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협녀’ 이경영, 더욱 소처럼 일해주세요 기사의 사진
영화 ‘협녀’ 스틸컷
“소가 이경영처럼 일해야 한다.”

영화 팬들 사이에 도는 우스갯소리입니다. 다작을 하기로는 대한민국에 따라올 사람이 없는 배우 이경영을 두고 하는 말이죠. 올해만 해도 ‘소수의견’ ‘은밀한 유혹’ ‘허삼관’ ‘암살’ 등 화제작에 출연했습니다. 8월에는 ‘뷰티인사이드’ ‘치외법권’ ‘협녀, 칼의 기억’의 개봉을 차례로 기다리고 있고요.

이경영이 소처럼 일하는 ‘소경영’으로 거듭난 시점은 2011년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해에만 8편의 작품에 출연하며 재기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습니다. 섹시하고 선 굵은 ‘상남자’를 주로 연기했던 지난날에 비해 맡는 역할도 매우 다양해졌습니다.

그런 그가 영화 ‘협녀, 칼의 기억’에서 전도연과 이병헌의 무술 스승으로 등장합니다. 김고은의 조력자이기도 하죠. 아무렇게나 걸친 낡은 옷과 정수리에 올려 묶은 성성한 백발이 남루해 보이지만, 부지깽이 하나를 들고도 진검을 상대하는 고수입니다. 무협 영화에 반드시 존재하는 전형적 인물이죠. 대개 깡마른 배우들이 맡는 역인지라, 풍채가 좋은 편인 이경영에게는 오히려 어울리지 않을 것처럼 보였습니다.

또 그가 무협물 속 스승의 몇 가지 유형 중 어떤 느낌의 연기를 선보일지도 궁금해졌습니다. 과묵하지만 가끔 던지는 대사가 그 자체로 명언인 스승, 그저 호통으로 일관하는 스승, 능청스럽게 너스레를 떨다가도 돌연 안광을 번뜩이는 스승 등 어느 정도 정해진 패턴이 있는 역이니까요. 이경영은 러닝타임 내내 무거운 호흡을 유지하는 배역을 주로 맡아 왔습니다. 그가 혹여 ‘허당’과 ‘대가’의 모습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스승을 연기하게 된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불안요소가 될 수도 있죠. 이경영에게도 이 변신은 도전으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이경영은 놀라운 소화력으로 이 같은 우려를 불식시켰습니다. 노스승에게 요구되는 연기 문법 중 하나를 그대로 따르되, 여기에 다정함을 가미했습니다. 기존의 스승들이 아버지의 모습 중에서도 엄격한 부분을 강조했다면, 이경영이 연기한 스승은 의외의 다정다감한 면모를 보여 줍니다. 김고은을 친손녀처럼 걱정하는 그의 모습은 이유 없이 과잉된 감정들이 넘쳐 흐르는 ‘협녀’ 속 인상적인 부분이었습니다. 분명 냉정한 인물이지만, 선함과 따뜻함이 더 도드라졌습니다. 그가 ‘군도’에서 맡았던 땡추의 모습이 슬며시 겹쳐 보이기도 합니다. 무협물에 있어서도, 이경영 개인의 필모그래피에서도 기록할 만한 변신이었습니다.

이경영은 지난 5일 열린 언론시사회에서도 분위기를 주도했습니다. 순제작비 90억원이 투입된 대작이었지만 주연 배우 이병헌이 구설수에 오르며 개봉이 1년 가까이 미뤄진 탓에 자못 가라앉은 공기는 이경영의 인사말에 부드럽게 풀어졌습니다. “제자들을 잘못 가르쳐서 이런 사단을 만들어 죄송합니다.”

웃음기가 쏙 빠진 회장에서 이경영의 재치는 더욱 돋보였습니다. 대한민국 대표 다작 배우의 체력 관리 비결을 묻자 “집 근처 족발집을 애용한다”고 말하는가 하면, 성수기 극장가에 출연작이 세 작품이나 걸린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내년에는 좀 줄이겠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답해 웃음을 선사했죠.

또 그는 마치 신인 같이 성실하고 진지하게 영화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며 감동을 주더군요. 취재진이 따로 묻지 않았음에도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 소년처럼 설렘 가득한 얼굴로 꿈을 꾸듯 말하는 이경영의 모습은 기자가 꼽는 ‘협녀’ 언론시사회의 명장면입니다.

“어릴 때부터 무협 영화를 굉장히 좋아했습니다. 성인이 돼서도 잠자기 전에 하늘을 날고 적을 무찌르는 꿈을 미리 그려 놓으며 이 꿈이 현실화됐으면 얼마나 좋을지를 생각했습니다. 영화를 통해 그 꿈을 이루게 돼서 아주 멋진 경험이었습니다.”

어떤가요? ‘소경영’의 변신이 더욱 기대되지 않으신가요?

라효진 기자 surplus@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