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희의 맛있는 e담화] 19. 현대家 MK, MH 운명을 가른 건 DJ다? 기사의 사진
정몽구 현대차 회장과 고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
이삭은 아내 리브가와 둘째 아들 야곱에 속아 맏아들 에서 대신 야곱에게 장자의 축복을 내린다. 에서가 아버지의 축복을 얻기 위해 사냥을 하러 나간 사이 리브가는 야곱에게 염소 새끼를 잡아오도록 해 별미를 만들고 털이 많은 에서처럼 보이도록 야곱의 손과 목에 염소 새끼 가죽을 입혀 이삭 앞에 나아가도록 했다. 눈이 어두워진 이삭은 야곱을 에서로 여겨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할 것이며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너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을 것”이라며 축복을 내렸다. 뒤늦게 에서가 사냥한 고기로 음식을 만들어 이삭에게 왔지만 이미 빼앗긴 복을 되찾을 수는 없었다. (창세기 27장)

얼마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롯데家 형제의 난을 보면서 구약성서에 나오는 장자의 축복을 빼앗은 야곱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정신이 희미해진 94세 고령의 아버지를 동원한 장남의 쿠데타는 차남의 승리로 끝났다. 그러고 보면 유교사상이 강한 한국 사회지만 경영권은 반드시 장남에게 승계되는 것만은 아닌 듯하다.

지난 14일 세상을 떠난 비운의 삼성가 장남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도 그 중의 하나다. 사카린 밀수사건으로 아버지인 이병철 당시 회장 뒤를 이어 경영권을 넘겨받았지만 결국 그 사건으로 후계자에서 밀려나야 했다. 1966년 5월 24일 삼성 계열사인 한국비료가 부산세관을 통해 사카린 2259포대(약 55t)를 밀수한 후 판매하려다 정부 당국에 적발됐고, 삼성은 회사 지분 51%를 국가에 헌납하고 이병철 당시 회장이 퇴진해야 했다. 이맹희 명예회장은 바통을 이어받아 1968년 삼성의 모태기업인 제일제당 대표이사, 삼성물산·삼성전자 부사장 등 그룹 주요 직위에 올라 공식 후계자로서 행보를 내디뎠다. 하지만 이병철 회장으로부터 밀수사건을 청와대에 ‘투서’했다는 의심을 받아 부자 관계가 틀어졌고, 경영능력에 대한 신뢰를 얻지 못해 동생인 3남 이건희 회장에게 경영권을 넘기는 처지가 됐다. 그러면서 이맹희 회장은 야인으로 세상을 떠돌아야 했다.

정몽구(MK) 현대차 회장과 5남인 고 정몽헌(MH) 현대그룹 회장이 벌인 경영권 다툼도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이 무색하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재계 1위였던 현대그룹은 2000년 ‘왕자의 난’을 겪으면서 그룹이 4개 그룹으로 쪼개졌다.

가신그룹 인사로 맞받아치며 경영권 장악을 노리던 형제는 건강이 좋지 않던 정주영 명예회장의 서명과 육성 녹음을 공개하며 혈투를 벌였다. 결국 “정몽구 회장은 현대자동차에 전념하고 그룹 경영은 정몽헌 회장에게 맡긴다”는 아버지의 육성 녹음이 공개되면서 정몽헌 회장이 겉으로는 승리한 듯했다. 차남인 정몽구 회장은 당시만 해도 별 볼일 없었던 현대자동차를 떠안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하지만 형제의 운명은 갈렸다.

현대전자와 현대건설, 현대증권 등 주력 20여개 계열사를 떠안은 동생은 자금난을 겪으면서 그룹이 몰락하고 대북송금 및 비자금 사건 수사를 받다 스스로 세상을 등져야 했다. 반면 형은 그룹에서 자동차를 떼어내며 그룹 자금난이 번지는 위험을 차단하고 한 우물을 파서 세계 굴지의 5위 업체로 성장시켰다.

