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호 문화비평] 막장없는 ‘착하지 않은 여자들’이 남긴 가족애 기사의 사진
시청률 12%대 종영후 ‘가족드라마’ 전범(典範)으로 호평

미니시리즈가 끝나면 시청률만 남는다. 대박 시청률이 아니면 차기작에 대한 요란한 홍보전에 묻히기 마련이다. 최근 종영후 화제되는 드라마작품은 그다지 많지가 않았다.

<착하지 않은 여자들>(한상우 연출 김인영 극본). 14일 밤 24회로 종영한 KBS 2TV의 수목 미니시리즈다. 그런데 종영후 오히려 시청자들로부터 감동적인 드라마라는 뒤늦은 찬사를 받고 있다. 마지막회 시청률은 12.0%(닐슨코리아 전국기준)에 머물렀다. 30%대 ‘국민드라마’는 결코 아니었다.

‘막장드라마 불륜,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한 이 시대에 정말 사랑과 힐링이 넘치는 감동적인 드라마였다~마음이 따뜻해지고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을 진심으로 용서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다 주는 드라마였다’. 한 시청자가 게시판에 올린 댓글이다.

이 드라마는 3대에 걸친 여자들의 험난한 인생역정을 30년의 시간차를 두고 사랑과 성공, 행복 찾기를 수채화처럼 그려냈다. 요즘 ‘막장’아니면 시청률 높은 드라마 꿈도 꾸지 말라는 방송가 경구가 조금은 무색해졌다.

시청률 만능주의로 제작기법도 진화한다. ‘막장인 듯 막장아닌, 막장같은’ 드라마를 만들려고 PD들은 무진 애를 쓴다. 그래도 안되면 막장코드를 다시 움켜줄 수밖에 없다.

PD 작가의 절제된 평정심과 스토리 전개가 돋보여

<착하지 않은 여자들> 역시 초반 막장우려가 적지는 않았다. 아내에서 눈돌린 남편이 다방 여종업원을 사랑한다든지, 불륜데이트 중 열차에서 추락해 기억상실증이 걸린다든지, 뒤늦게 옛연인 다방여종업원이 뒤늦게 가족으로 합류한다거나, 제자누명을 외면하 퇴학시킨 막장선생님, 두 형제가 한 여자를 사랑하는 삼각관계 설정 등 막장의 구성요소는 충분했다. 불륜과 복수, 사랑과 배신, 출생비밀, 개인욕망 등 모든 것이 드라마 전편 곳곳에서 노출된다.

스토리는 막장 분명한데 막장아닌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가족애를 최고의 가치로 둔 PD와 작가의 상황인식이 주효했다. PD가 깨고 싶은 유혹을 느끼는 가족애의 틀을 자제심과 평정심으로 유지시키려는 노력이 잘 드러났다.

두 번째는 명품배우들의 명연기를 들 수 있다. 이중 ‘국민아버지’ 이순재(김철희 역)와 국민엄마‘ 김혜자(안국동 강순옥여사 역)를 먼저 손꼽지 않을 수 없다. 국민배우의 힘은 참으로 컸다. 김혜자의 감정연기는 명품이었다. 작가가 의도한 대본의 200%이상을 소화하지 않았나 평가한다. 남편의 외도로 외로움 젊음을 보내는 여자의 감성 연기가 그렇다. 시차를 두고 세밀하면서도 뭉클하게 묘사해내는 표정연기는 타의추종을 불허한다는 말이 어울렸다.

‘드라마=캐스팅’을 보여준 작품, 국민배우들의 명품연기로 조연까지 빛나

<거침없이 하이킥>부터 <꽃보다 할배>까지 코미디부터 정극까지 모든 장르를 소화하는 이순재는 늘어지기 쉬운 드라마의 스토리를 무리없이 이끌었다. 장모란 역의 장미희는 최근 MBC 주말극 <장미빛 연인들>등 타 작품에 이은 출연에도 불구하고 결코 식상하지가 않았다. 평소 부담스럽던 그의 특유 화법도 이번에는 그다지 튀지 않았다. 오히려 독특한 감성을 이끌어내는 케미를 유감없이 발휘하지 않았나 보여진다.

김현숙 역의 채시라의 온몸연기는 단연 으뜸이었다. 왠지 채시라가 망가질수록 그 감동과 여운, 설득력이 더 높아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궁금할 정도였다. 아버지의 실종에 이어 잘못만난 여고담임 나말련(서이숙 분)의 운명적 만남은 ‘한사람의 인생이 이렇게도 어긋나게 되는 구나’하는 생생한 느낌을 전달하기에 충분했다. 처참하게 망가지는 슬픈 스토리의 주인공임에도 채시라의 ‘웃픈’ 연기는 더욱 빛을 발했다.

여기에 방송사 앵커 역의 김현정(도지원 분)의 감성풍부한 새침연기 또한 묘미를 더했다. 나말련 역의 서이숙. 이 드라마에서 주인공 못지 않은 스타덤에 올랐다. jTBC의 <네 이웃의 아내>등에서 ‘양념 연기자’로 빛을 냈던 조연이었지만 더 이상 조연급은 아니었다. 채시라와 부딪치는 악역을 맡았지만 그를 빼고 채시라는 존재할 수 없는 ‘상대성’이 너무 확실했다. 뒤늦게 그를 연예계가 주목하는 이유다.

‘사랑 화해 용서’의 메시지, 험난한 세태에 강한 여운으로 남아

이 드라마의 결론은 사랑과 용서, 화해였다. 일상적인 드라마의 해피엔딩 기법이다. 그럼에도 여느 드라마와 같이 그다지 상투적이지 않게 느껴진다. 오히려 시청자들은 ‘드라마를 보고도 힐링이 된다’고 말한다.

<착하지 않은 여자들>은 3대에 걸린 순탄치 않은 가족사를 시간을 넘나들며 그려내는데 분명히 성공했다. 개성있는 캐릭터와 절제된 코미디, 게다가 잘 버무려진 로맨스 등이 어우러져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뒤처지지도, 튀지도 않는 그야말로 가족드라마의 범주를 잘 보여주는 드라마가 아니었나 싶다. 끝나고도 이런 호평을 받는 이유를 제작자들은 들여다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것은 이 드라마는 분명한 메시지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제작인은 ‘인생이 휘청할 때 기적이 오기도 하고 결국 인생은 서로를 품어주는 일임을 깨달아간다’는 점을 장면 장면마다 녹여넣으려 했다. 과연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보여주려한 노력이 잔잔하게 시청자에게 먹혀들어갔다고 볼 수 있다.

시청자들은 주인공들의 인생험로 순간들을 들여다보며 때로는 안타까와하고 때로는 분노하고 또 박수를 보냈다. 강력한 드라마의 메시지로 남은 사랑과 화해, 용서는 갈수록 각박해지는 요즘 시청자들의 마음을 대변한 것 같다. 그래서 종영후 더욱더 잔잔한 여운으로 남는 것인지도 모른다.

방송문화비평가 alps1959@hanmail.net blog.daum.net/alps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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