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호 문화비평] ‘복면가왕’ 대박비결? 스펙보다 노래만… 연출력의 힘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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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TV예능계의 최고 화두를 꼽는다면? 단연 쿡방(cooking)과 복면(mask)이 아닐까 싶다.

최근 ‘요리하는 남자’로 촉발된 쿡방(요리하는 방송)은 그야말로 ‘기승전쿡’이란 말을 낳을 만큼 인기절정이다. 지상파나 케이블 등 매체를 가리지 않고 쿡방이 넘친다. 기존 방송프로그램들조차도 어느 순간 쿡방을 슬쩍 끼워넣을 정도니 ‘쿡방에 미친 TV예능’이란 말이 그리 어색하지 않다.

그런데 쿡방 못지 않게 복면이 대세로 떠올랐다. MBC의 일밤 <복면가왕>은 매주 상한가를 치고 있다. 어딜 가나 복면을 이야기한다. 5회 연속 우승한 복면가왕이 누군지에 온통 시청자 관심들이 쏠린다. ‘클레오파트라’가 가수 김연우라는 사실을 다 알지만 누구도 지레 단정할 수는 없었다. 마지막 복면을 벗기까지 ‘지극단순’한 시청자들의 호기심은 매주 최고조에 달한다.

얼마전까지 복면에 앞서 가면이 화두였다. 드라마들이 앞다퉈 가면의 사회심리학을 소개했다. SBS의 수목드라마 <가면>(연출 부성철 극본 최호철)은 주중 드라마 부진을 깨고 약진중이다. 지난 16일 방송분 시청률은 12.2%(이하 닐슨코리아 기준)까지 기록했다. 수목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의 예상밖 부진을 감안하면 그나마 상당한 선전이 아닐 수 없다.

이 드라마는 실제 자신을 숨기고 가면을 쓴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반면 ‘짝퉁극 아니냐’는 논란속에 종영한 KBS2의 <복면검사>(연출 전산 김용수 극본 최진원)는 6.9%의 저조한 시청률로 서둘러 막을 내려야 했다. 검사신분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일을 주먹으로 해결하는 남자의 이야기였다. 당초 ‘얼토당토한 황당스토리 아니냐’는 말이 많았지만 이렇게 깨져버릴줄은 몰랐다. <가면>에 비하면 예상밖의 초라한 성적표다.

가면이나 복면 모두 영어로 'Mask'라고 번역된다. 가면은 얼굴을 감추거나 달리 꾸미기 위해 나무나 종이, 흙 따위로 얼굴에 쓰는 물건을 통칭한다. ‘가면을 쓴다’는 말은 위선 내지 거짓 등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은 의미를 갖는다. 가면 뒤에 본래의 민낯이 있기 때문이다.

가면에 이은 복면의 등장, 겉치레 중심의 모순적 현실을 우회비판

복면 뉘앙스 역시 마찬가지다. ‘복면강도’라는 범죄를 먼저 연상시키는 단어다.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게 헝겊 등을 뒤집어 쓰고 얼굴을 가리는 물건을 말한다. 방송뉴스에서 흔히 나오듯 ‘스타킹을 뒤집어 쓴’ 복면강도를 떠올릴 만큼 역시 부정적인 의미군에 속한다.

이같이 부정적인 뉘앙스의 가면과 복면이 어떻게 예능계 화두가 되었을까. 시청자들은 가면과 복면에 왜 열광할까.

가면과 복면은 ‘나의 얼굴’(my face)을 감추어준다. 나 자신을 규정하는 외적인 요인들, 예를 들면 나이나 성별, 외모, 직업, 재산, 경력, 명성, 인지도 등 모든 판단의 사회적 준거틀을 가려준다. 따라서 가면복면을 쓰면 세상은 나를 몰라본다. 그래서 나는 자유롭다. 그동안 애써 억압해왔던 원초적 자아(id)를 쉽게 드러낼 수 있다. 갈수록 세상에 감추고 싶은 ‘나의것’들이 너무 많아졌다. 마치 탈을 써야만 마음껏 양반을 욕했던 조선시대 탈춤과 같은 그런 이완의 심리가 강하게 작동한다.

<복면가왕>의 비결은 여기에 있었다. 이 프로그램은 출연자들이 위선이란 가리개를 과감히 벗어던지게 만들었다. 노래실력만 남았다. 출연자는 아무것도 의식하지 않고 노래만 잘 부르면 된다. 노래로만 승부를 가른다.

위선을 벗어던지고 노래만 부르게 한 연출력이 매주 최고의 ‘신인가수’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어느 명가수에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 탁월한 실력의 출연자들이 탄생한다. 개그맨부터 아나운서까지 최고의 직업가수를 뺨치는 실력을 보여준다.

시청률이 16%를 넘나든다. <복면가왕>은 기존 가수들의 경연이 주었던 힐링과 재미를 훨씬 넘어섰다. 2011년 가수경연을 처음 시도했던 MBC의 <나는 가수다>시리즈를 업그레이드한 그 이상이다.

만약 출연자 얼굴위에 복면이 없었더라면 어땠을까. 현직 아나운서인 ‘복면가수’는 무대에 나서지도 못했을 것이며, 무대에서 그녀의 목소리는 감동을 주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그만큼 복면의 위력은 컸다.

연예인 참관단은 물론 시청자들이 복면에 가려진 출연자를 알아맞히기란 정말 어렵다. 연예인 참관단의 이윤석이 절친인 컬투의 김태균을 미처 알아보지 못했을 정도다. 가려진 얼굴속에서 출연자들은 어느 가수보다도 탁월한 노래실력을 마음껏 선보이고 있다.

안방을 점령한 가면과 복면, 쿡방에 이은 또하나의 예능소재로 부상

<복면가왕>은 모처럼 가족들이 함께 볼만한 노래예능이라는 호평을 받고 있다.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서 복면을 쓴 출연자들의 장기를 보여주는 예능이 추가되면서 폭발적인 호응을 얻어가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반대로 우리가 얼마나 본질이 아닌 사회적 스펙에 집착해왔는지를 간접 대변해준다. 그동안 개인의 겉치레를 보고 모든 것을 판단해버린 우리에게 스스로 되묻게 한다. 나이나 성별, 외모, 직업, 재산 등은 사람의 본질을 사회적으로 왜곡해버린다. 일종의 사회적 ‘틀짓기’인 셈이다.

<복면가왕> 연출자가 이러한 틀짓기를 차단하니 시청자들에게 최고의 노래가 보였다. 겉치레 스펙에 가려졌던 탁월한 노래실력이 유감없이 주말안방을 타고 들어왔다.

젊은층을 비롯해 많은이들이 실력보다는 스펙을 중시하는 우리 사회현실의 모순을 절감한다. 긍정적인 의미의 복면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때가 아닐런지. <복면가왕>은 실력보다 겉치레에 치인 시청자들의 속마음을 정확히 꿰뚫었다.

방송문화비평가 alps1959@hanmail.net blog.daum.net/alps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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