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대문구 답십리 경남기업 본사 앞에 서면 맞은편에 있는 쌍마모텔이 보인다

답십리 붉은 벽돌 쌍마모텔 맞은편에는 경남기업이 있다. 오전 5시부터 자정을 넘긴 오전 1시까지, 무지개색 무릎담요를 망토처럼 두르고 핫팩을 흔들었다. 아직 꽃샘추위가 채 끝나지 않은 시절이었다. 얼얼한 볼에 핫팩을 붙였다 떼며 하얗게 피어오르는 입김을 묵묵히 바라보았다. 오전 6시. 경남기업 사옥 청소를 담당하는 아주머니들이 차례차례 출근했다. 나는 지하주차장과 지상주차장을 돌아다니며 차량에 붙어있는 번호판을 하나하나 확인했다. 내가 기다리는 사람은 아직 출근하지 않았다.

 서서히 날이 밝아왔다. 하늘이 푸르스름해지면 경남기업 맞은편 쌍마모텔의 네온사인이 꺼졌다. 내가 기다리는 사람은 아직도 오지 않았다. 경남기업 성완종 회장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쪽지에 뇌물을 받은 정치인 이름을 남겼다. 그 뇌물을 전달한 사람은 경남기업 임원으로 추측됐다. 기자들은 기다렸다. 그들이 나타날 때까지 망부석처럼 우두커니 서있었다. 2015년 4월, 아직 꽃샘추위가 물러나지 않은 시절이었다. 오전 7시. 청소 아주머니 다음으로 출근한 경비아저씨가 추위에 떨고 있는 기자들에게 따뜻한 캔커피 하나씩 나눠주었다.

더불어민주당 당사 1층 엘리베이터 앞

더불어민주당 당사 1층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자들이 앉아있다. 기다리고 있다.

 특별한 것은 없었다. 단지 기다릴 뿐이었다. 기자가 되기 전에는 그네들이 대단한 취재 스킬을 가지고 있는 줄 알았다. 없었다. 대단한 취재 스킬 대신 꾸준한 인내심을 담백하게 품고 있었다.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 엉덩이를 대고 앉아 하염없이 엘리베이터 문을 바라보았다. 더불어민주당 당사 5층에는 홍창선 공천관리위원장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모여 공천을 논의하고 있었다. 관심사는 현역 국회의원 중에서 누가 공천에서 떨어지느냐였다. 당의 요청으로 전경들이 기자의 당사 5층 출입을 막고 있었다. 1층 엘리베이터 앞에서 죽치고 있는 수밖에 없었다. 시답잖은 사담을 주고받으며 기자들은 묵묵히 인내했다. 정물화처럼 노란색 형광 조끼를 입은 전경 둘이 우두커니 앉아있었다.

더불어민주당 당사 1층에 연합뉴스 기자가 앉아있다. 취재원이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

뉴시스 기자가 노트북을 충전하기 위해 잠시 더불어민주당 당사 맞은편 카페에 들렀다. 이날 노트북의 주인은 남들이 퇴근하는 오후 6시부터 자정까지 더민주 당사에 있었다.

 모든 기자들이 기다림에 익숙하지만 그중 단연 톱은 '통신사'다. 연합뉴스와 뉴시스 그리고 뉴스1 같은 통신사는 말하자면 '뉴스 도매상'이다. 통신사는 이 세상에서 발생한 모든 일을 가장 빨리 취재해 가장 먼저 기사를 낸다. 통신사가 각 언론사에 사건 발생을 알리면 신문과 방송 등 '뉴스 소매상'이 추가 취재와 전문가 코멘트 등 해설을 넣어 기사를 완성한다. 물론 요즘은 통신사가 직접 네이버와 다음에 뉴스를 제공하기 때문에 전통적인 뉴스 도매 소매 구분이 희미해졌다. 하지만 여전히 통신사에게 요구되는 가장 첫 번째 덕목은 '속보'다. 그런 이유로 통신사 기자들은 어떤 현장이든 가장 먼저 가서 가장 늦게까지 남아있는다. 당연히 누구보다도 오래 기다린다. 새벽녘부터 자정 무렵까지 통신사 기자들은 기다리고 쓰고 다시 기다린다. 모든 신문과 방송국의 기자들이 자리를 뜨고 나면 비로소 통신사 기자도 엉덩이를 툭툭 털고 일어난다.

국민의당 당사 브리핑룸

기자 본인의 노트북

 신문기자는 윤전기가 마지막 인쇄를 시작할 때 기다림이 끝난다. 먹색 신문지에 잉크가 스며드는 최후의 시간은 자정. 버스와 지하철도 멎는 시간이면 피로에 마른 입술이 갈라진다. 노트북 전원을 끄고 가방을 챙긴다. 잔뜩 뭉친 어깨에 백팩 끈을 걸쳐 매고 대로변에서 택시를 기다린다. 무료한 사람들은 끊임없이 네이버와 다음 등 포털을 새로고침 한다. 누군가는 새로 고친 무엇을 써야 하는데 그게 내가 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었다. 신문은 36면 정치부는 6개면. 야당반은 1개면에서 2개면. 수백 명이 매일 어디에선가 누군가를 기다리며 36면을 촘촘한 글씨로 메운다. 더 많은 계절이 지나고 더 많은 기다림이 쌓이면 익숙해질까. 고개를 주억거리며 택시를 잡아타면 오늘이 끝난다. 내일은 내일의 기다림이 나를 기다리는데 사람들은 포털을 새로 고치며 새로운 기사를 기다리기 때문에 나는 또다시 어디에선가 누군가를 기다려야 한다.

고승혁 기자 marquez@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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