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병우 특파원의 워싱턴통신] ‘천재소녀’ 사건, 한국인 병적인 학벌주의 보여줘 기사의 사진
미국 하버드대와 스탠퍼드대 동시 입학을 주장했다 거짓으로 드러난 ‘천재 수학소녀’ 이야기의 전말은 기자의 가슴에도 오랫동안 무거운 납덩이로 남을 것이다. 우선 세계적 두 명문 대학 동시입학이라는 극히 ‘이례적인’ 사건에 대해 확인을 제대로 하지 않고 보도한 데 대한 후회다.

미국 버지니아주 토머스제퍼슨 과학고등학교 3학년 김정윤(18)양의 사연에 대한 국내 언론의 보도는 워싱턴DC 한 교포신문의 기사, 김양과 그 가족의 말에 전적으로 의존했다. 지난해 12월 김양이 하버드대에 조기입학을 제안받았다고 문제의 교포신문이 보도한 지 얼마 후 ‘이상하다’는 반응이 흘러나왔다. 특히 이달 김양의 두 대학 동시입학이 보도된 이후 논란이 증폭됐다.

중·고교생 자녀를 둔 어머니들 사이에서 김양 관련 의혹이 널리 퍼졌다. ‘김양과 같은 학교의 하버드대 합격생이 합격자 모임에 갔는데, 김양을 보지 못했다’, ‘김양을 영입하기 위해 두 명문 대학이 이례적으로 입시 제도를 바꿨다면 미국 언론에 한 줄도 언급되지 않을 리 없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결과적으로 맞는 얘기로 판명됐지만 당시 기자는 의혹을 제기하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한 것으로 기억한다. “한국 사람들이 정말 남 잘 되는 꼴을 못 본다. 김양의 과거 수상 경력 등 과장은 있을 수 있지만 기본적인 사실은 틀림없을 것이다.”

다른 상당수 워싱턴 특파원들도 비슷하게 반응했다고 한다. 여기에는 친분이 있는 김양 부친의 진실성에 대한 신뢰 외에 교민 사회에 “특출하다”고 일찍부터 소문난 김양의 명망도 작용했다. 기자는 3년 전 특파원으로 갓 부임했을 때부터 김양이 하버드대에 갈 재원이라는 얘기를 여러 차례 들었다.

하지만 9일(현지시간) 설마하고 접촉한 하버드대와 스탠퍼드대 공보팀은 직설적이고 분명하게 김양의 주장을 모두 부인했다. 김양 가족이나 친지만큼은 아니겠지만 기자에게도 큰 충격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해 여전히 우리 사회 일각에 궁금증이 있다. 하지만 사건의 정확한 원인과 전말은 가족 이외에는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하버드대에 갈 애”라는 주위의 기대가 김양에게 엄청난 압박이 됐고, 이번 사건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워싱턴 교민 사회에서는 금방 거짓이 들통 날 것인 데도 아이비리그 대학에 진학했다고 페이스북에 올린 고교 3년생의 사례 등이 회자되고 있다. 김양만큼은 아니더라도 많은 한인 학생들이 명문학교 진학과 자신의 가치를 동일시하는 학벌주의에 물들어 있다는 방증이다.

물론 이 학벌주의는 부모들에 의해 강요되고 키워진 것이며, 한국 사회에 만연한 ‘일류대 병’의 ‘미국판’임이 분명하다. 문제는 한국도 미국처럼 대학 합격 여부를 본인 이외에는 확인할 수 없도록 돼 있다면 이번 같은 사건이 줄을 이을 것이라는 점이다.

김양의 부친 김정욱씨는 11일 워싱턴특파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김씨는 “실제로 모든 것이 다 제 잘못이고 제 책임”이라며 “그동안 아이가 얼마나 아프고 힘든 상태였는지 제대로 살피지 못한 점, 오히려 아빠인 제가 아이의 아픔을 부추기고 더 크게 만든 점을 마음속 깊이 반성한다”고 밝혔다.

bwb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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