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살아 돌아와 달라”고 애원했던 신원영(7)군이 끝내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키 112.5㎝, 몸무게 15.3㎏로 또래보다 작았던 원영이의 시신은 작은 관에 담겼죠. 언론을 통해 공개된 원영이의 작은 관에 많은 이들이 분노와 슬픔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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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저 어린 아이가 저렇게 됐을까. 그 동안 어른들은 뭘 하고 있었을까. 지난해부터 관련 법령을 개정하고 전수조사를 하는데도 아이들의 비극이 끈질기게 이어지는 이유는 뭘까. 자책 섞인 의문이 온라인 곳곳에서 쏟아졌습니다. 친절한 쿡기자는 이런 의문을 뒤집어 원영이의 비극을 막을 수 없었던 이유, 아동학대의 사각지대에 대해 되짚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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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의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와 보건복지부 산하 기관인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지역 센터 관계자 등을 토대로 원영이의 비참했던 3년을 재구성할 수 있었는데요. 원영이의 비극은 부모의 이혼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원영이 남매는 2013년 말, 추운 겨울 얇은 옷을 입고 동네를 배회하다 지역아동센터 직원에 의해 발견됩니다. 당시 아버지 신씨는 이혼소송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계모 김씨와 동거 중이기도 했죠. 지역아동센터장은 아버지와 면담 후 3월부터 4월까지 두 달 간 개인적으로 남매를 보살폈다고 합니다.

jtbc 뉴스 캡처

원영이네는 소득수준이 높아 센터에 정식 등록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지역아동센터는 방과 후 돌봄 시설로 주로 취약 계층의 아이들을 보살핍니다. 예외규정으로 맞벌이나 한 부모 가장의 자녀도 우선순위로 등록할 수 있죠. 소득기준은 건강보험료 중위소득 100% 이하로 4인 가구를 기준으로 했을 때 월 소득이 439만1000원 미만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원영이네는 소득도 높고 맞벌이 가정도 아니어서 등록할 수 없었죠.

지역아동센터장은 4월 아동 추천서를 통해 남매를 센터에 정식 등록시킵니다. 이때 친부인 신씨는 아이들을 양육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죠. 친모도 마찬가지로 양육할 처지가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었습니다. 결국 남매는 아동보호시설에 정식 입소 절차를 밟게 됩니다.

그러나 평택시에는 아이들이 들어갈 시설이 없었습니다. 지역아동센터의 보살핌을 받으며 석 달을 기다린 남매는 7월에 시설 배정을 받게 됩니다. 이때 아이들이 시설에 입소했다면 비극은 거기서 멈췄겠죠. 하지만 친부가 갑자기 아이들을 직접 키우겠다며 입소를 거부합니다. 당시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시행령‧시행규칙이 제정(2014년 9월)되기 전이라 강제로 시설에 보낼 수 없었죠. 게다 그 때까지만 해도 아이와 부모를 분리할 만큼 학대정황이 부각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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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관계자는 “엄마도 아빠도 양육 할 처지가 못 된 다고해서 시설 배정까지 받은 상태였는데 아버지가 돌연 입소를 거부해 무산됐다”며 “특례법이 개정되기 전이어서 강제로 시설에 보낼 수 없었다”며 안타까워했죠. 이 관계자는 또 “제대로 양육하겠다는 각서를 받고 아이들을 집으로 돌려보냈다”며 “남매가 센터에 잘 다니고 있으니 우선 돌려보내고 문제가 발생할 경우 분리하기로 했다”고 덧붙였습니다.

그 후 센터와 보호기관은 모니터링을 가동했고 학대정황이 없어 안심했다고 합니다. 남매는 두달간 센터에 꼬박꼬박 나오기도 했죠. 그러나 9월 이후 종적을 감췄습니다. 석 달 이상 등원을 하지 않는 남매를 기다릴 수 없던 센터는 12월에 등록을 해지하기에 이릅니다. 이듬해인 2015년 초에는 원영이가 다니던 병설유치원까지 퇴소처리 됩니다. 그해 4월 원영이 누나는 할머니네 댁으로 옮겨졌고 원영이만 악몽 같은 집에 홀로 남게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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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와 헤어진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원영이는 아동학대 사각지대에 놓여 끔찍한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지난해 11월 욕실에서 감금된 채 모진 학대를 당해 숨졌고 아버지는 이를 방치한 것도 모자라 사건을 은폐‧축소하기 위해 거짓 알리바이까지 만들어내 세상을 경악시켰죠. 실종신고 후 아이를 찾아 나섰던 생모는 싸늘한 주검을 보고 망연자실했습니다. 시간을 돌리고 싶다며 오열했죠.

엄마의 말처럼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2014년 7월로 돌리고 싶습니다. 차라리 그때 시설에 보내졌더라면 원영이는 누나의 손을 잡고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지도 모릅니다. 내 자식 내가 키우겠다는 한마디에 작고 여린 생명을 고통 속에 방치하게 했다는 사실이 끔찍합니다. 아동학대의 사각지대는 가정사로 치부해버리는 사회적 무관심이 아닐까하는 반성도 하게 됩니다. 할 수 있는데 못한 것들에 대한 아쉬움은 죄책감으로 남습니다.

천금주 기자 juju79@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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