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표 교수의 연극이야기] ③한국 정치사를 풍자우화로 투영하는 이강백 작 ‘여우인간’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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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연극의 대표작가인 이강백이 한국정치 현실을 투영하고 있는 뜨거운 신작을 들고 나왔다.

서울시극단에 의해 올려진(3.27~4.12·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여우인간’이다. 김광보 연출에 의해서 그려졌다. 연출이 그려내는 연극문법은 담백하고 솔직하면서도 내면에 강한 여운을 탑재한다.

김광보 연출은 충실하게 희곡의 내면을 따라가면서도 깊은 여백의 외형을 무대로 담아내는 연출가다. 파편화되어 있는 현실의 우화적 에피소드 들을 현실감 있게 묶고, 흩어져 있는 장면들을 놀이적 요소로 융합해 밀도 끌고 나간다. 이강백 작가가 바라보는 한국사회의 이면을 우화적 놀이성과 배우들의 움직임으로 장면을 융합하고 결합하면서 현실 풍경을 도려낸다.

이번 ‘여우인간’는 1971년 희곡 <다섯>으로 데뷔한 이례 45년 동안 한국사회 현실을 날카로운 시대정신으로 희곡으로 담아내고 있는 작가로서의 일관된 집념이 응축되어 있다. 권력과 민중, 정치적 역사성, 세대갈등, 분단, 이념의 대립, 인간의 상실과 허무 등 다양한 시대의 주제어들이 녹아 있는 그의 작품에서 묶여지는 시대정신은 현실을 투영시킨다. 극 안으로 흡수되어진 현상들은 파편화되고 뒤틀어진 구조를 통해 은유와 상징의 알레고리적 연극문법으로 흩어진다.

한국사회에 응어리진 이면을 품에 안고 작품탐색을 해온 노장의 작가가 2015년에 내놓은 따끈한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시선을 받았다. 한국사회를 응시하고 있는 노장의 시선은 강렬하다. 한국 현대 정치사(2008~2014)에서 대한민국 한복판에 쟁점에 있었던 촛불집회, 광우병파동,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국정원 댓글사건, 세월호 등의 굵직한 사회현상을 그려내면서도 극 속에 우화적으로 응축되고 함몰되어 있는 대한민국 선거정치, 대선정국, 미디어정치, 이념의 대립, 정치토론, 시민사회, 비정규직과 의료보험, 진보와 보수 등을 우화적으로 압축시키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풍자한다.

이강백 ‘여우’ 가면을 쓰고 대한민국 현실정치 한복판을 보다

우화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여우, 여우가 동화를 그려내는 이야기를 읽으면 대체로 기분이 묘하다. 흥미롭게 읽었어도 뒷맛은 개운하지 않다. 여우가 인간으로 둔갑하고, 인간을 홀려가는 과정이 흥미롭다. 진심과 진실로 무장한 여우의 가면에 숨겨진 꼬리는 표면으로 드러나질 않는다.

인간을 능수능란하게 요리하고, 몽롱한 정신세계로 빠져들게 하는 여우. 진심과 진실의 두 개의 가면을 쓰고 인간을 홀려대는 여우와 그 간사함에 먹잇감이 되는 인간. dn화에 단골로 등장하는 아홉개 꼬리가 달린 구미호는 원한을 갚기 위해 절세미인으로 변하고, 아찔할 정도로 인간을 홀려댄다.

구미호한테는 인정사정이 없다. 인간의 탈을 벗고는 허공을 가로지르며 재주를 부리면서 인간을 파멸시키는 구미호. 꼬리를 숨기고 인간과 마주하는 여우 이야기다.

이 노장의 대가가 바라보는 현실은 여우에 홀린 듯 살아가는 현실세계다. 대한민국 현실사회에서 툭툭 튀어 나왔던 대형사고와 사건들, 설명될 수 없는 사건들이 터질 때마다 정치인들의 입장과 온도는 큰 차이가 난다. 그 현실의 투영을 우화 속에 등장하는 ‘여우’라는 담백한 소재를 들고 한국정치사의 한 복판을 걷는다. 길을 걸으면서 바라본 시선은 다양한 옴니버스 형태의 일화들로 파편화 되고 빠른 속도로 현실을 들추어낸다.

