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표 교수의 연극이야기] 12. 이윤택의 ‘문제적 인간 연산’, “굿판의 걸작”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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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격과 실험성을 날카롭게 들고 연출의 천재적 광기를 무기로 국내 현대연극을 강력한 속도로 흡수해 버리고 있는 연출가 이윤택. 텍스트를 해체시키고 해체된 공간에 그만의 독특한 연극문법으로 파격과 실험성으로 채워 넣고, 이승과 저승의 세계를 ‘제의(굿)’으로 경계를 허물며 우리 전통양식을 섞고, 연극적인 초현실세계를 넘나들고 있는 그의 작품세계는 가장 대중적이면서도 실험적인 연출가로 그의 연극적 광기는 쉼 없는 천재성을 발휘한다.

그가 ‘문제적 인간 연산’ 다시 들었다. 20년(1995)전 초연(예술의전당 토월극장)당시 연산(유인촌)은 광기의 폭군으로, 폐비윤씨를 그리워하는 결핍된 한 인간의 나약한 절망적인 모성애를 그려냈고, 배우(김혜영)는 역사를 뚫고 나온 듯 신들린 듯 녹수를 연기했다. 이 작품을 통해 이윤택 연출은 백상예술상 대상·작품상을 비롯해 국내 권위 있는 연극상을 휩쓸었다.

연출가 이윤택은 1986년 <연희단 거리패>를 창단하면서 우리 전통양식을 연극적으로 무장해 가장 대중적으로 발화시켜낸다. 무서운 속도로 연극을 전통으로 포장하고, 연희와 굿으로 표현양식을 뒤집어 연극적 놀이성 으로 돌진한다. 무서운 힘으로 달려드는 그의 광기의 연극적 천재성은 혼혈된 연극문화를 그만의 독특한 해체와 재구성의 연극양식으로 국적인 분명한 우리연극으로 생산해 내고 있다. 한국연극의 정체성에 명확한 선 긋기를 한 작품들은, 해외 유명 연극페스티발에서 더 열광한다.

전통연희, 제의, 불교, 굿, 민속과 무속문화, 놀이성 등은 연출가의 특유의 무대 문법인 ‘섞임’의 전투적인 에너지들로 환치되어 현대극, 신파극, 대중극, 부조리극 등 장르의 태생적 국적을 가리지 않고 무서운 속도로 돌진하면서 섭렵한다. 이 노장의 연출가는 자신내면을 생산적 연극 만들기를 통해 ‘씻김’으로 치유하면서 초월적인 천재적 광기를 드러낸다. <연희단거리패> 배우들은 이윤택 메소드로 무장하고 연출의 연극적 사유세계를 넘나든다.

<시민K>,<허재비 놀이>,<오구-죽음의 형식>,<바보각시> <비닐하우스>,<느낌 극락 같은>, <일출>, <문제적 인간 연산>,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눈물의 여왕>, <어머니>, <시골선비 조남명>,<방자뎐>, <혜경궁 홍씨>, <피의결혼>, <코마치후텐>과 공연연보에는 공식적으로 들어있지 않는 1994년도 부산광복동 ‘가마골’ 소극장에서 공연된 <에쿠우스>는 90년대 초반부터 그의 작품을 관극하고 관찰해온 작품들이다. 이윤택 연출은 극을 수용하는 과정이 한정된 장르에 머무르지 않는다. 광범위한 작품의 수용을 통한 굿과 제의적 요소, 연희와 전통의 차용을 통한 실험적인 대중극을 지향한다.

작품의 특징을 이루는 제의적 요소와 굿, 놀이성, 전통연희의 수용성들은 실험적인 형태로써 유지된다. 신명과 축제로써 연극을 생산하고 만들어야 한다는 그의 연극철학은 뚜렷하다. <연희단 거리패>의 작품은 철저하게 ‘연극은 연극이다’ 라는 관점에서 대중적 이여야 하고, ‘모두가 즐겁게 축제에 참여하는 듯 연극을 관람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초연 20년, 재공연 12년 만에 명동예술극장(2015. 7.1~7.26)에서 올려지고 있는 ‘문제적 인간 연산’은 소리꾼 이자람을 ‘녹수’역으로 파격적으로 등장시키면서 소리의 내면성으로 들어 올려지는 처절한 역사의 한(恨)의 내면은 연산과 역사의 내면으로 동일화 시켜냈고, 이자람의 구음은 피의 역사를 되돌려 놓는다. 그의 광기의 천재성으로 무장한 ‘문제적 인간 연산’을 현재의 시간으로 돌리면서 재공연 역사상 가장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승화시켰다. 흥행성·대중성·실험성 3박자를 골고루 갖추면서 연일 매진을 이루고 있다.

문제적 연극, 굿판으로 연산의 역사를 만나다.

