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표 교수의 연극이야기] 13. 오태석 연출, ‘한강은 흐른다’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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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진 作 ‘한강은 흐른다’(유덕형 예술총감독 2015.6.18~6.28·남산아트센터)’의 물줄기를 한국연극의 거장(巨匠) 오태석(1940~) 연출이 뜨겁게 흘려보냈다. 연출가는 1967년 희곡 ‘웨딩드레스’로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후 50여년 가까이 극단 ‘목화’를 통해 수많은 작품들을 쏟아내고 있다. 오태석 연출은 한국적인 표현성으로 무장해 파격과 실험성으로 독특한 형식의 연극양식을 이끌어내면서 한국연극의 중심에 서 있는 대표적인 연출가다.

‘한강은 흐른다’는 1958년에 희곡으로 쓰여졌다. 그해 9월, 극단 ‘신협’에서 초연(初演)을 한 작품이다. 전쟁의 잔혹성이 서울도시 한복판을 강타한다. 울려대는 전투기들의 굉음은 도시의 벽면을 찢어버린다. 폭격기 배속으로 뱉어내는 포탄들이 그물처럼 쏟아져 도시 한복판(동대문시장)을 갈라놓고 있는 1950년 전쟁직후의 이야기다.

유치진은 작품의 배경을 동대문시장 주변 길(ㄴ자로 된 한길)을 무대공간으로 설정하고 있다. 길가 한쪽 방향으로는 동대문 시장 통로로 이어지는 길이고, 한쪽은 매춘 굴로 통하는 길이다. 이 두 길은 한길로 포개지는 묘한 설정구도를 이룬다. 두 길은 이념과 갈등으로 갈라진 핏물의 역사이며, 타락과 대립의 길목이다. 연출은 연극적 놀이로 극을 압축하고 상징화 시키면서 한강의 물줄기에 새 생명을 투영한다.

오태석 연출의 ‘한강은 흐른다’는 온전한 인물들이 없다. 팔은 잘려나가고 한쪽 다리는 없다. 불안전한 인간들은 만화 같은 초현실적인 상상력으로 무장한다. 극중 인물들은 철판금속성을 간접화 하는 오브제를 활용하면서 등장인물 캐릭터를 비약시키고 확장한다. 통으로 연결된 인간의 육체는 숨을 쉬어도 죽어있는 인간이고 삶이다. 인간의 육체를 도려낸 전쟁의 흔적에 연출은 철판 이미지를 부착시킨다. 전쟁의 도시는 폭탄이 떨어져 수돗물처럼 꽐꽐 쏟아지는 핏물의 역사다.

1.4후퇴를 전후해 피난민 행렬에 탑승하지 못하고 동대문시장 주변으로 살아가는 인물들 삶의 전류를 흘려보낼 수 있는 물줄기는 끊겨진다. 피의 잔혹함으로 인간의 냄새는 함몰되고, 진실성의 내면은 물질의 탐욕과 인간상실의 추악함으로 드러난다. 그 틈으로 솟아오르는 인간의 냄새는 미군의 원조와 전쟁물자는 인간 군상들의 한탕주의로 채워진다. 미국의 전쟁 물자와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오는 생필품을 들고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타락한 물질숭배주의가 판을 친다. 연출은 특정한 인물들의 외모에 서구화 되어 있는 외형으로 피부를 전이시켜 이름표를 부착한다.

‘전재민구호소’를 차려놓고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오는 음식물로 ‘꿀꿀이 죽’을 만들어 음모와 결탁으로 타락한 위선을 드러내는 소장(송영광)은 땅속에서 인간의 피를 빨아먹는 흡혈귀 같은 존재다. 인간의 탈을 쓴 (두더지·닭)으로 의인화된다. 손과 다리는 모리배들의 결탁으로 비대해진 그로테스크함을 들어낸다. 전쟁의 폐허는 성경할아버지의 구원의 소리보다도 굶주리고 삶의 배속을 채워주는 꿀꿀이죽을 맹신한다.

