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슴푸레하다. 푸르스름한 빛이 발코니에 면한 창으로 희미하게 쏟아진다. 찬물로 얼굴을 헹구고 시간을 보면 대강 다섯 시 사십 분쯤. 새벽도 아침도 아닌 모호한 시각에 일어나 몽롱한 정신으로 냉수를 들어킨다. 머리를 감는다. 헤어드라이기로 말린다. 노트북을 챙긴다. 셔츠에 살찐 팔을 욱여넣고 걷는 듯 뛰는 듯 달리다 보면 어느새 버스정류장. 속이 허하지만 아침밥을 먹을 시간이 없다.

국회의사당 본청 1층. 더불어민주당 공보실(언론담당실)에는 김밥이 있다. 김밥뿐만 아니라 커피와 핫초코와 과자와 컵라면도 있다. 그러나 아침의 주인공은 단연 김밥. 오전 일곱 시 사십 분쯤, MBC 시선집중과 CBS 뉴스쇼 등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에 야당 관계자 누가 나왔는지 보고한 뒤 찬찬히 신문을 뒤적거리며 김밥을 먹는다.

21세기에도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앉아 신문을 보는 곳이 있다. 픽사베이.


 참기름을 바른 동글동글한 김밥 위엔 깨가 점점이 뿌려져 있다. 김밥 옆에는 막 배달된 아홉 가지 조간신문과 네 가지 경제지가 놓여있다. 나이를 잔뜩 먹은 근엄한 가장처럼 테이블 위에 신문을 쫙 펴 술술 훑어본다. 각 언론사의 정치부 기자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어 김밥을 먹으며 신문을 본다. 더불어민주당 부대변인 몇몇은 "이런 말 도 안 되는 일이 있느냐"며 여당을 성토하기도 하고 "우리당을 이렇게 쓰다니" 불만을 토로하기도 한다. 나는 이런저런 말에 맞장구치며 김밥을 먹는다.

 더민주에서 주는 김밥은 간이 딱 맞다. 공보실장과 부대변인은 약간 짜서 항의했더니 간이 적절해졌다고 했다. 특이한 점은 김밥의 공급처가 김밥집이 아니라는 것이다. 더민주를 지지하는 김치찌개 전문점 사장님이 아침마다 김밥을 말아준다고 한다. 나는 당근이 풍부한 더불어민주당의 김밥을 잘근잘근 씹어먹는다. 한 통신사 기자는 당근이 싫다며 당 김밥의 문제점을 토로한다. 방송사 선배는 표정이 일그러진 정치인 사진을 보며 깔깔 웃는다. 당직자 중 한 명은 아침에 특정 신문을 먼저 보면 기분이 상한다며 슬며시 옆으로 미뤄둔다. 과음한 기자 선배는 푸석푸석한 얼굴로 배를 쓰다듬으며 컵라면에 물을 붓는다.

 더민주에 들어오는 김밥 중에서 공보실 김밥이 가장 맛있다는 게 중론이다. 공보실 김밥은 밥이 질지 않고 시금치와 당근 등 재료의 본 맛이 담백하게 느껴진다. 반면 당대표실 김밥은 느끼하고 식감이 좋지 않다는 평이 있다. 마른 밥알이 입 안에서 돌아다니는데다가 미원으로 간을 더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 김밥도 꽤 맛있다는 소문을 들었지만 접해볼 기회가 없었다. 들리는 소문에 따르면 새누리당 김밥에는 속이 더 많이 들어있다고 한다.

더불어민주당 공보실 커피머신


 김밥도 김밥이지만 공보실 아메리카노 또한 매우 맛있다. 시큼하지 않고 적당히 씁쓸한 아메리카노에 얼음을 듬뿍 담아 마시면 정신이 번쩍 든다. 나는 공보실장이 알려준 레시피를 애용한다. 커피머신 '에스프레소' 버튼 한 번에 '연한 아메리카노' 버튼 한 번. 이렇게 투샷을 뽑은 뒤 엄지손가락만 한 각 얼음 다섯 개만 넣으면 완성이다. 아침부터 투샷이 부담스러울 땐 에스프레소만 뽑은 뒤 냉수를 붓는다.

 후루룩 커피를 마시고 나면 오전 여덟 시 이십 분. 이 시간이면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의 인터뷰스크립트가 홈페이지에 하나 둘 씩 올라온다. 부스(국회 기자실)로 가서 더민주 정치인들이 아침부터 무슨 말을 했는지 정리할 때다. 더민주 정치인들은 이미 합의한 사항이나 당론과 관계없이 라디오에서 하고 싶은 말을 불쑥불쑥 쏟아내기 때문에 예의 주시해야 한다. 트위터에 깨알같이 의미심장한 디스(diss)를 올리기 때문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체크도 필수다.

고승혁 기자 marquez@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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