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표 교수의 연극이야기] 7. 사다리움직임 연구소 ‘소송’ VS 숭고함의 전류 ‘이영녀’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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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잠에 빠져 있던 김우진의 희곡 ‘이영녀(김우진 작·박정희 연출·국립극단·5.12~5.31)가 깨어났다. 90년 세월이 흘러도 ‘이영녀’는 흐트러짐이 없다. 연출은 그녀를 품에 안고 무대에 그녀가 살아가는 집을 세운다. 두텁게 쌓여 있는 먼지를 툭툭 털어버리면서도 소중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1920년대 삶의 진흙탕 속에서 튀겨져 날리던 먼지를 끌어안고 정결한 연출로 그 소박함을 그대로 올려놓는다. 꺼진 생명에 불을 당기며 ‘이영녀(역·이서림)’를 동시대 한 여인으로 어머니로 일으켜 세운다. 박재되어 있는 영혼이 아니다. 그녀의 숭고한 전율은 동시대로 전이되고 관통하고 있는 현재의 전류다. 여인의 삶에 감전 될 수 있도록 손을 내민다.

박정희 연출은 1920년대 전류가 현재로 흐를 수 있도록 플롯에 뼈대를 세운다. 시대에 뒤섞여진 물이 차분하게 움직이고 흐를 수 있도록 통로를 연결하고 길을 만든다. 무대를 휘감고 있는 질펀한 목포사투리는 애잔한 시대의 고단함으로 응축되고 어두운 그림자들은 피부 깊숙하게 박혀지도록 도려낸다. 도시에 비켜선 ‘목포’ 에서 살아가는 ‘이영녀’의 삶은 고단 하다. 피폐해진 삶의 끝과 생존 한 복판에서 매음으로 온 몸을 던져 자식을 품고 교육을 시키려는 ‘이영녀’의 헌신적인 삶을 투영한다. 노동착취, 권력, 자본의 논리에 복종하지 않고 대립하는 그녀의 삶에서 피어오르는 영혼은 ‘숭고’하다.

식민지 조선사회에서 피어나는 근대의 풍경은 권력과 자본의 두께만큼, 여성의 성을 착취와 욕망의 대상으로 움켜쥐고 농락한다. 몸은 빈곤의 끝에서 벗어나려는 최악의 수단으로 내몰려진다. ‘이영녀’ 삶에 존재하는 남성은 가족에게 빈곤의 생계를 대물림하는 무능력한 남성으로 대변되거나, 여성을 성적 욕망의 주체로 대상화 하려는 남성(극중 인물 유서방, 역·강진휘) 으로 희화된다. 극중 인물 ‘강영원’은 부패한 자본의 권력이다. 권력의 지배와 성적욕망을 착취하는 남성으로 상징화 된다.

‘이영녀’는 몸으로 삶에 질긴 생명의 불을 붙이고 교육을 시켜 ‘관구’를 시대에 일으켜 세우려는 어머니의 모성애를 품는다. ‘이영녀’는 죽음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삶은 포기하고 헌신을 통해 인간다움의 삶을 살아보려는 이영녀의 내면과 욕망이 극중 인물 ‘관구’를 통해 투영된다. 노동의 착취와 빈곤의 가난이 번복되는 현실에서 돈, 권력, 남성의 지배적 욕망에 탑승한 삶은 남루하고 누추해 진다.

연출은 무대의 설정부터 기발함을 보인다. 무대 공간을 1920년대 박물관으로 설정하고 삶의 지속성으로 묶어 놓는다. 무대에 빛바랜 가구들은 현재와 마주한다. 연출은 박물관의 창고를 개방하면서 시대의 인물들을 흐트러짐 없이 일으켜 세운다. 무대 왼편으로는 목포 유달산을 상징하듯 모던적인 배경으로 걸쳐진다. 유달산 아래에 목포시내 서민들이 살았던 골목 한 곁에 세워진 근대생활박물관을 연상시킨다. 연출은 이 공간에 이영녀의 삶을 고스란히 올려놓는다. 경사로는 역사의 끈을 현재로 이어놓는 다리이자 초월적 죽음으로 사바세계로 이어지는 공간이다. 3막에서 ‘명순’이를 품에 안고 승화되는 이영녀의 초월적 죽음은 시대를 품어내고 새 생명으로 교차되는 공간이다. 현재로 이어지는 삶의 공간에서 나뒹구는 인물들은 삶에 고단함, 자본에 비루함, 노동의 착취와 폭력성, 타협과 결탁으로 묶여지는 인물들이다.

