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호 문화비평] ‘요리하고 먹는’ 쿡방 전성시대, 푸드 포르노 아닌 ‘철학있는 식탁’ 만들기 기사의 사진
사진=최현석 인스타그램
최고 스타로 떠오른 셰프들, 예능계 블루칩으로 상한가

TV 쿡방이 범람하고 있다. 프로그램마다 요리하고 먹느라 정신들이 없다. 시청자들도 실시간 댓글들로 화답한다. 평일은 물론 주말까지 쿡방이 넘쳐나고 시청자들이 이토록 요리프로에 몰입했던 기억은 별로 없다. 요즘 셰프 인기는 그야말로 상한가다.

TV채널만 돌리면 낯익은 셰프들을 맞닥뜨린다. 여기저기 본방에다 쉴새없이 재방, 심지어 삼방까지 이뤄진다. 이제 스튜디오를 벗어나 물론 강원도 산골이나 머나먼 외국땅, 심지어 정글에서도 정신없이 요리하고 요란하게 먹는다. 쿡방을 안볼래야 안볼수 없을 정도다. 그래서 ‘유비쿼터스 쿡방’이냐는 볼멘소리도 들린다.

이미 세프들은 스타로 떠올랐다. ‘저 사람 누구지?’ 하던 무명의 세프도 어느 순간 스타덤에 오르는 요즘이다. 케이블TV에서 얼굴을 알리는가 싶더니 어느새 지상파로 진출해서 스타연예인으로 부상했다.

예능끼를 유감없이 발산하는 일부 셰프들은 타고난 듯한 예능감을 유감없이 드러내며 단시간에 강한 존재감을 보여준다. jTBC의 ‘냉장고를 부탁해’는 스타탄생의 산파역이었다. 샘킴 셰프는 MBC ‘진짜 사나이’에 출연해 ‘군입대’까지 했다. 이미 ‘셰프돌’이란 신조어가 나올 정도다.

그동안 경연과 체험에 머물렀던 리얼 버라이어티 예능프로는 이제 독신과 육아, 여행, 군대를 넘어서 쿡방으로 영역을 계속 넓혀가고 있다. 최근에는 쿡방에다 토크, 여행, 독신 등을 한데 버무린 이른바 ‘쿡방’의 복합장르화도 본격화되는 추세다.

사실 요리프로는 언제나 시청자 욕구를 자극한다. 이미 먹방이 대세였던 시절이 있었다. 2005년 방송사간 ‘맛집소개’ 경쟁이 붙었다. 때문에 전국 방방곡곡 어딜 가나 ‘TV에 나온 맛집’으로 소개된 음식점들이 넘쳐났다. 얼마나 경쟁이 심했던 지 ‘TV에 곧 소개될 맛집’이라는 간판부터 ‘TV에 나오지 않은 숨은 맛집’이란 간판까지 내건 음식점들이 등장했을 정도다.

쿡방 열풍에 ‘셰프돌’ 신조어 등장, 식탐문화를 조장한다는 비난도

그해 4월 조선일보에 게재된 ‘식탐사회 식탐시대’ 칼럼에서 문화인류학자 전상인은 처음으로 ‘식탐’이란 화두를 던졌다. 미식으로 도피하고 포만에게 위로받는 경향은 우리 사회의 각박한 인정, 표피적 유대 혹은 정신적 허기의 부재와 결코 무관해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먹기 위해 사는 것과 살기 위해 먹는 것 사이에 균형이 실종한 것이라는 따끔한 지적도했다.

진중권은 식탐문화를 한국인들의 무의식의 세계와 연계됐다고 주장한다. 한국인들에게 ‘보릿고개’가 갖는 역사적 의미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는 것. 아닌게 아니라 한국인들은 유독 먹는 행위에 커다란 문화적 의미를 부여한다. 기본적인 인사는 대부분 ‘먹다’로 만들어진다. 상당수 명사에 ‘먹다’를 붙인다. ‘나이를 먹는다’ ‘욕을 먹다’ ‘마음을 먹다’ ‘골을 먹다’ 등 웬만한 명사에다 붙이기만 하면 ‘먹다’는 새로운 문화적 의미로 재탄생했다.

‘춥고 배고프게 살아온’ 한국인들의 숙명적 고난의 역사에서 ‘먹는다’는 행위는 나에겐 축복이요, 타인에겐 커다란 덕담이었다. 아침 점심 저녁 언제든 만나는 사람마다 ‘식사했느냐’는 인사는 가장 인간적이고 배려깊은 예절로 통한다. 이 측면에서 ‘먹는 행위’는 생존의 숭고함을 내포한다.

