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옥씨의 미술바구니 15]감천마을의 분칠한 풍경 비꼰 한운성 개인전 기사의 사진
감천마을의 집을 '성'처럼 풍자한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한 한운성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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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벽화마을로 유명한 서울 종로구 대학로 부근 이화마을의 ‘해바라기 그림 계단’이 훼손된 사건이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이화마을의 벽과 계단 등에 예술가들이 꽃과 물고기 등을 그린 정감 있는 그림은 서울시의 도시재생 사업으로 조성됐지요. 언뜻 보기에 가난한 동네에 던져진 희망 같습니다. 그러나 관광객들의 발길이 늘면서 사생활 침해가 생기자 일부 주민이 시멘트로 그림을 지웠다고 합니다.

서울에 이화마을이 있다면 부산에는 감천마을이 있습니다. 가난이 관광상품처럼 구경거리가 된 감천마을 사람들은 행복할까요.

한운성 작가의 개인전 ‘디지로그 풍경’ 전시장에는 감천마을 풍경이 있습니다. 길바닥 시멘트는 금이 가 있는데, 집 위로 산뜻한 색상의 페인트가 칠해진 ‘블루 스테어즈’, 역시 외벽만 화사한 살구색으로 칠해진 채 거대한 성처럼 높은 솟아 있는 ‘성’…. ‘별에서 온 아이’ 카페가 기둥 위에 불안하게 얹혀 있는 그림도 있습니다. 동화 ‘어린왕자’와 인기 드라마 ‘별그대’(별에서 온 그대)를 합성한 듯한 상업적 작명입니다. 가난을 팔아 장사를 하는 이 시대의 뒤틀린 욕망을 비꼬고 싶었던 것일까요.

그가 그린 건축물은 이렇듯 비틀려 있습니다. ‘콘크리트 광화문’은 목재로 만들어진 본래의 모습은 사라지고, 콘크리트로 대체된, 박제화된 전통에 대한 비판입니다.

최근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감천마을을 가본 적이 있냐”며 “알록달록 칠해져 있고 중국 요커 족까지 관광을 오는 곳이 됐지만 주민들은 그 칠해진 색과 무관한 가난의 삶을 살고 있다”라고 하더군요. 말하자면 전시 행정이라는 것인데, 콘크리트 광화문도 같은 맥락이지요. ‘분칠한 건물’의 실체를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결합된 ‘디지로그 풍경’으로 본 것이지요.

보여지는 것의 이면을 말하기 위해 그가 취하는 방법은 비현실감을 주는 것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두 고딕 건물인 이탈리아 밀라노의 두오모 성당과 독일 쾰른의 쾰른 대성당을 빌보드 광고판 안에 슬쩍 집어넣은 식이지요. 또 유럽 관광지의 예쁜 집들이 건물의 파사드만 남긴 채 벽체가 지워져 있기도 하고, 고급 아파트가 풍선처럼 공중에 붕 떠있기도 하지요.

원래 그는 ‘사과 작가’로 각인돼 있습니다. 사진보다 더 실물 같이, 사과를 아주 정교하게 그렸지요.

“어느 날 슈퍼에 갔더니 과일이 전부 똑같아요. 삐까번쩍 잘 생겼어요. 어릴 때 본 사과는 이러지 않았어요. 작고 못생긴 것도 있고, 벌레 먹은 것들도 있었어요. 뭔가 조작된 것들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조작되지 않은 걸 보여줘야지 해서 식물학자처럼 채집하는 기분으로 그런 사과를 그린 것입니다.”

채집한 곤충을 핀셋에 꽃아 배열 하듯, 정면으로 보이는 사과를 쭉 배열해 그리고, 그림 제목에 학명을 붙인 건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제 그림 소재는 4∼5년마다 달라지고 있어요. 그렇지만 주제는 일관성이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가를 묻은 것이지요. 그걸 그림을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겁니다.”

데뷔작 ‘코카콜라 거인’은 미국의 상업주의를 비판한 것이며, 5공화국 때 지속적으로 그린 ‘매듭 그림’은 일그러진 사회를 풍자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평생 한 그림만 그리는 노 작가들이 존경스럽다는 그가 이런 농담을 해 좌중은 아연 웃음바다가 됐지요.

“저는 질려서 그렇게 못해요. 마누라가 그림으로 바람을 피운다고 놀려댑니다. 아마 한 그림만 그렸으면 바람을 피웠을 겁니다. 허허.”

한 작가는 2011년 서울대 미대에서 정년퇴직하고 지금은 전업 작가로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부친은 유한양행 1호 아트디렉터 출신인 한홍택 전 홍익대 교수, 아들은 설치미술가 한경우씨입니다. 3대가 미술인 집안이지요. 한운성 개인전 ‘디지로그 풍경’은 서울 종로구 이화익 갤러리에서 24일까지 열립니다(02-730-7818).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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