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사당 전경. 국회사무처

지난해 8월3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의사당

 좁은 구두에 갇힌 발이 욱신거렸다. 어느새 발에도 살이쪄 칼발이 평발처럼 뭉툭해졌다. 회색 셔츠가 땀에 젖어 가슴과 등에 얼룩이 졌다. 오전 7시20분. 국회의사당 본청 뒤 안내데스크에서 땀방울을 뚝뚝 떨구며 가방과 지갑을 뒤졌다. "주민등록증 없으세요?" 아무리 찾아도 신분증이 보이지 않았다. "면허증은요?" 나는 자동차를 몰 줄 몰랐다. 생각해보니 신분증은 경찰서에서 수습기자 교육을 받을 때 때 매던 파란 가방 앞 주머니에 있었다. 쭈뼛거리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제가 오늘부터 국회 출입기자인데요 신분증을 깜빡하고 안 가져왔어요"

 보안요원 일동 정적. 그렇다면 내게 기자증이나 명함을 달라고 했다.

 "기자증은 안 나왔고 명함은 있는데 아직 사회부 소속으로 된 명함인데..."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강마른 여자 안내요원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저... 어떻게 들어가요?"

 "... 학생증은 있나요?"

 "아... 학생증은 없고요 학교 도서관증만 있는데"

 "..."

 땀에 젖어서 멍청하게 대학교 도서관증을 내미는 내게 보안팀장은 일단 아량을 베풀기로 결정했다. "다음부터는 꼭 신분증 가져오세요" 간신히 '본청 방문' 카드키를 손에 쥐고 지하철 개찰구처럼 생긴 입구를 통과했다. 드디어 국회에 들어왔다. 벽을 새하얗게 칠한 복도가 양쪽으로 쭉 이어졌다. 이제 기자실로 가면 됐다. 기분 좋게 복도로 걸어들어가는데. 문제가 하나 더 생겼다. 국민일보 기자실이 어디더라. 안내지도에는 기자회견장을 빼고도 기자실만 일곱 곳 표시돼 있었다.

서울 용산경찰서 전경. 다음 로드뷰 캡쳐

 바로 전 주까지 용산경찰서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중부 라인(서울 용산구·중구)을 돌아다녔다. 정식으로 부서를 배치받지 않은 수습기자들은 라인 내 경찰서를 돌아다니며 사건·사고를 챙긴다. 청바지에 티셔츠 한 장 걸친 채 거리를 쏘다니는 게 나의 일이었다. 머리를 못 감아 냄새가 풀풀 났다. 온몸이 땀에 척척하게 젖어 있었다. 물기를 가득 머금은 공기 덕에 용산경찰서 2진 기자실 벽에는 푸른 곰팡이가 수채물감처럼 번져있었다.

 오전 1시. 바이스(경찰기자 부총책임자)에게 더듬거리며 간신히 사건 보고를 마친 뒤 기자실 바닥에 요를 깔았다. 기상시간은 오전 4시 30분. 까무룩 잠이 들어야 3시간 남짓 잘 수 있었다. 타 경찰서에 비해 유난히 좁은 용산경찰서 기자실에 가지런히 누웠다. 쿰쿰한 냄새가 콧속을 헤집었다. 수류탄처럼 '툭' 곰팡이 포자가 터져 시시각각 몸속에 스며드는 기분이었다. 비가 내렸다. 빗방울이 후드득 땅과 건물과 나뭇잎 따위에 부딪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반복되었다. 옅은 쥐오줌 냄새가 시큼했다. 내일은 남대문경찰서 기자실에서 잘까 생각해보았다.

국회 기자실 내 국민일보 부스


사내 교육 때 국회에 와봤던 기억을 되살려 간신히 기자실을 찾았다. 기자실 입구에는 각 언론사의 '부스'위치가 표시되어 있다. 부스는 넓은 기자실을 파티션으로 구획한 공간으로 4인실, 6인실, 8인실, 10인실 등 다양한 크기가 있다. 하나의 부스를 한 언론사가 이용하기도 하고 여러 언론사가 공유하기도 한다.

회색 파티션이 미로처럼 얽힌 기자실로 들어가 우리 회사 부스를 찾았다. 오른쪽과 왼쪽 벽을 따라 책상이 길게 놓여있었다. 왼쪽의 5자리가 여당반(새누리당 출입기자) 자리였고 오른쪽의 4자리가 야당반(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정의당 등 출입기자) 자리였다. 야당에 출입하게 된 나는 오른쪽 끝에서 두 번째 자리를 배정받았다. 오전 7시 30분. 공기청정기 돌아가는 소리만 희미하게 들릴 뿐 기자실 전체가 조용했다.

고요한 기자실에 흐리멍덩하게 앉아서 선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출근을 하긴 했는데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당장 무얼 해야 하는지 물어보았다. 선배는 일단 자리를 치우고 신문을 보라고 했다. 조금 이따가 정치부 말진(막내기자)의 일과를 알려준다고 했다. 전화를 끊고 책상을 치웠다. 오랫동안 비어 있었는지 내 자리 위에는 A4용지에 인쇄된 각종 보도자료와 국회의원이 발간한 책 등이 쌓여있었다. 나는 무얼 버리고 무얼 남겨야 하는지 몰랐다. 모조리 들어다가 책장에 한쪽에 모아두었다. 그러고 나서 물티슈를 뽑았다. 언제 흘렸는지 모르는 커피가 찐뜩하게 말라붙어있었다. 좌로 우로, 위로 아래로, 쓱싹쓱싹 책상을 닦았다. 먼지가 내려앉은 내선전화 다이얼을 닦고 전기 콘센트를 닦았다.

국회에서 내가 처음 한 일은 닦는 것이었다. 물티슈가 새까맣게 변했다. 땀에 젖은 나의 회색 셔츠는 검게 물들었다. 앞날이 캄캄했고 머릿속은 암전 됐다. 이곳에서 제 몫을 다 할 수 있을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과일나무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고 농민들에게 미안했던지 농작물 무덤(?)을 세워놓았다.
현재는 국회의사당 경내 구석으로 옮겨 놓았다.

고승혁 기자 marquez@kmib.co.kr


더 보기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