이자람의 매서운 한의 구음은 피의 역사를 꿈틀거려 놓는다, 소리로 망자의 전령들을 불러 모으고, 죽음의 역사를 일으켜 세운다. 피의 탯줄은 질긴 연산에 죽음의 끈이고, 폐비윤씨를 통해 새 생명을 얻고자 하는 결핍의 욕망이자 광기의 근원이다. 굿과 꿈의 함몰된 연산의 기억은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허물고, 연산이 무당이 되어 녹수의 육신을 통해 폐비윤씨를 불러들이는 ‘굿판’은 죽음의 신명으로 둘러싸여 있다.

인수대비의 잔혹성과 권력의 비대함은 그로테스크한 핏빛의 옷으로 둘러싸이고, 궁은 마치 물의 수면위로 연산의 역사를 올려놓는 듯 초현실적인 세계를 그려낸다. 물은 폐비윤씨 품으로 돌아가야 할 생명의 근원이자 연산의 ‘씻김’이다. 연산의 광기, 고독과 분노, 모성애를 향한 결핍의 욕망, 개혁의 집념과 좌절, 녹수를 향한 사랑과 결핍은 한 인간의 나약함으로, 때로는 분노와 피의 광기로, 피의 칼을 휘두르면서 개혁을 하고자 했던 좌절하고 몰락의 ‘문제적 인간 연산’을 명동예술극장에 올려놓는다.

무대는 대나무로 둘러싸여 있다. 폐허의 조선왕조 역사는 대나무 밭으로 흔들거린다. 궁의 대들보는 쓰러져 있다. 역사의 몰락이고 현재를 투영한다. 죽음과 생명의 경계다. 습한 기운을 드러내는 전령들은 대 나무 밭으로 몰려있다. 무대는 현재의 삶과 사바세계를 비스듬하게 올려놓는다. 무대는 물 수면위로 떠올라있다. 물소리는 연산의 생명이다. 죽음과 새 생명이 교차되는 공간은 초현실적인 세계로 그려진다. 궁을 떠받치고 있는 대들보는 허름하고 비스듬하게 놓여있다. 폐허가 된 궁에서 살아가는 연산의 삶은 고립된 죽음의 삶이다. 연산의 모성애는 녹수를 향한다. 녹수를 향한 사랑의 집념은 결핍의 모성애를 들어내고, 연산에게 녹수는 엄마(폐비윤씨)로 동일시된다.

그 좌·우 길은 현재와 사바세계를 넘나드는 저승길이고, 현재로 이어지는 공간이다. 질긴 역사의 처절함을 들고 연산이 걸어 나온다. 탯줄은 생명의 시작이고 질긴 숨통이다. 연산의 철저한 내면의 욕망은 폐비윤씨(엄마)에 대한 결핍의 모성애로 함몰된다. 1막은 굿판이다. 폐비윤씨 제사에 연산은 무당이 되어 굿판을 벌이는 장면은 압권이다. 굿판을 막는 인수대비는 거대한 옷더미를 뒤집어쓰고 피 냄새를 품기는 권력의 그로테스크함을 나타낸다. 그 안에 권력의 습함과 기형화된 권력욕망은 잘려나간 인간의 육신들로 채워져 연극성으로 인물을 극대화 시킨다. 제례 의식 절차를 논의하는 연산과 대신들 사이의 논쟁에서도 연산은 왕권을 향해 도전하는 대신들과 사림파를 견제하며, 강력한 개혁의지를 들어낸다.

“책임지지 못하는 혓바닥들이 난무하는 세상은 바람직하지 못하지. 이 나라는 공자의 나라도 공자도 죽은 임금도 더 이상 책임지지 않는다. 내가 책임진다. 이 말을 사초에 기록해라. 나는 더 이상 공자의 제자가 아니다. 나는, 조선의 왕이다.”

대를 쥔 연산은 접신을 한다. 죽음의 역사는 녹수의 육신을 통해 폐비윤씨의 혼령이 중첩되고, 극중극을 통해 죽음의 역사가 돌려진다. 폐비윤씨 죽음의 수수께끼가 풀어지고 연산은 피의 광기로 인수대비를 철퇴로 내려친다. 2막은 연산의 광기와 피의 수난사다. 장송구음과 무대로 펼쳐지는 상제풍경(喪祭風景)은 막의 절정을 이룬다. 인수대비 상례를 준비하는 대신들은 대대로 내려오는 궁에 예법을 들어 연산군에게 임금의 규례에 따라 궁의 법도를 요구하고 연산은 절차를 무시한다. 연출은 연산을 단순한 폭군과 광기의 난폭한 인간으로만 바라보지 않으면서 개혁의 의지를 꿈꾸는 인물로 선긋기를 한다.