대형 사건들이 한국사회를 강타하면 여우에 홀린 것 같다. 현실이다. 시민사회는 혼란스럽다. 극단적인 대립이 난무하고, 정치적 이념은 좌·우로 거세게 갈라지고, 이념대립의 칼날들은 서로를 겨냥해 흔들어 댄다. 그 칼날은 다양한 형태로 돌진한다. 세모, 네모, 동그라미도 된다. 칼날은 뾰족하고 거칠고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도구다. 칼끝은 재주를 부리듯 묘한 마술을 건다. 적군을 향해 비장하게 칼을 뽑고 돌진하다가도 칼끝의 방향은 휘어지고 갈라진다.

좌회전, 우회전, 유턴, 스톱을 하면서 변화무쌍한 재주를 보인다, 이유가 있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국민을 위하고 진정한 대한민국 사회를 위해서다. 양끝에서 흔들고 휘두르는 칼들에 살벌한 광경이 일어날 것 같은데도 두 칼날은 조용히 칼집으로 들어간다. 칼들이 들썩거릴수록 국민의 피로감을 쌓여진다. 국민을 위한 ‘말’ 들은 넘쳐나는데도 몸으로 느껴지는 온도는 크지 않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큰 사건이 터지거나 선거철이 되면 정치인들의 칼날은 극단의 대립구도를 형성하면서 치열한 전투를 벌인다.

한판승을 위해 말은 넘쳐나고, 싸움은 치열해 진다. 말은 진실로 무장된 채 국민을 향해 진심을 외친다. 진실과 진심의 정치가 넘쳐난다. 모두가 국민을 위한, 국민마음을 향해 진실로 포장되거나 진실스럽다. 대형사건이 터질수록 진실성은 넘쳐나고 인간의 진심은 사라진다.

이강백 작가는 공연책자를 통해 “(생략) 무엇인가에 홀려서 제정신이 아닌 것은 사회적인 현상인 것 같다. (중략) 옛날부터 여우는 사람을 홀린 악명 높은 존재이다. 더구나 요즘처럼 성형수술이 발달한 시대에는 누가 여우이고 누가 사람인지 구별할 수 없다. 여우들이 우글거리는 사회에서 제정신으로 산다는 건 불가능하다”고 밝히고 있다.

노장의 작가가 드려다 보는 현실은 여우의 가면을 쓰고 우글거리고 대한민국 사회를 질주하는 현실이다. 꼬리를 철저하게 숨긴 채 인간과 여우의 가면을 넘나들면서 존재의 내면과 외형을 들어내지 않는 여우. 여우가 인간이 되고, 인간이 여우가 되는 현실에서는 혼탁과 무질서만 존재한다.

‘월악산’ 여우는 사람이 되고 사람은 여우가 되는 ‘혼돈의 사회’

이강백 작가는 한국사회의 이면의 현실을 우화적으로 적나라하게 비춘다. 작가의 서사구조는 현실과 삶의 재현성에 머무르지 않는다. 현실의 풍경을 그대로 재현해 극 속에 살아가는 인물들을 극적 갈등구조로 대립시켜 무대로 표면화 시켜내는 리얼리즘 형태의 극의 배치와 결말을 시도하지 않는다. 현실을 직시하고 그 속에서 웅크리고 있는 덩어리들을 끄집어내 현실을 넘어선 환영적 현실성을 차용해 이면의 진실성을 그려낸다. 가슴으로 품고, 강한 시선으로 담아낸 이야기들은 현실의 과녁을 뚫고 있는 시대정신이다.

섬광 같은 시선으로 현실을 응시하고 온몸을 집중시킨다. 천천히 화살을 당겨 결핍되고 뒤틀린 현실을 명중시킨다. 과녁을 뚫고 현실로 향하는 그의 날카로움은 비현실적 상황과 현실을 차용한다. 은유와 비유로 섞여지고, 우화적인 방식으로 극의 틀을 배치하고 융합한다. 그대로 투영시켜 진실을 들추어 내지 않는다. 숨기고, 감추고, 극 구조의 틀을 압축과 변형으로 무장해 과녁을 명중시킨다. 둘러가면서도 극의 속도는 높고 우회하는 상징성은 균형을 잃지 않는다. 작가가 만들어낸 현실은 현실보다 더 현실스럽다.

‘여우인간’은 우화적인 놀이로 개방되면서 풍자로 압축된다. 옴니버스 형태의 극 구조를 연결 할 수 있도록 무대공간은 최대한 개방적인 공간으로 넓힌다. 무대가 간결할수록 배우들의 놀이적 활용성은 커진다. 에피소드로 나열되어 있는 극 형태를 연극적인 배치로 연결하고 하나의 극적 고리로 묶여져 장면의 특징들을 상징화 한다.

