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진안고원 벚꽃이 12일 만개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뉴시스

4월 2일 광주, 총선 11일 전 '호남민심' 르포 현장

벚꽃이 흐드러진 광주천을 바라보며 호남 민심을 물어보았다. 연분홍은 손톱만한 꽃잎에 스며들어 가지마다 피어있었다. 토요일이라 휴가 나온 군인들로 터미널 앞이 북적거렸다. 나는 펜을 들어 노트에 호남 민심을 끼적거렸다. 사거리에 걸린 더불어민주당의 새파란 현수막과 국민의당 초록빛 현수막에는 서로 믿어달라고 애원하는 내용으로 가득했다. 천변의 노인들은 문재인이 싫다고 했다. 택시기사는 김종인이 욕심 많다고 했으며 커피를 마시던 주부는 안철수가 의뭉스럽다고 했다. 신음처럼 저마다의 싫음을 싣고 표는 하얀 투표용지에 밀봉될 터였다. 나는 얼음 섞인 차가운 커피를 마시며 어린 군인에게도 마음을 물어보았다. 그는 맑은 얼굴로 선거에 관심이 없다고 했다. 나는 이 나라의 권력들이 학교에서 정치를 가르치지 않는 이유를 어렴풋이 깨달았다. 많은 것을 알면 자리보존이 어려울 것이었다. 연분홍 하얀 꽃잎이 바람을 타고 눈처럼 사뿐 내렸다.

푸짐해 보여도 홍합 껍데기를 건지면 소박해진다


4월 4일 수원, 총선 9일 전 더민주 선거유세 현장

 더민주 김종인 대표의 수원역 유세가 끝나고 기자와 당직자들이 짬뽕을 먹으러 갔다. 근방에서 유명한 집이었다. 자리에 앉자 빨간 국물 위에 홍합이 산처럼 쌓인 짬뽕이 나왔다. 나는 젓가락으로 면을 뒤적이며 건더기를 집어먹었다. 아쉽게도 몇 차례 손을 대자 해물이 자취를 감췄다. 거대한 홍합 껍데기가 음식을 푸짐해 보이게 했지만 실상은 아니었다. 나는 새까만 껍질과 껍질을 스테인리스 통에 골라내며 바지락을 생각했다. 바지락은 몸집이 작고 볼품이 없지만 국물 맛은 끝내주게 냈다.

 초록색 옷을 입은 국민의당 선거운동원들이 커다란 피켓을 들고 거리를 지나갔다. 파란 옷을 입은 더민주 선거운동원들은 당명이 무한히 반복되는 로고송에 맞춰 다이아몬드 스텝을 밟았다. 빨간색 바람막이를 걸친 몇몇은 화려한 LED로 치장한 유세차량에서 연설을 했다. 저마다 화려함을 뽐내는 선거운동을 보며 빈 홍합 껍데기가 떠올랐다. 화려한 언변 뒤에 어떤 내용이 있는지 잘 골라야 했다. 커다란 껍질로 치장한 속 빈 조개라면 스테인리스 통에 과감히 넣어야 했다. 작아도 속이 옹골찬 바지락이라면 냄비에 물을 넣고 푹 끓여 두고두고 우려내야 한다. 다만 수원 짬뽕집은 진짜 맛있었다.

4·13국회의원 선거 사전투표 첫날인 8일 오후 광주 서구 양동 광주천공원에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와 김홍걸 국민통합위원장이 한 시민에게 인사를 건네자 외면을 하고 있다. 뉴시스


4월 8일 다시 광주, 문재인 전 대표의 첫 호남유세 현장 

 벚꽃이 아직도 흐드러진 광주천에서 한 아주머니가 무슨 염치로 여기 왔냐고 소리쳤다. 할아버지는 진정 사과하는 자세라면 당장 무릎 꿇으라고 했다. 손톱만한 연분홍 꽃잎이 바람을 타고 하롱하롱 내리는 날 더민주 문재인 전 대표는 광주에서 질타를 받겠다고 했다. 검정 구두에 검정 바지에 검정 재킷을 입고 그는 반듯한 입매를 단단히 다물고 광주천을 걸었다. 충장로에서는 사랑한다고 외치며 하얗고 파란 안개꽃다발을 선물하는 지지자들에게 둘러싸이기도 했다.

 나는 열광과 냉소가 동전의 양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대선 때 압도적인 지지로 문 전 대표를 선택한 곳이 광주였다. 하지만 재보궐선거 패배와 당내 분란의 책임을 물어 그를 대표직에서 물러나게 한 곳도 광주였다. 당연하게도 기대한 만큼 허탈함 또한 큰 모양이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문 전 대표는 왜 결과에 책임지지 않느냐고 성화였다. 호남 민심이 위태로워 보였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정치와 종교와 사랑은 이성이 아니라 감정의 영역이었다. 그 감정을 내 삶에 영향 미치는 법과 제도로 잘 풀어내는 사람이야말로 좋은 정치인이었다. 학자들의 말대로 정책만 앞세워 유권자의 이성적 판단으로만 선거를 치르라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 알파고의 정치였다. 그렇다고 적을 설정하고 공포감과 증오감만 증폭시켜 법과 정책을 휘발시키는 감각적 자극이 좋은 정치란 뜻은 아니다. 담대한 이상을 사람들 마음에 와 닿게 스토리텔링을 잘 해야 표도 얻고 이상도 이루는 정치인이 될 것 같았다.

고승혁 기자 marquez@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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