2막 2장은 ‘폐비윤씨의 피적삼’이다. 폐비윤씨가 사약을 받고 피를 토해낸 적삼의 비밀이 밝혀진다. 대밭의 혼령은 녹수의 육신을 괴롭힌다. 대나무 밭은 망자들의 혼령의 공간이다. 이 연극적인 설정을 통해 사바세계를 있는 놀이성은 시·공간을 초월하고, 연산의 광기의 역사는 연극적으로 설계되고 조립된다. 연출은 녹수의 육신과 폐비윤씨의 혼령을 합(合)을 이루게 하면서 극적인 장치를 연결하고 서사를 확장한다. 폐비윤씨의 죽음의 한(恨)은 이자람의 매서운 판소리로 역사를 그려내고 1인 2역(녹수·폐비윤씨)의 내면을 절묘하게 담아낸다.

대신들의 피의 숙청은 연극적인 놀이로 경쾌하게 그려진다. 피 적삼이 밝혀진 뒤 역사의 기록은 아들로서 폐비윤씨의 한을 토해내고 궁궐을 피바람으로 물들게 한 연산의 폭군적 광기로만 묘사된다. 2막3장에서 비쳐지는 연산은 오히려 폐비윤씨를 죽음으로 몰고 간 부패한 권력으로 향한다. 연산은 대신들과 사림파들에 의해 왕권이 조정되고, 권력을 유지하려는 암투와 음모, 결탁의 권력으로 폐비윤씨를 고립시키고 권력을 유지하려는 간신들은 세치 혓바닥으로 성종의 마음을 흔든다. 사약을 마시고 피를 토하며 죽어간 폐비윤씨는 연산의 시선으로는 부패된 역사와 권력의 피해자다.

연산은 2장 마지막 대사에서 “어차피 이놈의 세상은 한번 무너져야 한다. 나는 더 이상 이 낡은 기둥과 고색창연한 서까래 밑에서 살지 않겠다. 섞고 섞어서 부패한 냄새가 대궐 곳곳에서 풍기니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단 말이다. 지금 세상에서 내가 할 일은 이 낡은 기둥이며 저 섞는 세상의 서까래를 부수는 일이다. 파괴다 파괴!” 외치면서 개혁을 위한 낡음의 역사를 잔혹한 피의 죽음으로 휘두르고 “한 세상 부서졌다. 승재야 봐라. (시체들을 둘러보며) 이제 이 폐허위에 무엇을 세울까? 복사꽃을 심어 무릉도원 펼칠까, 천년 왕국을 건설하랴.” 라든가 “여기는 지난 시절의 폐허궁이다. 이 집을 허물고 우리 새 집을 지어보자” 연산의 대사를 통해 부패한 역사를 다시 세워보려는 연산의 강한 개혁의지가 들어난다.

피로 물들인 광기의 개혁에 동조하지 않는 ‘처선’ 마저 죽임으로 연산의 개혁의지는 폭군의 광기로 숨을 죽인다. 연출은 2막 마지막 장면에서 죽은 대신들이 이승과 저승의 경계 창호지 문살에 피 묻은 옷을 널어놓고 대밭으로 걸어 들어가면 망자의 성종은 대신들을 향해 “그래, 애썼어...수고들 했어.....어서 와.”하면서 연극적 희극성을 유지한다. 3막에서는 혁명 반정군에 의해 연산의 왕권이 붕괴되고 연출은 그의 죽음에 탯줄을 연결한다. 연산의 죽음은 삶의 회복성이다. 새 생명을 얻으려는 강렬한 내면의 욕망이다. 권력의 부패함에 한 여인은 죽음으로 몰락하고, 핏물은 역사의 치욕스러움으로 세상을 흔든다. 연산은 물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물의 씻김을 통해 연산의 새 생명의 회복성은 물로 환치한다. 물의 씻김굿이다. 과거 역사를 걷어내고 새로운 역사적 생명을 잉태하려는 연산의 치열한 내면의 전류는 살아 물속에서 꿈틀댄다.

노장의 배우들의 균형 잡힌 연기력도 ‘문제적 인간 연산’을 탄탄하게 받치고 있다. 오랜만에 무대에선 김학철(성종)도 특유의 연기스타일로 극이 흐트러지지 않게 유괘함으로 받아내면서 균형을 잡고, 오영수(대신1), 이문수(대신2) 두 배우의 굵직한 연기는 작품의 무개중심 축을 형성한다. 이승헌(처선), 이원희(승재), 배보람(자원)은 시종일관 역할에 충실하면서 무대에서의 노련함을 들어낸다. 작은 체구에서 터져 나오는 이자람(녹수)의 소리는 매섭게 극장을 증폭시켜내고 있다. 볼만한 연극이다.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공연예술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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