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표 교수의 연극이야기] 8. 붉은색 앞에 마주한 두 남자 ‘레드’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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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레드’(5.3~5.31, 충무아트홀·원작 존 로건·연출 김태훈)는 남자 주인공 두 사람이 이끌어 가는 2인극이다. 극적 구성이 갖고 있는 촘촘함으로 추상표현주의 작가(마크 로스코·1903~1970)의 예술적 고뇌를 투영한다. 작가는 실제 인물의 일화를 극의 중심으로 올려놓고, 예술가의 치열한 고뇌의 삶을 쫒아간다. ‘레드’는 영국 런던 ‘돈마웨어하우스(2009)’ 극장에서 초연 되면서 이미 성공한 작품이다. 이후 브로드웨이(2010)로 날아가 공연되면서 제16회 ‘토니 어워즈’ 최다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레드’의 국내초연은 동국대학교 이해랑극장(2011)에서 공연되면서 주인공 ‘마크’역(강신일), ‘켄’(강필성)이 맡으면서 관심을 끌었다. 예술극장 자유소극장(2013)에서 재공연 되면서 국내 무대에 꾸준하게 올려지고 있는 작품이다. 이번 충무아트홀 공연에서는 주인공 ‘마크’ 역에 (한명구·정보석)과 ‘켄’에 (박은석·박정복)이 2015년도 공연에 합류했다.

이 작품은 추상표현주의 대표적인 작가 ‘마크 로스코’의 고뇌의 사유, 진실성을 지켜내려는 작가의 예술성에 강한 온도로 그려내고 있다. “뭐가 보이지?” ,“ 뭔가 새로운 걸 만들어봐” 등과 같은 대사를 반복적으로 들어낸다. 실험적이고 독특한 예술세계를 추구하려는 집념의 온도는 예술사조의 변화, 예술성, 대중성, 상업성의 경계에서의 깊은 고뇌와 예술적 영혼의 소리들로 내면의 절규를 담는다.

작가의 천재성과 작품의 소멸

‘마크 로스코’는 1970년도에 자살로 삶을 마감한다. 1958년 뉴욕 씨그램 빌딩에 자리한 ‘포시즌즈 레스토랑’에 걸릴 벽화를 의뢰 받는다. 당시 거액을 받고 계약을 한 로스코는 40여점의 그림을 완성해 가지만 계약을 파괴하고 계약금을 돌려준다. 그의 삶을 연극 ‘레드’로 올려놓은 작가 ‘존 로곤’은 계약 파괴성을 단순함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이 사건에 주목하면서 치열한 예술가의 고뇌를 연극적인 방식으로 그려 넣는다.

대중의 상업적 기호만을 쫒아가는 작가의 존재성은 예술성을 훼손당할 수 있다. 예술사조는 당대 천재적인 작가에 의해 그려지고 지워진다. 한 작가의 의해 현실로 투영된 예술이 다른 천재작가에 의해 소멸되고 지워진다는 것은 불안함과 공포로 다가올 수 있다. 독창적인 예술성을 지켜내는 것은 철저한 예술가의 철학적 사유와 고뇌, 천재성, 창작의 치열한 내면의 공포가 밀려든다. 수천 년의 예술의 역사가 반복적으로 변화되고 흐를 수 있는 이유다. 예술사조의 초월은 박재되어 있는 현실을 뚫고 예술가의 영혼성이 작품에 투영되었을 때 생명력은 시대를 초월할 수 있다.

초월성은 시대를 뚫는 천재작가들에 의해 그려지고, 소멸된다. 그 소멸의 순간에도 불멸의 작품은 영원히 지속된다. 예술은 물과 같다. 항상 흐르고 변화되고, 새로움을 추구한다. 동시대의 지구촌 모습이 빠른 속도로 변화되는 것처럼, 그 현실을 바라보는 예술가의 창작의 예술성도 물처럼 흘러간다. 시대의 소멸성 속에서도 작품은 영원히 기록된다. 늘 새로움으로 변화되어야 한다는 예술가의 고뇌와 철학, 목마른 치열한 내면의 전투를 벌인다. 로스코 이전에는 큐비즘으로 대표되는 ‘피카소’의 시대였다.

1950년대 후반 추상표현주의자들은 유럽 미술관에서 전시회를 열면서 대중들에게 신선하고 독창적인 예술로 받아들였다. 그 한가운데 로스코가 있었다. 그의 등장으로 추상표현주의는 시대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세계전쟁, 혼돈, 무질서, 자본의 탐욕, 경제발전과 그 이면에 가려진 대중들은 그림을 통해 ‘치유’와 보여 지지 않는 상징적인 의미를 만들고 받아들인다. 추상표현주의에 당대 최고의 작가가 된 ‘로스코’ 등장에도 앤디 워홀의 팦아트에 환호하고 있었다. 이러한 예술사조의 변화는 실험성과 파격, 과감성으로 무장해 다음세대로 이어진다.