박재되어 있는 인간 영혼에 생명을 불어넣다.

극의 도입은 한 아이의 밀랍인형을 박물관 전시실로 옮겨 놓듯 극중 인물 ‘관구’를 올려놓는다. 세월의 흔적들을 털어내고 현재의 시점으로 공개되는 인물에 생명을 불어 넣는다. 1920년대 박물관을 누비며 걷고 움직이는 인물들은 박물관의 벽장을 뚫고 서서 삶을 고스란히 들추어낸다. 1920년대 벽면을 뚫고 서 있는 ‘이영녀’ 에게는 세상에 맞서는 당당함을 마주한다.

근대풍경에 움트기 시작한 자본의 논리는 노동의 착취와 빈곤으로 유린하고 민중의 삶은 황폐화 된다. 식민지사회에 동화된 일부 자본가들은 권력의 갑옷을 입고 자본의 폭력성을 휘두르며 노동과 인간의 영혼을 착취하며 쓰라린 부를 세운다. 무질서가 난무하고 정체불명의 도시로 혼합된 식민지사회에서 근대화는 계급의 양분화, 갈등의 폭력적 대립, 노동의 착취, 가난의 대물림, 교육의 빈곤으로 삶을 도려내고 서민들의 삶은 칼날로 파여진 깊숙한 상처가 된다.

‘이영녀’는 이러한 현실의 한복판에 서서 여성의 인권에 소리를 높이고, 빈곤의 끝으로 내몰리는 궁핍한 삶에 현실에서도 정당한 노동의 권리를 주장하면서 자본의 착취와 권력의 부당함에 꽂꽂하게 몸을 세운다. 남루한 삶의 현실에서 자식을 교육시키기 위해 선택 할 수 있는 것은 ‘매춘’ 뿐이다. 고단함의 절박함이다.

인물들은 박물관 벽장을 뚫고 정갈하게 나온다. 1막은 아이를 가르치기 위해 궁핍하고 절박한 삶으로 내몰린 ‘이영녀’의 삶의 고단함의 시선이다. 대립되는 극중 인물 안숙이네 (역·남미정)은 포주로 여성의 노동의 갈취하고 ‘이영녀’를 매음의 끝판까지 내미는 포악함의 내면성을 들어낸다. 포악한 내면의 이면성에는 아이들과의 놀이, 동구를 등에 업고 자장가를 부르며 천사얘기를 꺼낸다. 영녀의 아이들을 품에 안을 수 있는 모성애를 보인다. 시대의 궁핍한 빈곤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는 1920년대가 잉태한 인물로 바라본다. 배우 남미정은 농익은 연기로 내면의 감정을 목포사투리로 잘근 잘근 씹고 뱉어내면서 포악함에 숨겨져 있는 시대의 한 여성으로써의 내면성을 균형감 있게 들어낸다.

이영녀의 등장도 간결하다. 당당하게 현실을 품어댄 자세로 현실과 마주하는 그녀의 품에서 억척스러운 삶의 고난을 넘어선다. 삶의 고난을 마음의 칼날로 담고 막아선 ‘이영녀’는 부당함에 당당하게 맞서는 태도다. 정갈하고 정제된 내면을 품는다. 배우 이서림(역·이영녀)는 이 정갈함과 단단함을 배우내면으로 흡수하면서 김우진이 그려놓는 ‘이영녀’를 환생시킨다.

2막에서는 ‘강영원’의 행랑채에 세들어 사는 ‘인범이네’, ‘점돌이 할멈’, 인력거꾼인 ‘차기일’과 그의 부인 ‘기일네’가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삶과 생계를 이어가는 공간이다. 솜과 면 사업으로 자본과 권력을 긁어모은 ‘강영원’은 노동을 착취하는 자본의 상징으로 부패한 권력이다.

공장에서 일하고 돌아온 ‘이영녀’는 “오늘 또 공장 감독하고 싸우고 왔소. 으째 사람을 개돼지 모냥으로 부리는지 몇며시 항의하고 대들어 붙었당께. 참을 수가 있어야제. 무담시 놈을 이리 오라 저리 오라 해 놓고는 쬐금만 말을 안 들어도 당장에 벼락이 나부요. 죽교리에 사는 사람은 고운 그 뽈탱이를 뻘겋게 더 맞고 쫒겨났다”고 한다.

