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황희찬의 위안부 할머니 발언이 “미개하다”고? 기사의 사진
황희찬 /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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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줄 알았습니다. 싸우기 전에도, 싸운 후에도 서로를 향해 이를 박박 갈며 으르렁거리지 않으면 한일전이 아니죠. 적어도 축구에선 예외 없이 그랬습니다. 이번엔 한국과 일본의 2016 아시아축구연맹(AFC) 23세 이하(U-23) 챔피언십 결승전을 앞두고 신경전이 벌어졌습니다.

한국 대표팀 막내 황희찬(20·잘츠부르크)의 ‘위안부 할머니’ 발언에서 시작됐습니다. 황희찬은 지난 27일 카타르 도하 자심 빈 하마드 스타디움에서 개최국 카타르를 3대 1로 격파한 AFC U-23 챔피언십 4강전을 마치고 “한일전으로 벌어지는 결승전에서 반드시 이겨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결승전은 오는 30일 도하 압둘라 빈 칼리파 스타디움에서 열립니다.

황희찬은 여기서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할머니들을 언급했습니다. 황희찬은 “한일전에서 절대 질 수 없다. 오직 이겨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요즘 위안부 할머니와 관련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양국 사이에 역사문제가 있다. 무조건 잘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한 마디가 일본 언론과 축구팬들을 펄쩍 뛰게 만들었죠.

일본 언론들은 28일 황희찬의 발언을 트집 잡기 시작했습니다. 오후 2시 현재 일본 인터넷 포털사이트 야후 재팬 스포츠에서 가장 많이 본 뉴스는 ‘한국 U-23 대표, 또 정치적 문제 언급’이라는 표제를 뽑은 축구전문지 게키사카의 기사입니다.

게키사카는 황희찬의 발언을 비판적으로 소개하면서 2012 런던올림픽 남자 축구 동메달 결정전을 마치고 우리 수비수 박정우(27·알 자지라)가 그라운드에서 ‘독도는 우리 땅’ 플래카드를 들었던 세리머니까지 문제 삼았습니다. 당시 한국은 2대 0으로 승리해 동메달을 차지했고, 박종우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로부터 3500스위스프랑(약 400만원)의 벌금처분을 받았습니다.

오전 내내 1위였던 많이 본 뉴스 순위는 오후 들어서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댓글은 오후 들어 2배 이상으로 늘었습니다. 지금까지 2500건 이상의 댓글이 달렸습니다. “미개하다” “프로선수의 자격이 없다” “한국은 늘 징징거리기만 한다”는 비난 댓글이 대부분입니다.

일본 언론과 축구팬들은 황희찬이 정치, 종교, 민족, 인종적 선전 행위를 모두 금지한 IOC와 국제축구연맹(FIFA)의 규약을 위반했고 주장했습니다. 물론 아주 틀린 주장은 아닙니다. 축구는 그저 축구일 뿐이기 때문이죠.

일본 대표팀 선수들을 붙잡고 역사문제를 따져 물을 순 없습니다. 그래서도 안 됩니다. 장외에서는 누구나 소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라운드는 국가간 분쟁을 해결하거나 전범국으로부터 사과를 받는 곳이 아닙니다. 더욱이 대표팀 경기에서 과한 감정에 휩싸이면 국가주의, 인종주의에 빠질 수 있습니다. 황희찬의 발언은 박수를 받아야 마땅하지만 그곳이 경기장 밖이었으면 더 좋았을 겁니다.

여기서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제국주의의 광풍에 휩싸였던 일본의 전범기, 이른바 욱일기는 여전히 경기장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일본 대표팀 경기가 있을 때마다 말이죠. 일본 관중들은 여전히 전범기를 휘날리고, 몸에 두르고, 얼굴에 그립니다.

일본축구협회는 한술 더 뜹니다. 대표팀 유니폼에 전범기를 그렸습니다. 일본 대표팀 선수들은 전범기 유니폼을 입고 2014 브라질월드컵, 2015 호주아시안컵에 출전했습니다.


일본 관중석에선 전범기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오른쪽 사진은 일본 대표팀의 전범기 유니폼. 사진=국민일보 DB


IOC, FIFA, AFC의 규정을 제대로 적용하면 제국주의와 20세기 아시아 침략의 상징인 전범기는 경기장 반입불가 품목입니다. 나치 독일의 하켄크로이츠처럼 말이죠. 유럽이나 미주의 경기장에서는 의도하지 않게 나치식 거수경례와 비슷한 동작만 해도 징계를 받습니다. 하지만 일본 전범기엔 관대합니다. FIFA가 일본의 전범기 유니폼에 대한 금지는커녕 월드컵 출전까지 승인했으니 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황희찬이 FIFA, AFC 중 어느 단체로부터 징계를 받으면 대한축구협회 차원에서 적법한 절차에 따라 대응하면 그만입니다. 어차피 황희찬은 소속팀의 호출을 받고 오스트리아로 떠나면서 결승전 출전 명단에서 빠졌습니다.

반면 결승전에서 전범기가 등장하면 우리는 절대로 그냥 넘어갈 수 없습니다. FIFA, AFC가 일본의 전범기에 담긴 인류의 부끄러운 역사를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도록 대한축구협회는 더 강력하고 분명한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적어도 세계 축구계에서 한국은 작은 나라가 아닙니다. 아시아 사상 첫 월드컵 본선 출전국이자 4강 진출국입니다. 아시아 축구의 역사 그 자체입니다. 대한축구협회가 더 자신감을 가져도 좋을 겁니다.

전범기 근절을 위한 대한축구협회 차원의 조치는 일본과 싸우기 위해서가 아닌 친구가 되는 과정입니다. 일본이 전범국으로서 부끄러운 역사를 스스로 인식했으면 박종우가 독도 세리머니를 펼칠 일도, 황희찬이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할머니를 말할 이유도 없었을 겁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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