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보다 특종을 좇던 기자였습니다. 올해 초 3살 딸아이가 급성백혈병 진단을 받고서야 ‘아빠’가 됐습니다. 이후 인영이의 투병 생활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땅의 모든 소아난치병 환우와 아빠엄마들을 응원합니다.


기자 초년병 시절, 조혈모세포 기증 활성화를 위한 기획 취재팀에 속했던 적이 있었다. 수십 명의 백혈병 환우들을 만나고 그들의 어려운 사연을 소개하는 게 내 몫이었다. 고려대 1학년에 재학 중던 홍상두군이 첫 사연의 주인공이다. 당시 인기 있던 드라마 제목을 딴 ‘상두야 학교가자’가 시리즈 첫 기사의 헤드라인이었다. 상두를 비롯해 추운 겨울날 여의도성모병원에 돌도 지나지 않은 재은이를 업고 온 젊은 부부, 글리벡 약을 살 돈이 없어 고생하던 40대 가장도 떠오른다. 시리즈가 끝나고 1 년이 지난 뒤 상두도 재은이도 하나님 곁에 갔다는 소식을 듣고 잠시 우울했지만 그렇게 백혈병이란 이름은 내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15년이 흐른 지금, 취재 나온 나를 반겨주시던 상두 어머니의 모습이 자꾸 떠오른다. 내 아이가 똑같은 상황이 되고 보니 "상두에게 계속 미안하기만 하다"는 상두 어머니의 마음을 이제야 알 것 같다. 일주일 가까이 고열이 나는 인영이를 동네 병원에서 독감 검사가 음성이 나왔다는 이유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우리 부부는 자기 일에만 열중했다. 38도만 넘어도 응급실로 데려갔던 첫째와 달리 해열제를 먹여도 열이 38도 밑으로 떨어지지 않던 애를 우리는 방치하다시피 했다. 지난주 금요일이 되서야 소아전문병원에 데려갔고, 대전을지병원 응급실, 서울성모병원 응급실을 거쳐 지금 인영이는 성모병원 무균병동에 입원 중이다.
급성백혈병의 대표적 징후는 이유모를 고열과 안색이 창백하고 기력이 없는 것이다. 인영이 입술이 새파랗다 못해 하얗다.

인영이 병명은 급성림프모구성백혈병이다. 인영이는 입원한지 3일만에 전신마취를 2번이나 하고 척수·골수검사에 항암제 투여를 위해 가슴관을 삽입했지만 꿋꿋이 잘 견디고 있다. 말이 또래보다 느려 “아빠 빠방(타고 집에 가자)”이라며 침상에서도 신을 벗지 않고 있고, 엄마한테 부리는 떼도 많이 늘었지만 치료도 잘 받고 있다.

애지중지 키웠던 첫째에 비해 둘째는 대충 키워도 잘 클 것이라고 생각했던 게 인영이한테 너무 미안하다. 공정위 간사, 세종 기자농구팀 감독, 학교 모임 총무, 사내 야구단 총무 등 굳이 안 해도 될 일들로 바깥일에 분주할 동안 인영이가 혼자 병을 키운 게 아닐까. 여름에 미국 가서 잘 놀아주면 된다며 스스로를 합리화했던 내 자신이 미워 일주일 새 많이도 울었다.
제주도 가족여행 갔을때 두살 인영이 모습. 인영이는 아들처럼 인형보다 빠방을 좋아한다.

이제는 주변 분들의 기도와 격려에 마음을 다 잡고 있다. 특종, 연수 따위보다 내 인생에 가장 중요한 목표가 생겼기 때문이다. 인영이를 완치시키고 잘 키워서 날 안 닮은 멋진 놈한테 시집보내는 것이 그것이다. 5년 만에 다시 페이스북을 시작한 것도 우리 인영이가 건강을 회복하는 모습을 기록하고 여러 지인들에게 그 과정을 알리고 싶어서다. 인영이 손을 잡고 결혼식장에 들어설 때 너가 다시 건강해 진 것이 아빠 인생에 있어 가장 큰 행복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나는 아빠다.(2016년2월6일)

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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