전쟁의 파편은 길바닥 시체잔해들로 넘쳐난다. 전쟁의 두려움과 공포는 삶을 회복 할 수 없는 절망의 시선으로 들어난다. 전쟁의 물줄기를 타고 내뿜는 숨소리는 생명을 유지 할 수 없는 절박한 죽음의 소리다. 전쟁의 폐허는 인간들의 폐허로 난무하고 전쟁으로 잘려나간 도시는 사람들이 살아갈 수 없다. 인간의 탈을 두더지, 쥐, 인간 괴물들만 판치는 세상이다. 이념의 대립은 총탄으로 잘려나간 극중 인물 ‘희숙’(박보배) 젓 가슴으로 실존적 아픔의 전류를 보내고 극중 인물 정철(김봉현)과의 절망적인 사랑의 물줄기를 흘려보낸다.

오태석 연출은 만화 같은 초현실적인 풍경으로 장면을 밀도 있게 압축하고 초연(初演) 56년 만에 오늘날 한강의 물줄기로 비춘다. 세계는 이념의 대립, 잔혹성, 인간의 실존성, 전쟁의 연속성, 자본의 결탁과 폭력성, 패권주의가 난무한다. 물줄기의 역사성에 탑승한 오태석 연출은 특유의 비약과 축약, 난장, 잔혹성, 놀이적으로 무장하고 시·공간을 초월한다. 6.25 전쟁의 잔혹함과 폐허의 잔해들을 적나라하게 파헤치면서 한강의 물줄기를 오늘날의 현실로 강렬하게 흘려보낸다.

어수선한 1951년 동대문시장 주변이다. 길 한복판으로 널려있는 시체들은 전쟁의 흔적들로 채워진다. 유치진 작 오태석 연출의 ‘한강은 흐른다’는 오태석 특유의 유희와 연극적인 놀이로 무장되어 현실을 뛰어넘는 만화경 같은 풍경을 그린다. 한국전쟁을 연극적인 무대로 역사화 하면서 미국의 대표적인 만화캐릭터인 ‘톰과 제리’를 등장시킨다. 미국이 개입된 한국전쟁은 희화화되고, 전쟁의 죽음과 살육전쟁의 포학성은 고양이와 쥐들의 ‘스팸’과 ‘쥐포’ 논쟁으로 조롱된다.

무대 뒤편으로는 공업용 대형 호수를 연결해 대형포탄, 탱크, 전쟁의 소음, 빗발치는 포탄의 소음들이 전달될 수 있도록 상징적이고 간결한 무대장치로 활용된다. 6.25 전쟁의 포학성과 잔혹성을 재치 있는 생동감으로 연결한다. 전쟁으로 파편화된 역사성을 동시대로 이어지는 전쟁의 연속성으로 융합하고 영상으로 그 난폭함을 그려낸다. 담배 카멜(CAMEL)을 상징하는 ‘낙타’의 등장은 이라크 파병을 연상시키고 전쟁의 현재성을 풍자적 시선으로 들어낸다.

하와이 장면은 경쾌한 놀이로 채워지고, 클레오파트라(정지영)은 한쪽 가슴을 들어내는 가학성을 보인다. 폭력성은 클레오파트라와 희철의 가학적 놀이로 대체되고 벽돌건물 옥상 장면에서 희숙이를 죽음으로 몰아넣지 못하는 클레오파트라 동거인 극중 인물 미꾸리(천승목)는 비로소 내면의 허물을 벗고 인간으로 돌아온다.

‘크레오파트라’가 ‘희철’을 총으로 쏘고 육신의 창자를 꺼내는 장면은 연극적 잔혹성을 들어낸다. 잔혹함의 죽음은 전쟁의 현재성이며, 꽃마차의 상여소리는 아리랑 고개를 죽음으로 넘어서야 고개다. 로즈매리(유재연)에게 한강은 엄마의 젓 줄이고, 돌아가야 할 품이다. 한강의 물줄기가 흐르는 동안은 살아있는 삶이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생명이다. 전쟁은 극중 장면을 연결하는 트로트 ‘흥남부두’로 갈라놓고, ‘대동강 편지’로 찢어놓아도 한강의 물줄기는 ‘나의 살던 고향’으로 돌아가야 할 곳이다.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공연예술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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