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주의 책] 양의 노래 기사의 사진
양의 노래/가토 슈이치/글항아리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일본인의 자서전, 90세까지 산 인물의 평생이 아니라 그 절반도 안 되는 40세까지의 반생을 담은 책, 게다가 20세기 전반기 일본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라니. 분량도 만만찮다. 사진 한 장 없이 500페이지가 넘는다. 만약 서경식 교수(도쿄경제대)의 추천이 없었다면 이 책은 ‘발견’되지 못했을 수도 있겠다. 무명의 책, 무명의 작가를 독자에게 안내하는 과정에서 추천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다.

서 교수는 2008년 가토 슈이치의 별세 소식을 듣고 ‘한 교양인의 죽음’이라는 칼럼을 써서 작가와 책의 존재를 국내에 처음 알렸다. 최근 출간한 에세이집 ‘내 서재 속 고전’(나무연필)에서도 서 교수는 ‘양의 노래’에 한 장을 할애했다.

“대지주 가문 출신의 유복한 의사의 아들로 도쿄대를 졸업하고 구미 각지에 유학해 몇 개 외국어에 능통하고, 문학 미술 음악에 깊은 조예를 지녔으며, 일류 지식인들과 자연스런 교유관계를 맺었고, 캐나다의 대학 교단에 섰던 지식인.”

젊은 시절의 서 교수에게 가토 슈이치는 엘리트 교양주의자에 불과했다. 그러나 나중에 가토 슈이치는 그에게 가장 중요한 일본 지식인 중 한 명이 된다.

“긴 세월이 흘러 베트남 반전과 대학 해체를 소리 높여 외치던 사람들 대다수는 그 뒤 경제성장의 수혜자가 되고 체제내화해 일본 사회의 우경화에 대해서도 거의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늙은 가토 슈이치는 조금도 흔들림 없이 평화와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일관되게 고수하고 있었다. 가토 슈이치는 만년의 나날을 헌법 9조(전쟁 포기 조항)을 지키는 운동에 바쳤다.”

‘양의 노래’는 가토 슈이치라는 개인주의적이고 리버럴한 성향을 가진 일본의 젊은 엘리트 지식인이 전쟁의 광기가 휩쓸던 20세기 전반기의 일본 사회를 고독하게 통과해 나가면서 어떤 생각을 했고 어떤 정신에 도달하게 됐는지를 보여준다.

자서전으로서는 독특하게도 40세에서, 시기적으로는 1960년에서 기술이 끝난다. 책 뒤에는 작가가 덧붙인 ‘양의 노래 그 후’가 꽤 긴 분량으로 실려 있는데, 가토 슈이치라는 개인의 성립은 그 시기에 완결되었다는 설명이 있다. 그러므로 이 책은 한 개인의 생애를 회고하는 일반적인 자서전과는 다르다. 책이 회고하는 것은 한 개인의 내면이다. 여기서 내면이라면 지성, 교양, 양심 등을 말하는 것인데, 인간을 비인간화하는 군국주의 일본에서 인문과 문화, 예술 등의 힘에 기대 진실하고 아름답고 귀중한 정신을 찾아가는 한 개인의 지적 여정이 장관을 이룬다.

이 책이 보여주는 것은 한 개인의 내면만이 아니다. 그가 살았던 시대의 일본인과 일본 사회의 정신적 풍경도 펼쳐 보인다. 그것은 그의 내면이 당대 일본 정신과의 대결의식 속에서 형성된 것이기 때문이고, 그가 주변인으로 머물며 여행자의 시선으로 살아갔기 때문이고, 또 상당 시간 일본의 바깥, 주로 유럽에서 거주하며 근대적 교양을 선취한 세계인의 시각으로 일본과 일본인을 바라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두 차례 세계대전 사이의 도쿄는, 생각해보면 이상한 거리였다. 그곳에는 엄청난 번역문학과 인상파 이후 회화의 복제 및 독일 낭만파 기악이 있었고, 그것은 일본의 전통문화를 망각하기에 충분했지만 서양 문화를 이해하기에는 불충분했다.”

어떤 조직이나 이데올로기에 속하지 않고 하나의 시민으로 일본의 국가주의, 애국주의, 군국주의, 전근대성, 세속주의 등과 대결해온 그는 일본에서 드문 ‘저항하는 휴머니즘’에 도달한다.

“전쟁은 정치적 행위의 하나요, 모든 정치적 행동의 가치는 상대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상대적인 목적을 위해서, 돌이킬 수 없는 절대적인 방식으로, 헤아릴 수 없는 희생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행위가 옳지 않다는 생각은, 늘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전쟁을 피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수단을 강구한다 해도 충분하다 할 수 없다.”

1960년 일본에서 신안보조약이 성립되는 걸 지켜보면서 작성한 이런 소박하면서 견고한 평화론은 지금도 충분히 유효하다.

20세기 일본을 대표하는 교양인으로 평가되는 가토 슈이치의 지성과 저력은 책 전체에서 흘러넘치게 확인되는데, 무엇보다 문장들에서 확연하다.

“나는 자랐다, 병약하게, 예의 바르게, 다른 사람의 애정에 민감하고, 기묘한 정의감이 흘러넘치고, 타인과 어떻게 사귀는지 그 방법마저 전혀 모른 상태로, 자존심 강하고 어쩌면 퉁명스럽고 무뚝뚝한 아이로.”

이런 정교하고 참신한 문장이 끝없이 이어진다.

“그것은 누구나 다 아는 무해한 사실을 꾸며내 달래는 목소리로 속삭이려는 문장이 절대 아니었고, 누구나 다 아는 진실이란 건 없다는 입장에 서서 자신이 믿는 바를 호소하려는 문장이었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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