무엇이 형제의 운명을 달라지게 했을까. 똑똑한 동생과 약간은 바보스러워 보이는 형, 아버지도 동생을 후계자로 낙점했다. 현대그룹과 현대자동차 그룹의 명암을 달라지게 한 데 대해 당시 현대그룹 상황을 아는 사람들은 대부분 가신그룹 역할을 꼽는다. 영민한 가신그룹을 둔 바보스러운 형은 성공했고, 가신그룹의 잘못된 인도를 받았던 똑똑한 동생은 쇠락의 길을 걸었다.

실제로 ‘왕자의 난’ 당시 이계안 현대차 사장, 정순원 현대차 부사장, 최한영 현대차 상무 등 당시 MK 가신들은 현대·기아차를 부도 위기에 놓인 그룹에서 ‘역계열분리’ 방식으로 떼어냈고 언론에 우호적 이미지를 만들어내며 MK를 지켜냈다. 반면 김윤규 현대아산 사장, 김재수 현대경영전략팀 사장, 이익치 현대증권 회장 등 MH 가신그룹은 풍전등화의 그룹 위기에서도 미국에 머물고 있는 정몽헌 회장에게 한국으로 돌아오라는 금융당국 수장의 호출을 무시하도록 하면서 잘못된 길로 인도했다.

그런데 얼마 전 만난 현대 고위 임원을 지낸 인사는 색다른 해석을 내놨다. 형제의 운명이 갈린 데는 ‘보이지 않는’ 정부의 손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당시 그룹이 자금난을 겪자 정몽헌 회장은 박지원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을 찾아가 구제금융을 지원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면서 응하지 않으면 ‘대북송금 5억 달러를 제공한 사실을 폭로하겠다’고 협박했다는 것이다. 청와대에 드나드는 MH 태도는 그야말로 안하무인격이었다고 한다.

정몽헌 회장의 행태를 전해들은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몹시 불쾌해했다. 그러면서 직접 금융감독원장을 불러 이익치 현대증권 회장의 사표를 받으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약점’을 잡히긴 했지만 더 이상 정몽헌 회장 측에 끌려다니지 않겠다는 의미다.

민간기업인 현대그룹의 일개 금융회사 수장을 그만두게 한 것은 현대그룹에 대한 자금줄을 봉쇄하겠다는 선전포고나 다름 없었다. 결국 현대그룹은 자금줄이 막히면서 고사의 길로 내몰렸다.

더구나 정권이 바뀌면서 노무현정부가 특별수사팀을 꾸려 대북송금 수사에 나서자 MH는 DJ 측에 SOS를 쳤으나 DJ 측은 나몰라라했다.

결국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종잣돈을 갖다바치며 정권에 충성을 다했는데 정작 그룹이 위기에 몰렸을 때 철저하게 배신당한 MH는 막다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돌이켜보면 한국 현대사에서 재벌그룹과 정권은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의 관계다. 차떼기로 대선자금을 갖다바치고, 보험을 들면서 재벌들은 정권에 기생해 왔다. 정권은 재벌들의 숙원사업을 풀어주고, 불투명한 지배구조나 경영권 분쟁을 묵인해 왔다.

블룸버그통신의 유명 칼럼니스트 윌리엄 페섹은 롯데그룹 경영권 분쟁과 관련해 “다각화된 경제에서는 상속자간 싸움이 타블로이드 신문이나 인터넷 가십 사이트 소재에 그치지만 한국에서는 이 같은 분쟁이 가장 핵심적인 회사를 위협하고 국가 경제를 볼모로 잡는다”고 일침을 가했다. 그는 이어 “2001년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숨진 뒤 그룹이 3갈래로 쪼개져 주식시장에 충격을 줬다. 이 사건은 한국이 경제 선진국에 들어가기에는 한참 멀었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줬다”면서 “14년이 지났지만 한국 경제는 여전히 재벌이 지배하고 있다. 이번 롯데그룹 경영권 분쟁이 마치 ‘데자뷔(기시감)'같다”고 꼬집었다.

윌리엄 페섹은 “박근혜 대통령의 우유부단함과 삼성, 롯데, 현대가의 버릇 없는 아들, 딸에 대한 관대한 경향성이 한국을 병들게 하고 있다”는 말도 했다.

툭툭 불거지는 재벌가 ‘형제의 난’이 언제까지 주주뿐 아니라 한국 경제를 휘청하게 하도록 놔둘지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이명희 국제부장 mhe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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