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개표상황실에서 각 방송사 선거보도가 나오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개표상황실



오와!

 폭죽처럼 경탄이 터져나왔다. 환호와 박수소리가 동시다발적으로 쏟아졌다. 누구는 양 팔을 번쩍 들어 함성을 질렀고, 누구는 양손을 꼭 모아쥔 채 눈물을 글썽거렸다. 몇몇은 상기된 얼굴로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나는 감격(感激)이라는 단어를 관념 속에서 꺼내 직접 만져본 기분이었다. 사람들은 한자 뜻 그대로 명치 속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기운을 격렬하게 느끼고 있었다. 4월 13일 오후 6시. 국회의원 선거가 끝났고 출구조사 결과 더불어민주당의 승리가 예측됐다. 함성과 눈물이 뒤엉킨 더민주 개표상황실에서 나는 기사를 썼다.

 점잖고 무색무취한 국회가 오랜만에 풍성한 표정으로 가득찼다. 더민주 정장선 선거대책본부장이 흘러넘치는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연신 웃었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상황실 맨 앞줄에 앉아 가벼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희미한 미소가 무척이나 단정했다. 수백 명의 중앙당 당직자와 당원들의 환호소리가 팝콘처럼 마구 튀어올랐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기자들의 손놀림이 점점 빨라졌다.

그리하여 나는 빈털터리가 됐다.


 야당 출입기자들은 총선 결과를 두고 내기했다. 나는 더민주 96석에 배팅했다. 자신있었다. 하지만 졌다. 변명하자면 대부분의 정치부 기자와 전문가들이 90석에서 100석 사이를 예측했다. 110석 이상을 예측한 기자도 있었지만 드물었다. 하루 종일 정치만 보고 정치만 생각하는 정치부 기자들의 예측이 고만고만했다는 뜻이다. 기자뿐만이 아니었다 여론조사기관과 정치평론가도 교수도 틀렸다. 방송사도 신문사도 못 맞췄다. 야권 분열이 필패라는 관습적 공식도 쓸모 없었다. 전문가라고 생각했던 모든 사람들은 패배를 자인해야만 했다. 국회에 갇혀 거리의 마음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

"고 기자는 95석에 내기 걸었다며?"

 출구조사가 공개되기 10분 전, 더민주 강모 국장이 씁쓸한 표정으로 물어봤다. 나는 애써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아녜요 국장님. 96석에 걸었어요" 해명했다. 곧이어 김모 실장이 다가왔다. 그는 "아니 어떻게 이 당을 95석이라고 볼 수 있어!" 눈을 흘겼다. 나는 재차 "아녜요 실장님 96석에 걸었다니깐요" 해명했다. 물론 다 부질없는 짓이었다. 출구조사 결과 더민주는 120석 내외로 예측됐다. 바삐 기사를 쓰고 있는데 한 당직자가 슬그머니 다가와서 말했다. "아니 고 기자 그게 말이나 되는 내기야" 핫핫 웃으며 득의양양한 표정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더민주 당직자의 파안대소를 봤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사람은 국회의원이지만 그가 텔레비전에 나오기까지 온갖 일을 다 맡는 사람이 당직자였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이 불었던 2004년 총선 이후, 민주당계 정당은 국회의원 선거에서 이긴 적이 없었다. 반복되는 패배 속에서도 당직자들은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왔을 터였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정치인에게 회의 자료를 만들어주고, 새누리당에 대항하기 위해 원내 전략을 짜고, 빳빳한 기자를 상대하고, 당비를 모아 장부를 만들고, 빈 냉장고를 채우고, 물컵을 치우고, 사무실 불을 끄고, 다시 또 출근하고. 내가 고등학생이었던 2004년부터 승리를 위해 매일을 똑같이 산 당직자들의 소회는 감히 짐작하기조차 어려웠다. 조명을 강하게 켠 카메라가 부둥켜안고 토닥이는 당직자들을 지나쳐 박수치고 있는 당 지도부를 클로즈업했다. 텔레비전에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새누리당 원유철 원내대표의 얼굴이 재생되고 있었다.