1920년대 삶의 현실성과 세상과 맞선 이영녀의 성격이 그대로 비쳐진다. 연출은 2막 초봄의 배경을 무대에 작은 정사각형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 봄밭을 형상화 시키는 간결함을 보이고, ‘기일이네’를 연기한 배우 김정은은 능숙한 연기로 2막을 도드라진 생명력으로 올려놓는다.

3막은 이영녀의 죽음이다. 연출은 ‘이영녀’의 동거남 (유서방, 역·강진휘)를 통해 1920년대 가부장적 사회의 ‘남성’을 확장한다. 방을 거세게 밀치고 나오는 근육질의 유서방의 등장, 얼음을 잘근잘근 씹고 뱉는 풍경은 매우 만화적이다. 남성의 성적인 면을 도려내고 확장한다. 이영녀의 딸 ‘명순’이를 성적인 주체로만 바라보는 남성의 성적욕망으로만 멈추어 세운다. 여성을 욕망의 주체로만 대상화 하고 억압하는 존재로 묶여진다. 연출은 ‘이영녀’의 죽음을 고귀하게 일으켜 세운다. ‘명순’이를 품에 넣고, 죽음으로 환치되는 ‘이영녀’ 내면에 연출은, 한 여인의 숭고함으로 투영하고 꺼지지 않는 생명의 이어짐으로 올려놓는다.

박정희 연출의 정갈함으로 시대에 깊은 울림으로 올려놓은 ‘이영녀’

이영녀의 삶을 연출은 치우침 없는 시선으로 극에 색감을 칠한다. 시대의 환영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정갈하게 옮겨 놓고 삶을 조심스럽게 걷어 올린다. 고전희곡을 무대로 투영하면서 표현의 오류들이 발생 할 수 있다. 단순한 사실적 재현성에 의존된 채 박재되어 있는 희곡으로만 멈쳐 질수 있다. 연출의 해석의 관점에 따라 무대로 칠해지는 색감과 농도도 다르게 나타난다.

과한 설정과 대사표현은 양식화된 말투와 모호성의 표현들도 묶여지고 상투적 연극의 구성성은 동시대로 들어 올려지는 의미가 없다. 희곡의 구조와 주제의 틀을 완전히 비켜나가고 과격한 실험성만으로 무장한 무대도 난해함과 진부함으로 관념이 된다.

이번 박정희 연출로 올려진 ‘ 이영녀’ 는 연출의 실험성과 독창적인 해석의 시선으로 견고하게 한 여인의 삶을 쌓아올렸다. 특히, 김우진의 희곡을 사실적 표현성으로만 치우치다 보면 표현의 오류들이 발생 할 수 있다는 점을 연출은 정확한 시선으로 꿰뚫어 본다.

연출의 탁월함은 이러한 오류들을 과감하게 제거하고 배우들의 움직임과 대사의 속도를 조절하면서 사실적 내면과 외형적 표현으로 융합된 사실적 환영으로 절묘하게 무대를 그려낸다. 마치, 90년의 세월이 담겨 있는 박물관 액자에 걸려 있는 이영녀의 삶을 하나 둘씩 조용히 띠어낸다. 인물이 마치 현재로 환생한 것처럼, 느릿한 걸음으로 통일성을 주면서 박재되어 있는 극중 인물에 생명을 불어 넣는다.

움직임의 연속성에서도 동작의 속도를 최대한 낮추고 대사와 움직임의 끊김과 이어짐을 반복시키면서 실제와 비현실적인 사실성으로 한 여인의 삶을 섬세하고 촘촘하게 역어놓는다. 1920년대 살아 숨을 쉬던 이영녀의 삶을 두 개의 극적 경계를 흡수하면서 동시대에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김우진 작, ‘이영녀’를 그려냈다.

사다리 움직임 연구소의 독창성

사다리 움직임 연구소는 카프카의 소설 ‘소송’을 배우공동창작으로 표현의 희곡텍스트를 만들고 임도완, 이수연 연출에 의해<대학로예술극장·5.15(금)~5.31(일)> 올려지고 있다. 이 극단은 98년도에 임도완 연출에 의해 창단하면서 몸과 움직임의 오브제를 활용해 독특한 형식의 무대를 만들고 생산해 낸다. <휴먼 코미디>, <보이첵>, <왕 벚꽃나무 동산>,<하녀들> 등 다양한 작품을 선보이면서 ‘사다리움직임연구소’의 표현의 형식과 독창성을 확보하고 있다.

