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주의 책] 나치의 병사들 기사의 사진
나치의 병사들/죙케 나이첼·하랄트 벨처/민음사

전쟁사를 연구하는 역사학자 죙케 나이첼(런던정치경제대 교수)은 2001년 영국 국립보존기록관에서 수만 쪽에 달하는 독일군 도청 기록을 발견한다. 영국은 전쟁 내내 수천 명의 독일 포로와 수백 명의 이탈리아 포로들을 조직적으로 도청했고 기록으로 남겼다. 이 기록들은 1996년에야 공개됐다. 나이첼은 워싱턴 국립기록관리처에서도 미국이 수집한 독일군 도청 자료들을 발견했다. 그 분량은 10만쪽이나 됐다.

나이첼로부터 공동 연구를 제안 받은 사회심리학자 하랄트 벨처(장크트갈렌대 교수)는 이 자료들이 가진 의미를 곧바로 알아봤다.

“이제까지 폭력에 대한 인간의 인식 및 살인 의지를 연구하면서 봐 온 자료들에는 문제가 많았다. 그것들은 주로 수사 기록, 군사 우편, 증언록, 회고록 등이었는데… 이런 기록들에 들어 있는 진술, 보고, 서술은 매우 의식적으로 이루어진 것이고 여러 이유로 누군가에게 자기 생각을 전달하기 위해 쓰인 것이었다. 그에 비해 수용소 군인들은 아무것도 의식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두 독일 학자가 영국과 미국이 수집한 방대한 규모의 독일군 도청 기록들을 분석해 쓴 ‘나치의 병사들’은 읽는 이들에게 충격을 준다.

“즐겁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셋째 날에는 아무러면 어떠냐는 심정이 되었고 넷째 날에는 즐거워졌어요. 아침의 식전 오락 같은 거였지요. 들판에서 달아나는 군인들을 기관총으로 몰아가고 총알 몇 발로 뻗게 만드는 일이 말이에요.”(공군 폭격기 조종사)

“우리 병사 중 한 명이 살해되면 소위가 따로 명령을 내릴 필요도 없었죠. 우리는 권총을 빼 들고 눈에 보이는 자는 여자건 아이건 그대로 갈겼어요.”(게릴라 토벌에 참여했던 병사)

“우리는 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승용차에 그 여자들(의무 노동 복무에 동원된 여자들)을 무조건 끌고 들어와서 그냥 해 버리고 다시 길바닥으로 던져 버렸죠. 걔들이 어찌나 욕지거리를 퍼붓던지!”(러시아 침공에 참여했던 상병)

끔찍한 얘기들, 인간이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싶은 얘기들이 계속 이어진다. 이것이 전쟁의 현실이고 병사의 실체라는 것일까. 독일 포로병들은 누가 자기들의 얘기를 기록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채, 그 전쟁이 어떻게 끝나고 사후에 어떻게 평가받을지 전혀 의식하지 않은 채, 자기들끼리 직접 저지르거나 경험한 온갖 살인과 폭력, 강간, 파괴 등을 무용담처럼 늘어놓는다.

독일군은 5년 동안 전쟁을 수행하면서 유대인 600만명을 포함해 5000만명을 희생시켰다. 이 책은 병사들이 별다른 거리낌 없이 학살에 참여했고, 심지어 학살의 쾌감에 중독되기도 했으며, 학살의 경험을 떠들며 으스대기도 했다는 사실을 충격적으로 보여준다. 저자들은 이들의 대화를 전하면서 군인들은 특정기간 동안 거대한 야만성에 노출되면서 그 자신도 야만스러워진다는 익숙한 해석에 이의를 제기한다. 폭력 사용이 인간에게 매력적 경험이라는 사실, 예컨대 ‘짜릿한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가정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 “살인이 허락되는, 심지어 권장되는 사회적 프레임”을 전쟁과 폭력을 이해하는 키워드로 보고, 당시 독일 병사들을 지배했던 프레임이 무엇이고 그것이 어떻게 형성됐는지 깊게 추적한다.

독일 병사들을 집단광기로 몰아넣은 주요한 프레임은 ‘제3제국’이었다. 1933년 출발해 1945년까지 유지된 히틀러의 제3제국은 독일인들에게 뭔가 새롭고 중대한 시대가 시작됐고 위대한 역사를 만들 수 있다는 느낌을 주면서 공동체를 뜨겁게 단결시켰다. 탄탄한 경제성장이 뒷받침됐고 정부는 복지국가를 약속했다. 나치체제는 열광적인 동의와 신뢰를 받았고, 빠르고 깊게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

그 결과 독일인과 독일 사회의 도덕적 기준들, 즉 프레임이 재편성됐다. 판단이나 행동의 기준에 변화가 생겼고, 이전과는 다른 가치와 규범이 정착됐다. 민족과 민족공동체가 도덕적 행위의 준거 집단으로 정의됐으며, 그런 과정에서 유대인 배제와 섬멸이라는 이야기도 자연스레 수용됐다.

“매우 근본적인 사회적 기준선들이 변하기 위해 꼭 한 세대가 교체되거나 몇 십 년이 지나야 하는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몇 년이면 족하다. 1933년에는 나치 집권에 그토록 회의적 반응을 보였던 바로 그 시민들이 1941년에는 베를린 그루네발트 역에서 강제 이송 기차들이 출발하는 것을 그냥 지켜보았다.”

민족주의를 강조하는 ‘제3제국 프레임’과 군사주의를 숭배하는 ‘군인 프레임’이 합쳐져 괴물을 만들어냈다는 게 저자들의 분석이다. 국가주의나 민족주의, 군사주의 등은 어느 시대나 정치권력에 의해 동원될 수 있는 프레임이고 지금 전 세계에서도 이를 의심할 만한 여러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다. 저자들은 사회의 흐름에 대한 성찰, 지배적인 프레임에 대한 질문과 저항을 강조한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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