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표 교수의 연극이야기] 4. 당신은 어떤 부모입니까?… 김수희 연출, 국립극단 ‘소년B가 사는 집’①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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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을 나와서 집에 오는데 엄마가 타라고 했던 버스가 273인지, 278인지 잘 기억이 안 나는 거야.( 주머니에서 쪽지를 꺼내며) 3인지, 8인지 잘 모르겠어서. 한참을 고민하고 있는데 정류장에 아주 나이 많아 보이는 할머니가 앉아 있었어. 허리가 엄청 굽었어. 난 최대한 멀리 떨어져서 물어봤어.

‘정왕동 가능 버스가 몇 번 이예요?’그런데 할머니가 귀가 어두워서 듣지를 못하는 거야. 할머니가 손으로 이렇게, 오라고 했어. 그래서 난 엄청 떨렸지만 조금 더 가까이 가서 물어봤어. ‘여기서 정왕동 가는 버스가 몇 번 이예요?’ 그랬더니 273번이라고 알려줬어. 엄청 친절했어. 내가 손자랑 닮았다고 하면서 주머니에서 사탕도 꺼내줬어. 계피맛이 나는 사탕이었는데, 먹기 싫었지만 안 먹으면 섭섭해 하실까봐 먹었어. 그런데 그런 생각이 들었어. 내가 살인자라는 걸 알면 이렇게 친절하지 않겠지? 소리 지르며 도망가겠지? 그래서 사탕 맛이 느껴지지 않았어. 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갑자기 나무 무서웠어.

근데 할머니가 물었어. ‘목에 그건 뭐니?’ 나는 너무 놀라서 사탕을 삼켰어. ‘다쳤니?’하고 또 물었어. 근데 나는 대뜸 이랬어. ‘어렸을 때 사람을 죽였어요’ 할머니는 한동안 말을 하지 않았어. 난 무서웠지만 도망가지 않았어. 왠지 견뎌야 할 것 같았어. 한참 있다가 할머니가 말했어. ‘그래, 그랬구나’ 할머니는 도망가지 않았어. 난 그게 너무 고마워서 눈물이 났어.”

눈물 한방물이 ‘툭’ 하고 손등으로 떨어졌다. “왜? 눈물이 떨어졌을까?” 자신의 사악한 내면을 꺼내 놓는다는 것은 두렵다. 당황스러웠다. 떨어지는 눈물을 들키지 않으려고 안경을 올려 떨어지는 눈물을 닦아냈다. 마지막 눈물을 짜냈다. 가슴은 저려 왔고, 내면은 떨려왔다. 조명은 대환을 응시하고 있었고, 극의 종점까지 대환과 가족들의 삶을 따라온 관객표정은 찡그려진 채로 툭툭 떨어지는 눈물에 떨고 있었다.

대환이의 대사를 통해 들려오는 할머니의 ‘말’이 가슴으로 날아왔다. 깊숙한 내면의 바닥에 웅크리고 있는 검은 덩어리들을 밖으로 힘겹게 끌어냈을 때 손을 잡아 줄 수 있는 영혼을 만날 수 있을까. 극을 보면서 내면의 추악한 욕망의 흔적들이 파노라마처럼 그려지고 지나갔다. 대환이와 동일시 된 내면은 할머니를 향하고 있었다.

찢겨지고 갈라진 영혼의 상처가 대환이의 내면을 보듬어준 할머니의 한마디와 시선에 평온해 졌고, 눈물은 흙투성이가 된 내면을 씻겨냈다. “대환이 처럼 상처 난 곳에 약을 바르고 싶었구나. 왜 꺼내놓지 못하고 살았을까? 꺼내 놓으면 상처 난 마음을 보듬어 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저렇게 편해 질수 있는데 용기가 없었구나.” 용서 받을 수 없다는 죄책감과 상처를 보듬어줄 영혼을 만날 수 없다는 두려움과 불안은 내면의 공포로 확장됐고, 씻겨내지 못한 내면은 꿈틀거리는 두 개의 욕망으로 깊숙한 뿌리를 형성하면 자라고 있었다.