배우들의 등·퇴장을 장면으로 들어오고 나감으로만 설정해 배우들의 역할 바꾸기가 속도 있게 진행되고 움직여진다. 배우들은 놀이로 장면을 입체화 시킨다. 김광보 연출은 옴니버스 형태의 극 구조를 연결하기 위해 연극적인 놀이성으로 장면과 장면을 밀도 있게 배치시키고 간극을 좁혀낸다.

구미호의 반복영상, 세월의 노래, 애도의 노래, 그림책 해설, 대선토론과 정치평론 등을 섞으면서 우화적으로 비켜있는 요소들을 현실감 있게 배치한다.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배우들의 전래놀이로 전개되면서 우화적 극적 틀 안으로 들어간다.

놀이의 멈춤과 사이를 통해 파편화된 현실로 진입한다. 사냥꾼(한동규 역)은 “여우는 정말 교활한 존재입니다. 온갖 못된 짓을 다하죠. 그런데 어찌나 사람 흉내를 잘 내는지 누가 사람이고 누가 여우인지 분간하기가 어렵습니다. 조용했던 우리 사회가 아수라장으로 변한 것은 여우들이 사람들과 뒤섞여 살면서 그렇게 됐어요. 여러분, 나는 여우 잡는 전문 사냥꾼입니다. 이 엽총은 그저 들고 다니는 장남감이 아니에요. 자, 기대하세요! 꼬리 없는 여우를 쫒아가 반드시 잡을 겁니다.”

여우를 잡는 ‘대한엽사협회’는 국가기관과 권력을 상징화시키고, 현실정치를 이미지화 한다. 현실에 숨겨져 있는 여우 때문에 혼탁한 사회가 됐다는 사냥꾼의 역설은 여우의 가면 만큼이나 아이러니한 현실세계다.

여우들이 살아가는 월악산. 그 월악산에 덧을 놓고 여우사냥이 시작된다. 잘려나간 꼬리는 인간의 가면으로 융합되고, 여우는 인간의 가면으로 뒤엉켜있는 현실세계를 투영한다. 오히려 여우가족은 인간들이 매몰차게 숨겨놓는 덧에 의해 훼손되고, 살아가는 것이 뭉개져 혼탁해 진다. 잘려나간 꼬리는 인간이 될 수 있는 명분이다. 꼬리의 불편함을 설파하고, 꼬리를 자르고 인간세계로 내려온 여우는 사람의 가면을 쓴 채 현실세계로 진입한다.

인간의 가면을 쓴 채 2008년(광우병 파동과 촛불집회) 부터 2014년(세월호) 까지 대한민국 사회의 중요한 쟁점과 대형사건 들이 빠른 속도로 파편화 된다.

현실을 누비는 인간세계는 잘려나간 여우의 꼬리를 감추고 살아가는 세계로 뒤엉켜 있다.

여우는 사람에게 홀리고, 사람은 여우에게 홀리듯 파편화 되어 있는 한국사회의 심장을 들여다본다. 꼬리를 자르고 트럭을 타고 인간세계로 내려오는 네 명의 여우들이 처음 바라본 현실세계는 시청 앞 광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광우병파동’ 촛불집회 현장이다.

사회변혁운동연합 대표(이창직 역)는 “광우병에 걸린 쇠고기를 사람들한테 먹인 것은 교활한 여우들이 꾸민 짓”이라고 규정한다. 연출은 배우들의 움직임의 놀이성으로 장면을 극대화 시킨다.

쇠고기 파동으로 혼란스러운 현실세계는 여·야의 대립으로 갈라지고, 시민들의 외침은 소멸되고 여우꼬리 속으로 감추어진다. 광우병파동, 촛불시위 실체의 진실성은 표면화되지 못한 채 인간은 여우 탓으로 돌리고, 인간으로 둔갑한 여우는 냉랭한 현실을 마주한다. 여우의 가면으로 가려진 현실세계는 여우보다 더 여우다운 인간만이 득실거리는 사회다. 진실의 실체는 없고, ‘탓’만 하는 현실세계다.

물대포는 인간이 아닌, 여우들을 정조준 한다. 현실세계에서 박해를 받는 여우들을 대변하기 위해 작가는 여우들의 정신적인 지도자 구미호를 설정한다. 구미호는 “사람들은 잘못된 일이 생길 때마다 여우 탓이라고 둘러댑니다. 이번 광우병 쇠고기도 그렇습니다. 여우가 미국에서 수입했다는 건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그리고 촛불시위를 주도한 것도 여우라고 하는데, 그것 역시 악의적인 모함이지요. 제발 저희를 조용히 살도록 그냥 두십시오.”