작가는 작품을 상품의 대중성으로 몰락하는 것을 경계하고 자신의 진실 된 예술성을 지켜내려는 한 작가의 고뇌를 그려낸다. 작가는 연극적인 설정을 시도한다. 켄은 로스코에게 들어나지 않았던 내면이며, 레드와 같은 강렬한 욕망으로 전이된다. 대중적으로 상품화되는 한 예술가의 몰락이 아닌 진실한 고뇌, 예술적 사유와 철학을 그려낸다. 예술은 물처럼 시대 변화에 파격과 실험, 그리고 독창적인 시선으로 변화되어야 한 다는 것. 작가는 불안, 공포, 내면의 절규와 작가의 예술성은 고독해 진다.

예술가는 불안함, 공포, 치열한 내면적 싸움과 투쟁, 그리고 자신의 예술성과 대중성의 묘한 경계에서 복잡한 사유들이 동반된다. 인간이 욕망과 내면, 절규, 불안과 공포, 영혼성, 동시대의 삶의 질서 속에서 도려내지 않은, 그 오묘함의 현상을 독특하고 독창적인 시선으로 그려낸다. 깊이를 넘어서고 미래를 투영하는 예술가의 작품은 불멸의 작품으로 기록된다.

이 불멸의 기록은 철저하게 자신 내면과 투쟁하고 치열한 예술적 싸움을 통해 진실적 영혼을 담아 예술성으로 승화된다. 철저하게 고독한 작업이다. 때로는 환영을 동반하기도 하고, 그 예술적 광기로 현실을 넘어선 공포와 망각의 환영에 시달려 자살로 삶을 마감하는 작가들은 세계 예술사 기록에 흔히 남아 있다.

대중들이 예술을 받아들이고 인식하는 것은 시대를 동반한다. 시대를 앞서는 예술가들의 천재성은 고독과 불안, 치열한 예술적 혼돈으로 채워지고 그려진다. 불안사회일수록 작품의 영혼성은 거칠고, 투박하고, 희망의 내면성은 동반되지 않는다. 삶은 현상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무질서한 세계, 현실에 투영된 난폭한 인간의 내면과 삶의 질서, 내면의 이중성, 물질만능의 타락성과 난폭성 등 예술가들이 바라보는 현실세계의 이면은 비좁고, 거칠고, 난폭 할 수 있는 현상으로 바라볼 수 있으며, 즐거움과 행복함으로 들어날 수도 있다. 수천 년의 예술의 역사는 반복과 소멸, 소멸을 통한 생성의 시선으로 현실을 관통시키며 그림으로 그려냈고 지켜왔다. 한 시대에 작가의 소멸은 작품의 영원성으로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예술의 강렬함으로 반복되어 진다.

작가는 뉴욕 씨그램 빌딩에 자리한 ‘포시즌즈 레스토랑’에 걸어질 벽화그림 계약을 파괴한 시점부터 그의 화폭에 강렬한 ‘레드’의 색감으로 예술가의 영혼을 담아내는 2년의 과정을 그려낸다. 로스코 에게 레드는 예술가로써 삶을 지켜내는 강렬함이며, 숭고함을 지켜내려는 내면의 욕망이다. ‘레드’에 생명을 투영한다. ‘블랙’이 ‘레드’를 소멸시키지 못하는 것은 우주의 모든 신성의 생명력을 잡아당기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극중 인물 켄을 연극적인 설정으로 배치하면서 치열한 내면의 영혼성에서 들추어지지 않은 예술가의 고뇌를 그려낸다. 마치, 화폭에 로스코의 삶을 강렬하게 그려 넣는다. 작가의 고뇌와 실험성의 욕망, 예술의 진실성, 세대의 변화, 파격과 실험, 예술의 가치관들이 섞여진다. 연극 레드는 로스코를 무대에 올려놓고, 한 예술가의 치열한 욕망을 경청하기 시작한다.

두 남자가 물들이는 레드

극중 인물 로스코를 그려내는 배우 한명구가 무대에 서성인다. 담배를 피워 물며 작가의 고집스러운 예술적 집념의 내면을 만들어 간다. 5장으로 구성된 장면 마다 축음기에서 흘러져 나오는 클래식 음악들은 무대 바닥으로 튀겨진 붉은 색은 헝클어진 색 안료 통과 함께 무대 구석구석 놓여있는 대형 캔버스로 한 영혼을 올려놓는다.