‘소년B가 사는 집’은 14세 때 친구를 죽이고, 살인죄로 복역을 하다가 보호관찰 처분을 받고 세상으로 나온 대환 이와 그의 가족의 이야기다. 악마의 내면으로써 ‘소년 B’와 인간으로써의 ‘대환’이의 존재와 시선은 교차된다. 보호관찰로 세상 밖으로 나온 대환을 보듬는 시선은 없다. 단란했던 가정은 무너져 내렸다. 자동차 정비소를 운영하는 대환의 가족은 ‘악마의 집’, ‘악마의 가족’ 둘레를 벗겨내지 못한 채 살아간다.

사건 현장을 떠나지 않고 과거 속에 멈추어져 있는 집에서 그대로 살아간다. 특별하다. 현실의 시선이 날아오는데도 묵묵하게 받아들인다. 사건을 경험한 아이는 그 내면의 사악한 욕망과 치열한 전투를 벌인다. 내면의 선, 악의 꿈틀거리는 존재성은 쉽게 떨쳐내지 못하는 욕망이다, 사회적 시선은 그 굴레에서 연좌된다. 이 특별한 한 가족의 이야기를 연극, ‘소년 B가 사는 집’(4.14~4.26. 국립극단· 작 이보람·연출 김수희)에 연극으로 옮겨냈다.

현실의 시선, 두 개의 내면과 뒤틀린 욕망 ‘소년 B가 사는 집’

‘소년 B’는 대환이 에게 멈추어 버린 기억, 찢겨지고 갈라진 내면의 욕망이다. 무대 좌측 편으로 부엌과 방이 붙어있고, 그 옆으로는 대환이 아버지의 차 정비소 공간이다. 대환이의 사건으로 멈추어버린 공간은 내면과 외형의 폭력적 시선으로 둘러싸여 있다. 방으로 이어지는 다락방은 대환이의 닫쳐진 욕망과 갈라진 내면의 공간으로 이어진다.

대환이 내면에 존재하는 또 다른 소년의 내면 ‘B’가 공존하며 섞여진다. 전경화 되어 있는 대환이의 집은 또 다른 억압의 굴레 속에 둘러 싸여 있는 습함을 들어낸다. ‘소년B가 사는 집’ 대환이가 사회적 적응을 이루는 카센터 공간, 엄마의 시선으로 대환 이를 바라보는 방, 그리고 대환이의 욕망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는 다락방이다. 그리고 공간의 좌측 편은 극이 진행되면서 유일하게 대환이가 바깥세상으로 연결되는 공간으로 활용된다. 가족들은 문에 난 작은 구멍을 통해 외부세계를 들려다본다.

무대는 사회적 시선과 또 다른 내면의 폭력성들을 마주하는 시선들이 묶여져 있는 공간이다. 무대 오른쪽은 현실과 연결되는 유일한 통로지만 집과 그들의 내면은 철저하게 닫쳐져 있다. 현실의 시선들은 이 집을 ‘악마의 집’, ‘악마가 사는 집’으로 규정한다.

불이 켜져 있으면 빛은 깨어지고 벽은 과거의 흔적으로 멈추어진 채 가족의 힘든 내면만 지켜낸다. 주변의 시선들은 대환 이와 가족을 살인자라는 동일시 된 존재로 바라본다. 살인사건이 일어난 이후 그 누구도 방문하지 않는 대환이의 집, 극중 인물 대환이의 아버지(역, 이호재)는 사건현장과 멀지 않는 ‘집’을 떠나지 않는다.

이번 연극은 피해자의 삶을 바라보는 것이 아닌, 청소년 범죄에 있어 살인죄를 저지른 가해자의 삶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 특별하다. 아버지(이호재)는 대환이의 사건으로 인해 파괴된 가족의 삶을 되돌릴 수 있다는 내면을 조각하면서 외부 통로로 연결한다.