인간사회에서 박해받는 여우들을 대변해 ‘뫼비우스’라는 안전장치를 만든다. 뫼비우스 띠다. 탓만 하는 사회구조 속에 여우의 실체는 더욱 행방이 묘연해 진다. 여우의 가면은 진실의 실체를 숨기고 그 실체는 여우라는 가면 속에서 혼돈스럽게 갈라지고 찢겨진다. 희망의 출구는 불투명해 진다.

6장의 옴니버스 장면은 역사의 국정원 취조실을 연상케 하는 장면화를 시도하고, 등장인물(전경대장, 한 전경, 색안경)은 국정원 직원과 경찰 권력을 상징화시킨다. 등장인물 색안경은 촛불집회 주동자로 몰린 여우(영일번)에게 미국산 쇠고기의 합리성을 얘기한다.

“촛불시위를 선동하는 자들이 여우입니다. 그들은 순진한 사람에게 미국 쇠고기를 먹으면 죽는 다구요. 그 여우들 말이 사실이라면, 미국 쇠고기를 먹는 미국 사람들은 다 죽었을 겁니다.”

쇠고기 광우병 파동을 희화화 시키면서 무대에서 직접 쇠고기 굽기를 시도하고 냄새를 객석까지 향하게 하면서 당시의 시대적 현재성을 입체감 있게 표면화 시키면서 날카로운 풍자로 이어진다.

한국사회에 대형사건이 터질 때 마다 정치인들의 말, 말, 말은 무성해지고, 정부와 여·야의 입장과 온도는 다르다. 국민을 향해 쏟아지는 진심의 실체는 사라진다. 사건의 핵심과 주인공은 여우로 둔갑된 채 진심과 진실의 무성함만 뒹굴러 다닌다.

6장의 풍경은 정부와 여당의 입장을 우화적으로 풍자하면서 7장 사회변혁운동연합의 김명준 대표(이창직 역)은 촛불집회로 어지러워진 현실정국을 돌파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선거에서 이기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제안한다. 작가는 현실정치에서 도려낸 대형사건을 우회적으로 그려내면서 정치적인 힘겨루기만 난무하는 한국사회의 정면을 극 속으로 당겨놓는다.

반복되어지는 ‘말’과 실체 없는 진실이 난무해지고 훼손된 역사는 응어리진 채 여우라는 가면에 가려 반복적으로 오늘을 살아간다. 작가는 이러한 한국사회의 현실을 정면으로 응시하면서 실체의 진실을 여우라는 가면 속에 담고 살아가는 현실을 그려낸다.

치열하고 고통스러운 민주화과정을 거쳐 성숙된 사회로 진입한 오늘날의 대한민국 사회의 현실도 뫼비우스 띠처럼 그 주변을 맴돈다. 진실로 무장한 역사는 치유되지 못하고, 사회적 갈등은 커진다. ‘여우인간’은 여우의 가면에 가려지고 무너진 채 살아가는 오늘날의 현실을 담아낸다. 진짜 여우를 분간하기 어려운 사회고 혼돈의 현실세계다. 인간으로 변한 여우가 살아가는 현실세계는 월악산에서 여우들과 공동체 생활을 이루면서 살아가는 것 보다 더 힘들도 고통스러운 풍경이다. 여우가 바라보는 현실세계는 여우의 꼬리를 숨긴 채 종횡무진해진 혼탁한 사회다.

연출은 인간의 가면을 벗고 자연의 월악산으로 되돌아가는 여우(미정)의 뒷모습을 강한 이미지로 입체감을 살려낸다. 여우가 살만한 곳이 못되는 현실세계. 여우의 가면을 쓰고 꼬리를 숨긴 채 한국사회를 종횡무진 하는 인간군상 들이 난무하는 현실세계는 뫼비우스 띠처럼 반복되어져 치유되지 못한 역사적 현실이 그대로 공존할 뿐이다.

이번 ‘여우인간’ 에서는 2장 ‘애도의 노래’ 그림책 ‘여우사랑’ 이야기, 12장 세월의 노래의 장면은 전·후 에피소드 들을 응축하지 못한 채 전체적인 서사의 균형성으로 흡수되지 못한 듯 한 인상을 풍겼다. 배우들의 연극적인 놀이들이 장면의 형태로만 치우쳐져 무대 공간을 뚫고 나오는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지 못해 아쉽다.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공연예술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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