98년 창단부터 ‘사다리 움직임 연구소’와 함께하고 있는 배우 김미령은“ 공동창작으로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배우로서 새로운 가치를 느낄 수 있게 해주고 ‘사다리 움직임 연구소’의 독창적인 작품으로 만들어 내고 있다”고 표현했다. 이러한 극단의 방향으로 텍스트는 극을 최소한의 범위로만 이끌어갈 수 있도록 구조화 된다. 언어는 배우들의 움직임으로 입체화 되고 공동창작은 절대적인 표현의 도구와 영역이 된다.

공동창작은 배우들의 수행적 즉흥성과 퍼포먼스로 장면과 텍스트의 뼈대를 그려나가는데 있어 중요하다. 유연한 배우들의 신체는 무대를 그리고 장면을 설득력 있게 이루는데 있어 극대화 될 수 있는 조건이다. 이러한 면에서 90년대 초반부터 유홍영과 함께 실험적인 마임극과 가면마임을 선보여온 임도완 연출에게 배우의 신체는 극적 상상의 경계를 넘어 창의적인 극적구성을 이루는데 중요한 표현의 재료가 된다. 극 속에서 표현되는 배우의 움직임과 신체의 활용은 극을 완성하는데 좋은 질감으로 형성된다.

임도완 연출은 움직임과 동작의 수행성, 즉흥성, 배우의 신체훈련, 극적 퍼포먼스의 다양성을 무대에서 효과적으로 들어내는데 탁월한 연출가다. 여기에 재현적 표현방식을 거부하고 배우들의 공동창작의 과정을 거치면서 작품의 독창적인 신선도는 사다리움직임 연구소의 정확한 색깔을 이루고 있다.

이번 카프카의 소송은 소설의 원작을 다양하게 비교 분석하면서 작년 12월부터 연출과 작품에 참여하는 배우 12명이 공동창작으로 준비했다. 이번 카프카의 ‘소송’에서 배우들은 움직임의 앙상블로 균형적인 표현의 전경화를 이루면서 독특한 형식의 실험적인 극적 완성도를 이끌어 낸다.

움직임과 오브제로 녹여낸 ‘억압과 제도의 굴레’ 카프카 원작 ‘소송’

작품은 어느 날 갑자기 체포된 ‘요제프K’를 투영한다. 극은 보이지 않는 현실의 폭력적 권력에 몰락해 가는 극중 인물을 쫒아간다. 들어나지 않는 현실의 늪에서 ‘소송’을 통해 세상 밖으로 건져내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구원해 주는 손길은 없다. 체포된 후로도 정상적인 생활을 하면서 법과 규칙, 제도를 향해 돌진하는 주인공 ‘요제프K’는 초현실적이다.

그러나 비현실적인 환영을 뚫고 나오는 한 인간의 좌절과 몰락 그리고 죽음, 폭력적 제도의 억압, 인간의 욕망과 굴레에 멈추어선 한 인간은 굳게 닫쳐지고 내면의 숨통을 조여 오는 보이지 않는 권력에 자율성이 훼손당하고 규제와 법의 양면성의 부조리함은 현실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해 죽음으로써 한 영혼이 파멸되는 오늘의 현실을 투영한다.

억압된 현대사회의 인간 내면을 향해 돌진하는 폭력성을 치유 해줄 수 있는 것, 그 구원의 목마름은 법의 제도다. 요제프K는 자본에 의해 휘어지고 갈라지는 법 앞에서도 무기력한 한 인간으로 몰락해 간다. 인간이 정해놓은 규칙과 규제에 의해 인간은 그 제도의 틀 속에 고립되고 몰락해 가는 부조리한 현상이다. 부조리한 현실에 고립된 탈출의 욕망은 확장되고 전진한다.

무대는 초현실적인 무대를 이룬다. 무대 바닥으로 놓여있는 책상, 의자, 벤치 등 오브제 활용은 배우들의 신체와 움직임으로 극대화 시키면서 장면적 구조를 이룬다. 프롤로그와 1장 ‘체포 장면’부터 14장 ‘종말로 가는 길’과 에필로그 까지 원작 소설을 독창적인 상상으로 배우의 움직임과 형태 만들기로 극의 구조를 세운다.