1970년대 ‘잘 먹었다’는 말은 가난 탈출을 의미했다. 지독한 보릿고개를 넘어서 생물학적인 포만감을 어느 정도 느낀다는 것이다. 1980~1990년대 한강변에서 깊은 계곡에 이르기까지 굽는 연기가 피어오르던 ‘삼겹살 문화’는 가난종식의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이때만 해도 셰프라는 단어는 사치스런 외국어였다. 조리사 내지 주방장을 상징하는 단어에 머물렀다.

1인 가구 증가와 편의성 중심 푸드문화에 대한 대중적 거부감의 표현

지난 몇년간 먹방 주제는 ‘어디서 무엇을 먹을까’이었다. ‘삼겹살’로 포만감을 해소한 시청자들은 ‘맛있는 먹거리’를 찾아 나섰다. ‘어디가면 맛있더라’라는 입소문은 급기야 먹방이라는 장르의 주제로 등장했다. TV마다 앞다투어 먹방을 하는 사이 맛집들은 쉴새없이 증가했다.

1인 가구의 급증과 빤한 먹거리는 편의성 중심의 패스트푸드 영역을 급속히 팽창시켜온게 사실이다. 화면에 비친 맛집은 이러한 인스턴트 피로감을 메워줄 수 있었다. TV 방송사들은 맛집을 찾는 시청자들의 본능을 파고들었다. 먹방프로그램이 인기를 끄는 이유다.

올해는 어느때보다 쿡방 대세다. 셰프가 프로의 중심에 등장했다. 지난 15일 jTBC의 ‘냉장고를 부탁해’에 출연한 셰프들이 MBC 다큐멘터리 ‘다큐스페셜’의 ‘별에서 온 셰프’, SBS의 토크쇼 ‘힐링캠프’에 잇따라 출연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허세’ 최현석 셰프, 정창욱 셰프는 KBS2 ‘인간의 조건’에 출연해 종횡무진 예능끼를 발휘했다.

‘소유진의 남편’ 백종원은 MBC의 ‘마이 리틀 텔레비전’과 tvN ‘집밥 백선생’에서 최고의 스타로 떠올랐다. 더 이상 그는 ‘탤런트 소유진’의 남편이 아니다. 누구나 할만한 간단한 레시피를 앞세운 그의 요리솜씨는 방송사로선 정보와 오락을 모두 제공하는 반가운 예능강점을 모두 갖추고 있다. 무엇보다 꾸밈없는 소탈함과 최고의 요리실력 자체가 그의 경쟁력이다.

KBS-STAR의 ‘식신로드’, MBC의 ‘찾아라! 맛집TV’등 먹방의 대명사격였던 요리프로그램들을 넘어서는 쿡방 프로그램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KBS는 ‘대단한 레시피’, SBS는 ‘잘먹고 잘사는 법, 식사하셨어요?’를 방송하고 있다.

포맷만 베끼는 ‘짝퉁 쿡방’은 자칫 푸드 포르노만 양산

올초 KBS ‘요리인류’에 이어 tvN의 ‘삼시세끼’와 jTBC의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촉발된 쿡방 열풍은 이렇게 많은 셰프스타를 만들어내며 손에 꼽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많은 요리프로그램을 양산하고 있다.

그만큼 쿡방 열풍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미식이 아닌 식탐문화를 양산한다는 비판이다. 시청자들에게 무분별할 식탐문화를 심어준다는 지적이다. 이른바 ‘푸드 포르노’(Food Porno)라는 관점에서다.

‘푸드 포르노’는 미국의 여성학자 로잘린 카워드가 처음 사용했다. 음식이나 이를 먹는 영상, 이른바 먹방이나 쿡방을 보며 자신의 욕구를 채우는 일종의 대리만족을 뜻한다. 쿡방을 따라 한다는 사람보다는 아직은 눈요깃거리로 보고 즐기는 사람들이 훨씬 많은게 현실이다.

호텔 최고급 레스토랑 또는 재벌가 연회장에서나 나올법한 호화 요리를 선보이거나 정체모를 낯선 요리를 만든다면 자칫 시청자를 ‘무력한 관전자’로 전락시킬 수 있다.

이제 쿡방PD들에게 ‘먹고 마시고 사는 법에 대한 음식철학’이 필요한 시점이다. 우후죽순 생겨나는 TV쿡방 프로그램이 시청률에만 매인다면 종국에는 푸드 포르노란 비판을 면키 어렵다. 쿡방 열풍이 절정에 오른 지금 ‘철학이 있는 식탁’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때가 아닐까.

김경호 방송문화비평가 alps1959@hanmail.net blog.daum.net/alps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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