객석을 향해 걸려있는 상상속의 뉴욕 씨그램 빌딩에 걸려진 그림은 관객 내면의 마음으로만 비추어진다. 로스코는 상상의 그림에 색감을 칠하고, 선을 그리면서 오감을 자극한다. 무대로 들어선 캔을 향해 그는 “뭐가 보이지? 좀 더 가까이, 가까이 다가가야 해만 해. 그림을 요동치게 해. 너한테 말을 걸게 하란 말이야. 가까이.(중략) 그림이 스스로 퍼져나가 수 있도록 말이야.(중략) 그림 쪽으로 관계를 맺으란 말이야!.. 그래, 뭐가 보이지?” 파격과 실험 그림을 통해 들어나지 않는 세계의 형상을 담아내려는 예술적 사유의 고뇌들이 극중 인물의 내면으로 파고든다. 이러한 내면의 욕망을 꺼내기 위해 극중 인물 캔을 설정한다.

1장에서는 로스코의 예술적 철학의 사유들이 응집된다. 필립존슨에게 3만5000달러(현재 시세로 환산하면 200만 달러의 규모)를 받고 뉴욕 씨그램 빌딩 레스토랑에 걸쳐지는 벽화를 그리는 일이다. 로스코는 레스토랑에 걸릴 자신의 작품을 비발디 협주곡 ‘사계’와도 같다는 동일시된 내면을 품는다. 레스토랑은 예배당 같은 신성한 곳으로 인간의 소통과 교감의 장소인 사원으로 마들고 싶다는 그의 야심이 들어난다. 또한 “물감을 칠하는 시간은 10퍼센트의 불과해. 나머지는 기다림이야.”하듯 그의 철학이 극중 인물을 통해 스며든다.

니체를 동경했던 그는 모든 작품에서 비극성이 관통한다. 인간 생명과 소멸, 화려함과 절망, 생명과 비극, 죽음과 삶, 행복함에 불안과 공포, 침묵과 소리 등 작품에 비극성이 존재하지 않는 한 인간과 삶의 드라마틱한 움직임의 생명을 포착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색은 멈추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고 생성하는 생명체이다. 침묵은 소통과 교감을 통해 살아 움직이는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소리다.

공간을 둘러싸고 있는 살아있는 선 안으로 채워진 색들은 ‘보여 져야 하는 세계’다. 또한, 로스코에게 그림으로 보여 지는 세계는 현상으로만 들추어 낼 수 없다. 진정한 소통을 통해 작품의 생명력의 존재성을 바라본다. 작품에 소통의 지속성을 줌으로써 살아 숨 쉬는 생명을 느낄 수 있으며, 그것은 각자의 의미로 채워진다. 의미는 다시 침묵으로 채워진다. 오로지 침묵을 통해서 바라보고 그 침묵을 통해 전달되어 오는 것을 통해 작품이 품고 있는 생명의 내면을 들을 수 있다.

배우 한명구와 박은석은 세대의 갈등을 들어내고 대립하고 각을 세운다. 로스코가 큐비즘의 예술 사조를 뚫고 잭슨 폴락과 추상표현주의 대표적인 작가가 된 것처럼, 새로운 예술 세계의 생명력은 독창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파격과 섬뜩함의 실험성이 대중의 공감을 받고 현실세계로 들어 올려 졌을 때 가능해진다.

2장에서 로스코는 “모든 가치 있는 것은 종말을 맞게 되는 법이야. 우린 영원한 과정 중에 있어. 창조, 성숙, 소멸” 예술의 순환은 시대의 소멸을 통해 다시 창조되고 강력한 힘으로 그려진다. 그리고 다음 세대로 이어지게 될 독창적인 예술세계의 이어짐은 불안과 내면의 우울성이며, 새로운 세계를 추구하려는 욕망이다. 살아있음에 비극적인 존재가 되어 버린다는 것은 잭슨폴락, 바넷뉴먼, 드쿠닝과 큐비즘의 시대의 숨통을 끊어 버린 것과 같은 자신의 작품세계의 소멸에 대한 불안함이다.

로스코는 “아버지 세대의 생명을 끊고 새로운 생명을 과감하게 투영해야 한다”고 말한다. 시각으로만 들추어 낼 수 없는 심연으로 보여 지는 새로운 세계를 그려내려는 집념과 예술적 욕망이 투영된다. 색의 생명성은 변화하는 상태로 긴장성을 유지 하면서 색과 색으로 부딪쳐지는 움직임들은 역동성으로 섞여져 그림과의 교감과 소통으로만 보여 질 수 있다. 갑자기 무대는 형광등으로 밝혀지고 주변에 널려져 있던 작품의 환상성은 깨진다. 마치, 관객의 시선을 잡고 작품세계에 칠해지는 빛, 색, 선, 공간을 이루는 생명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장면을 전환시킨다.