1장 법 앞에서는 원작에는 들어나 있지 않지만 소설 ‘소송’을 연극적인 장면과 공간으로 이원화 시킨다. 연출은 해설자와 문지기를 프롤로그에 도입하고 설정하면서 법의 경계와 사회제도의 질서를 경험하려는 ‘조예프K’를 비춘다. 무대의 현실과 비현실적 구조는 단절된 구조를 이룬다. 현실의 문과 법안으로 들어가는 통로는 조명의 공간으로 분할하면서 극명한 대비감을 준다.

그 현실을 움켜쥐고 있는 규칙과 ‘법’이라는 사회적 제도를 둘러싸고 있는 무대는 비현실적인 공간이다. 소송을 통해 한 인간의 영혼이 파멸되어 가는 극중 주인공 요제프K의 내면의 몰락과 파멸 그리고 둘러싸고 있는 사회적 제도의 폭력성들이 한 인간을 향해 거대한 벽을 세운다.

요제프K가 체포되면서 배우들의 움직임은 집단적 전경화를 이루면서 극의 장면을 도려내기 시작한다. 감시와 규제 그 굴레에서 벗어나려는 치열한 한 인간 영혼의 싸움이 시작된다. 주인공을 둘러싸고 있는 표피들은 폭력과 타락, 인간의 내면의 황폐한 몰락으로 몰고 간다.

제도의 억압과 인간의 폭력성은 배우들의 움직임과 변화되는 형태로 장면을 생산해 내고 내면의 소리와 인간의 절규는 움직임으로 다양한 신체의 활용은 소리와 극적인 리듬을 만들면서 역동성적으로 극을 끌고 나간다. 감시의 시선들은 보이지 않는다. 그 시선은 일상생활에 묶여있을 뿐이다. 인간의 혼돈, 무질서, 자본의 거래, 폭력, 몰락한 인간의 영혼만이 법을 둘러싸고 판을 친다. 규제와 통제, 질서는 없다. 권력을 향해 타협과 몰락 공존만이 판을 치는 세상과 마주한다. 예비판사(역·김미령) 나 배심원들도 권력을 향해 집중된다. 한 인간을 구원 할 수 있는 법은 인간 주변에만 멤 돌고 있을 뿐이다. 변호사(역·장성원)도 자본주의에 노쇠한 권력의 세포만이 온 몸을 휘감고 있을 뿐이다.

“이 심리는 조작됐습니다.(생략) 완전히 매수 됐어요. 체포와 심리, 판사, 군중 모두 한 편입니다. 이 심리의 배후에는 어떤 조직이 있습니다. 이 거대한 조직의 의미는 뭡니까? 분명히, 분명히, 저에게 없는 죄를 부과해서 절 아무도 모르게 사라지게 하려는 거겠죠. 이 심리는 연극입니다.” ‘요제프K’의 진실의 외침은 현실에 파묻히고 죄 없는 한 인간의 파멸과 몰락 그리고 죽음의 그림자는 부조리한 삶의 현실에서도 여전히 진행중이다.

이번 작품에는 오브제를 활용해 배우들의 극적 장면화를 이루는 앙상블과 균형은 작품의 주제를 관통한다. 움직임과 배우의 신체로만 형상화된 카프카 원작 ‘소송’은 공동창작의 결실이 그대로 외형화 된다. 13장 “법 앞에서의 레니” 장면에서 배우들의 역동적이고 간결한 장면으로 걷고 뛰면서, 배우들의 신체로만 표현되어진 삶과 현실의 폐쇄된 공간으로 압축적으로 도려내면서 자본과 권력 앞에서 서 있는 인간은 나약한 존재로만 비쳐지는 장면을 농축해서 표현해 냈다.

또한 특정한 장면에서 극중 인물을 그로테스크한 그림자의 외형으로 들추어냄으로써 습한 권력과 현실의 부조리함에 고립되어 있는 인간의 외소함을 드러낸다. 그림자는 주변을 감싸고 있는 현실이다. 특히 배우로써는 ‘요제프K’를 맡은 배우 이호철은 한 인간을 향해 날아오는 폭력과 몰락 그리고 혼돈된 인간영혼의 내면을 잘 그려내면서 감정을 담아내는 대사까지도 배우로써 성국한 면을 보인다. 예심 판사 역을 맡은 배우 김미령은 절제되어 있는 표현으로 작품에 균형을 탄탄하게 잡는다. 각 장면마다 특징을 도려내고 압축시키면서 전체적인 극적 긴장감과 완성도는 다소 느슨해 보인다.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공연예술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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