싸고 잠식해 있다. 추악한 욕망은 인간 갈등으로 증폭되고 잔혹성은 욕망의 돌연변이가 된다. 사악하지 못한 인간은 내면의 세포들을 도려내고, 자살을 선택한다. 혈전된 분노는 내면을 강하게 도려내고 잔혹함으로 타락된다. 인간의 진실성은 영혼의 밑바닥에 매달려 있다. 마치 박제돼 있는 인간의 영혼과 욕망을 닮아있다.

배우 윤정섭은 작가로서 고뇌하는 트레플레프의 인간의 욕망과 진실의 내면적 사이를 그만의 연기문법으로 좁히면서 감정을 밀도 있게 형상화시켜 냈다. 니나 역(조우현)도 차분한 감정으로 장면의 흐름을 연기로 받아내면서 배우를 꿈꾸는 극중인물 니나의 성공과 좌절, 그리고 덜어내지 못하는 내면의 이중적 욕망을 적절하게 담아낸다. 트리고린역의 이원희는 능청스러운 연기로 극을 유쾌하게 살려내면서 균형감을 잘 유지시켰다.

마샤 역의 황유진은 침작하게 인물의 내면을 극이 끝날 때 까지 유지시켰다. 아르까디나 역 황혜림은 자기화 된 대사의 과함이 극 초반 배우들과의 감정의 융합에서 대사 톤이 섞이지 못한다는 인상을 풍겼지만 인물내면의 강렬한 욕망의 흔들거림을 잘 꺼내놨다. 다른 배우들도 감정의 균형을 잘 유지하면서 극의 밀도를 높였다.

김소희 연출은 연희단거리패 배우들의 역량을 이번 갈매기 작품을 통해 묶고 강렬한 갈매기를 만들어냈다. 폭발력이 크다. 배우출신 연출답게 배우들의 탄탄한 융합과 조합의 에너지는 갈매기가 날 수 있는 힘을 다르게 만든다.

김소희 연출은 “이윤택 선생님의 권유로 연출을 하게 됐지만요. 이번 안톤체홉의 갈매기는 배우가 연출을 하는 배우를 위한 연극입니다.” 말처럼 싱싱하고 힘이 넘친다. 능청스러운 내면의 숨김은 극의 균형을 탄탄하게 잡아나간다. 김소희 연출의 갈매기가 관객들 가슴으로 크게 다가오는 이유다. 고교생 및 연극전공자 그리고 꺼내놓지 못하는 자신의 내면을 마주하고 싶다면 꼭 봐야할 연극이다.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는 연극과 공연예술분야 평론가입니다. 1987년 ‘작은사랑의 멜로디’로 연극무대에 데뷔, 교육극단 사다리 및 현장 연극을 두루 거쳤고 ‘맹꽁이아저씨와 훔쳐보는 연기나라’ 등 다양한 전문서적도 발간했습니다. 날카로운 시선과 질문으로 TV와 언론매체를 통해 700여명이 넘는 전문가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연극·뮤지컬 등 공연예술 전반에 걸쳐 리뷰 및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국민일보는 김 교수의 연극평론을 ‘김건표 교수의 연극 이야기’라는 타이틀 아래 매주 목요일 온라인을 통해 연재합니다.







대구=김재산 기자 jskimkb@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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