3장에서는 니체의 비극성, 디오니소스의 감성과 아폴로의 이성적인 측면이 거침없이 대화를 통해 들어난다. 삶과 현실을 회화로 포착하는 것은 이성, 감성, 비극성이 혼합 되었을 때 강한 생명력을 잡아당길 수 있다. 예술성의 본질과 대중적 상업성의 경계의 묘한 차이와 철학의 사유들이 쏟아진다. 이어 두 사람의 영감은 대형 캔버스를 놓고는 색을 칠하기 시작한다. 캔버스를 향해 격렬한 움직임으로 무대를 압도한 레드는 강렬하게 시선을 사로잡는다. 부모가 살해당한 캔의 과거를 꺼내 놓는다. 캔에게 ‘레드’는 피로 둘러싸인 공포와 불안, 죽음을 둘러싸고 있는 절망의 레드는 죽음의 기억에서 강렬한 생명으로 이어진다.

캔은 로스코를 향해 그가 지켜내고 있는 레드의 관념성에 대해 날카로움으로 대립한다. 내면의 블랙은 고정된 관념의 죽음이다. 캔은 그 관념성에 정곡을 찌른다. “현실에서 블랙은 도구에 불과하잖아요. 그냥 황토색이나 자홍색 처럼요. 아무런 영향력이 없는 거죠. 블랙을 악의적이라고 보는 건, 색채를 괴상하게 인격화 한 거죠” 죽음을 묘사는 ‘블랙'이 아니어도 흰색도 그 다양함으로 표현될 수 있기 때문이죠. 블랙은 두려움, 단절, 우울함, 죽음이다. 레드의 강렬함은 로스코의 심장으로 전이되면서 붉은 빛은 우주의 거대한 질서를 담아낸다.

4장에서는 로스코의 예술적 철학의 사유들을 담아낸다. 작품의 상업적 대중성과 작가의 예술성에 대한 확고한 그의 예술적 철학의 사유들의 쏟아진다. 작품에 담겨있는 예술성과 대중성의 경계가 절묘하게 들어나진다. 뉴욕 씨그램 빌딩 레스토랑에 채워질 그의 작품은 숭고한 예술적 영혼으로 둘러싸여 교회예배당 같은 신성함으로 유지되어야 할 예술성이 동반된다. 내면에 박혀있는 욕망의 이중성들이 두 사람 사이에 강하게 대립된다.

캔은“(중략) 선생님과 동료들은 입체파와 초현실주의자들을 몰아내셨죠. 아, 정말 즐거우셨겠어요. 이제 선생님 차례가 되셨는데 선생님은 물러나려고 하지 않으시죠. “이제 그만 퇴장 하세요. 로스코 선생님. 왜냐면 팦 아트가 추상적 표현주의를 몰아내 버렸거든요.” 생명성은 세대들의 도전을 통한 실험성이다. 강렬한 실험성을 통해 현대미술은 움직이는 세대로 변화된다. 로스코는 켄과 2년 동안 작업을 하면서도 결혼, 연애관 등 어떻게 살아가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예술가 스스로에게만 고립되고 함몰되어 있는 예술적 영혼은 대중과 소통될 수 없는 예술성으로 캔은 바라본다.

소비의 벽에 그림을 그리는 것도 대중성을 인식한 위선자라고 몰아붙인다. 로스코는 그림의 상업화와 철저한 대중성을 비난하지만 결국, 뉴욕 씨그램 빌딩 레스토랑 벽면으로 옮겨질 그의 그림도 예배당 같은 신성함의 사원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 아닌, 대중적 기호에 흡수 될 수밖에 없다는 현실성을 인식하면서 계약을 파기한다. 캔을 통해 예술적 욕망의 강한 생명을 이식한 로스코의 예술적 욕망은 다시 ‘레드’로 강한 생명을 불태우면서 살아나기 시작한다.

5장에서는 강렬한 레드의 예술적 혼으로 응집된다. 두 사람이 마주하면서 무대 한 가운데를 채운 캔버스로 그려낸 ‘레드’는 그에게 꺼지지 않는 불멸의 생명체다. 캔을 떠나면서 그는 마지막 대사“ 뭔가 새로운 걸 만들어봐. 뭐가 보이지?” “레드요” 상업적 대중성과 타협하지 않고 철저하게 자신의 작품세계를 그리고 지켜내려 했지만 레드의 강한 생명을 온 몸으로 던져 그려낸 로스코는 66세에 면도날로 팔을 긋고 비극적으로 자살한다. 작가는 말년에 어두운 블랙으로 덮어진 그의 삶에 강렬한 레드를 그려 넣고 그의 예술적 영혼을 일으켜 세운다. 희곡의 섬세함이 레드를 강렬하게 자극한다.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공연예술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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