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는 날, 친구가 전시회를 열었다고 해서 찾아갔다. 전시회 주제는 다름 아닌 변(便). 이름부터 '응가대전'이었다. 홍대 서교예술실험센터 앞에 붙은 포스터에는 분홍색 응가가 똬리를 틀고 수줍게 웃고 있었다. 친구는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작은 광고회사를 차렸다.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벤처 답게 생활 속 소소한 부분에서 모두가 공감할만한 얘기를 꺼내 이야기로 만들었다. 그는 과민성 대장증후군과 변비 등 배변 질환이 도심 곳곳에서 사람들을 집어삼키는 것을 보며 '응가대전'을 기획했다. 끝나지 않는 직장, 쉬는 날의 업무지시, 불행한 전두엽. 보통 사람들의 보통 이야기를 자신만의 유쾌한 화법으로 풀어낸 그는 '응가'와 관련된 애플리케이션을 만들 계획이라고 했다. 사람과 삶에 대한 공감이 느껴졌다.

 시종일관 웃으며 열정적으로 움직이는 초보 창업자를 보니 처음과 시작이 주는 두근거림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어쩐지 기시감이 들어 곰곰이 생각해보니 더불어민주당 장하나 의원실이 떠올랐다. 문을 열면 분주한 열기가 밀물처럼 쏟아지던 의원회관 709호. 지난해 9월, 처음 기자가 돼서 첫 부서로 정치부에 온 나는 첫 국정감사를 취재하기 위해 초선인 장 의원실을 찾았었다. 곳곳에 노란 리본이 달린 의원실은 분주했다. 무겁고 차분한 보통의 의원실과 달리 미묘한 활기가 느껴졌다. 두꺼운 자료를 쌓아두고 몇몇은 대화를 나누고 있었으며 몇몇은 차를 마시고 있었다.

더불어민주당 장하나 의원. 장하나 의원실 제공

 장 의원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환노위)에 소속돼 있는 만큼 의원실 실무진은 '환경'과 '노동' 분야로 나뉘어 있었다. 환경 정책을 담당하던 박모 비서는 '멸종위기종 밀수입' 문제를 쫓고 있었다. 밀수업자들이 동남아 국가에서 희귀 원숭이와 앵무새 등을 몰래 수입해 불법거래를 하는데 정부가 사실상 방치했다는 것이다. 그는 돌고래 학대 문제도 다뤘다. 쇼에 동원된 돌고래들이 부당하게 거래됐고 제대로 관리되지 않았단 내용이었다. 박 비서는 열정적으로 자료를 뒤적거리며 환경 정책의 부당함을 설명했다.

 나는 그렁그렁한 눈으로 원숭이와 돌고래의 아픔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이 국회에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어쩌면 더 나은 세계가 가능할지 모르겠다는 감상적인 생각이 들었다. 제러미 리프킨은 '공감의 시대'란 책에서 문명의 진전이 곧 공감의 확대 과정이라고 했다. 인류가 예전에는 배제했던 동성애자, 장애인, 소수민족 등에 공감하며 중세에서 현대로 넘어왔듯, 현대는 동물보호법 등 인류 너머까지 공감의 영역을 확장해 문명을 진전시킨다는 뜻이다. 언뜻 보면 권력투쟁의 콜로세움으로 보이는 국회에서 장 의원실 사람들은 아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사람과 삶에 대한 공감이 느껴졌다.

지난해 국정감사 때 장하나 의원실은 동물밀수에 대한 정부의 허술한 대응을 지적했다. 국민일보 홍석호 기자 단독.

왼쪽 김영하 작가, 오른쪽 국회의원 장하나. 장하나 의원실 제공.

 총선 시즌이 되자 장 의원도 지역구 경선에 나섰다. 뜻밖에도 그의 후원회장으로 소설가 김영하 씨가 나섰다. 나는 국회의원을 후원하는 모습이 쉬이 그려지지 않았다. 김 작가도 자신의 행보가 개연성 없게 느껴졌는지 '나는 어떻게 장하나 의원의 후원회장이 되었나'라는 짧은 글을 썼다. 나는 첫 문단을 읽자마자 김 작가의 선택이 필연이었구나 느꼈다.

 김 작가는 "오래전 우리 부부는 길냥이 두 마리를 데려다 키웠다. 아내는 그 후로 동물 보호, 더 나아가 동물의 권리에 지대한 관심을 갖는 사람이 되었다"며 "그런 아내가 어느 날 “장하나 의원이라는 국회의원이 있는데 우리가 그 의원을 후원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아내가 본 기사는 장하나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이른바 동물원법에 대한 것이었다"고 썼다. 김 작가는 "국회에 들어오자마자 이런 문제(동물의 권리)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라면, 세상의 다른 모든 약자에 대해서도 공감할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라며 후원 이유를 설명했다. 원숭이와 돌고래의 아픔을 설명하던 장 의원실 실무진의 얼굴이 떠올랐다.

 여기까지 썼지만 나는 장 의원과 점심 한 끼는커녕 흔한 커피 한 잔도 마시지 못했다. 국회의원과 식사하며 각종 사안을 취재하는 게 정치부 기자의 일이지만 이상하게도 장 의원과는 직접 연이 닿지 않았다. 두어 번 명함을 주고받으며 인사한 게 전부였다. 눈코 뜰 새 없이 총선 기간을 보내고 나니 장 의원은 경선에서 떨어졌고 앞으로는 의원이 아니게 됐다. 각 언론사에서 시시각각 당선자 인터뷰가 쏟아져 나오는데 나는 떨어진 그가 생각났다. 활기찬 의원실과 노란색 리본, 그렁그렁한 눈동자, 돌고래, 원숭이, 그리고 김영하와 길고양이. 회색 철문을 열면 따뜻한 활력이 쏟아지던 의원회관 709호를 기록해 본다.

고승혁 기자 marquez@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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