연출은 최대한 이들의 삶이 그대로 들여다보고 전달될 수 있도록 생활공간의 리얼리티로 그려낸다. 카센터 안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대환의 모습을 비춘다. 분주하게 식사를 차리는 엄마. 라디오 뉴스를 통해 대환이의 사건과 비슷한 유형의 소리를 설정함으로써 극을 우회적으로 암시한다. 가족들의 식사풍경도 일반적이지 않다. 밖으로 표출되지 못하는 이들의 내면은 멈추어 버린 과거다. 사건이 흐른 지난 6년 동안 내면은 두텁게 혈전되어 있다.

멈춤의 기억들을 그대로 움켜쥐며 살아가는 엄마. 엄마의 내면은 불안과 공포로, 대환이의 또 다른 욕망의 꿈틀거림에 묶여진다. 가족으로 향해지는 사회적인 시선들을 그대로 마주한다. 집을 떠나지 않고 억압의 시선들이 날아들어도 묵묵히 견디고 바라볼 뿐이다. 대환이가 세상 밖으로 옮겨지고 세상으로 옮겨지는 걸음걸이는 불안하고, 아들이 저지른 사건의 현장으로 내면은 멈추어져 있다. 혈전의 내면성에 대환이의 엄마(강애심)는 살인죄를 저지른 대환이의 찢겨진 욕망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철저하게 자신의 내면으로 고립되고 갇혀진다. 엄마로서의 자식에 대한 부모의 교육, 과거의 대환 이를 대했던 태도에서 문제를 진단하려고 한다면, 대환이의 아버지는 현실적인 태도를 보인다.

아버지는 대환이 에게 자동차 정비 기술을 가르치면서 사회적응훈련을 시키고, 닫쳐진 현실을 그대로 마주하면서 현실에 적응하고 나갈 수 있도록 손상된 내면을 보듬고 손질한다.

대환이의 아버지는 현실적인 태도를 보인다. 자동차정비 자격증을 취득시켜 현실세계로 자립시켜 보려는 아버지의 태도와 엄마는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대환이 아버지조차도 집 외부에 아들의 돌출된 행동을 CCTV를 달아둠으로써 내면은 불안전하다.

불이 켜져 있으면 집은 암흑으로 변하고, 집의 벽면은 지난 과저로 멈추어져 있는 외벽으로만 쌓여 있다. 집으로 돌아온 대환이의 내면은 사회적인 현실에 더욱 닫쳐 진다. 또 다른 소년B와 내면의 치열한 싸움만이 공존한다. 사악한 내면의 ‘소년B’는 대환이의 내면의 욕망을 움켜쥔다. 도려내고 내고 싶은 욕망, 그 악의 욕망으로 휩싸여 있는 대환이의 내면은 죄 값을 치르고도 그를 바라보는 현실의 시선들이 강해지고 꿈틀거릴수록 사악한 욕망은 겹겹이 쌓여진다.

이보람 작가는 현실의 시선으로 보호감찰원, 부모교육을 하는 이웃집 여자를 설정하고, 대환이의 누나 윤아(역, 이은정)의 시선을 통해 ‘화해’의 통로로 연결시킨다. 대환이의 내·외면을 소년B와 중첩시키고, 살인죄를 저지른 소년B와 대환이의 내면으로써 보여 지는 욕망의 대립구도를 만든다.

중학교 때 친구를 죽인 인간의 잔혹한 내면과 갈라진 욕망의 표피의 덩어리들을 소년B로 설정한다. 선·악으로 갈라져 치열하게 꿈틀거리는 인간욕망과 싸움을 걸고, 두 개의 내면을 외형화 시킨다. 대환이의 내면은 외부세계와 차단된다. 용서 받을 수 없다는 자의식, 분노의 욕망, 포기된 삶, 내면으로만 존재하는 소년B의 불안전한 욕망의 혼돈은 언어의 단절로 이어진다. 외부와 철저하게 고립되고 닫쳐질수록 그의 내면은 굳게 닫쳐진다.

어느 날 갑자기 운명처럼 일어난 대환이의 사건, 그 사건을 통해 가족의 행복은 파괴되고 행복의 내면은 갈라진다. 현실의 무서운 시선만이 공존하는 현실적 물음과 시선들을 연출은 차분하게 소년 B가 사는 집을 들여다본다.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공연예술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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