광주민심 시무룩


환호성과 기쁨, 멋있음과 먹쩍음 

 하지만 개표 상황실에 환호성만 넘쳐난 것은 아니었다. 광주지역 출구조사가 발표되자 모두 급작스레 숙연해졌다. 편히 앉아있던 김 대표가 등받이에서 몸을 떼고 급히 텔레비전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입초리가 살짝 일그러져 있었다. 더민주는 그동안 텃밭으로 여겨왔던 광주에서 단 1석도 건지지 못했다. 전남과 전북을 합쳐 호남 전체(28석)에서 단 3석을 얻었을 뿐이었다. 야권의 험지라 불리는 경남에서 건진 의석수와 같았다. 참패였다. 호남 사람들은 더민주가 수십 년 간 호남의 여당이었지만 유권자들에게 뚜렷한 변화를 제시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대변인이 급히 김 대표에게 다가가 심각한 표정으로 무엇인가를 보고했다. 김 대표는 미간을 좁힌 채 묵묵히 듣고 있었다.

 멋쩍은 장면도 있었다. 대구지역 출구조사가 발표되자 다시금 함성이 상황실을 가득 메웠다. 김부겸 전 의원의 승리가 예측됐기 때문이다. 대구 북을에 출마한 홍의락 의원도 이긴 걸로 분석되자 박수소리가 더욱 가열차졌다. 하지만 일순간 모든 환호와 박수가 멎었다. 얼마 전까지 더민주 소속이었던 홍 의원은 공천에서 탈락하자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됐다. 더민주에서 환호하기에는 조금 민망한 상황이었다. 홍 의원은 당선이 확정된 뒤에도 더민주로 돌아갈 생각이 없다며 서운함을 드러냈다.

 멋있는 박수도, 폭소도 있었다. 더민주 사람들은 정의당 심상정 의원과 노회찬 전 의원의 당선 예측에도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공방을 주고받았지만 야권 연대의 파트너로 결정된 이상 마음을 다해 응원한 것이다. 텔레비전 화면에 기독자유당 이윤석 의원이 나오자 곳곳에서 폭소가 쏟아졌다. 이 의원은 더민주 경선에서 탈락한 뒤 탈당해 기독자유당 비례 1번으로 출마했다. 출구조사 결과 당선 가능성이 있다고 나왔다. 곳곳에서 깔깔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선거 다음날. 더불어민주당 출입기자는 여유로웠다.


다음날, 더불어민주당 출입기자가 된 뒤 가장 여유로웠다.


 다음날 오전 10시, 국회로 출근하니 복도 저편에서 번쩍번쩍 카메라 플래시가 터져나왔다. 새누리당 출입기자들이 앞다퉈 회의실로 들어가고 있었다. 김무성 대표가 사퇴 선언을 한 것이다. 낯설었다. 대표가 사퇴하고,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고, 밤샘 회의하고, 카메라 플래시가 터져나오는 대다수의 일이 지금까지 야당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서있는 더불어민주당 사무실 쪽은 고요했다. 별일 없는 일상이 소리없이 계속되고 있었다. 

"새누리당 바쁘던데요" 한 통신사 기자가 이제는 의원이 된 더민주 핵심 당직자 김모 당선인에게 말을 건넸다. "저기 매년 우리가 하던 거 하는구나? 막 사퇴하고 비대위 꾸리고 그런 거 하는 거 아냐?" 김 당선인은 특유의 시큰둥한 얼굴로 씨익 웃었다. 곧 이어 당대표 회의실에 김 대표가 들어왔다. 기자들이 총선 소감을 묻고 김 대표가 답했다. 특이한 질문도 없었고 별다른 답변도 없었다. 윤중로에 마지막 벚꽃이 지고 있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 초상화 사이에 뚫린 커다란 창문에서 햇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조만간 여름이었다. 
총선 다음날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회의실

고승혁 기자 marquez@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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