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보다 특종을 좇던 16년차 기자였습니다. 올해 초 3살 딸아이가 급성백혈병 진단을 받고서야 ‘아빠’가 됐습니다. 이후 인영이의 투병 생활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땅의 모든 소아난치병 환우와 아빠엄마들을 응원합니다.

인영이를 포함해 무균병동에 입원해 있는 백혈병 환아들은 매일 성적표를 받는다. 새벽에 뽑아간 피는 점심쯤에 혈액수치가 적힌 쪽지로 돌아온다. 성적표를 받아든 보호자들은 거기에 적힌 숫자에 일희일비한다. 경제기사를 쓰면서 느꼈던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원칙은 여기서도 통하는 듯 하다.

설 전에 퇴원한다고 좋아하던 옆 침대 애기는 수치가 좋아지지 않고 열이 나 퇴원을 미뤘다. 오늘 인영이의 성적표는 백혈구 4230(정상치 4000~1만), 중성구 30(정상치 1000이상), 혈색소 9.7(정상치 12 이상), 혈소판 9만8000(정상치 15만 이상).
백혈구 수치만 정상일 뿐 면역력을 나타내는 중성구, 빈혈 정도를 가리키는 혈색소, 지혈작용을 하는 혈소판 수치는 아직 정상이 아니다. 그래도 입원 이래 줄곧 0(면역력이 아예 없다는 뜻)이던 중성구 수치가 30으로 생겨났고, 혈색소와 혈소판 수치가 며칠 전처럼 수혈을 할 정도로 위험수위로 떨어지지 않은 건 고무적인 일이다.
입원한지 일주일째. 수혈과 스테로이드 복용으로 망가진 면역력을 임시 복원시키는 치료를 받고 있다.

항암 치료 전 단계인 스테로이드를 먹고 있어서 그런지 밥도 한 그릇 뚝딱 비웠다. 자기 동갑내기 환우 장난감을 뺏어 신나게 놀기도 했다. 가슴에 케모포트라는 중심정맥관을 심어서 피 뽑으러 팔뚝에 주사바늘을 꼽아대지 않으니 그나마 좀 편해진 거 같기도 하다.

나는 종로3가 초동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렸다. 결혼 전부터 우리 부부를 알던 손성호 목사님을 근 5년 만에 뵙고 기도를 부탁드렸다. 잠시나마 ‘인생 별것 아니네’란 생각에 자만했던 내 자신을 회개했다. 돌아온 탕아의 느낌. 고등학교 1학년 때 부산으로 가출했다 며칠 만에 새벽에 돌아왔을 때 밤새 불을 켜놓은 채 나를 기다리시던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났다. 
아이는 아이다. 기력을 조금 회복하니 장난감을 찾는다.

예배를 드리고 오니 페이스북으로 소식을 접한 정재호 선배가 성모병원 기자실로 오셔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인간적인 욕심 이런 거 다 필요 없고 역시 건강이 최고라는 데 의견일치를 봤다. 설날에도 첫째 윤영이는 여수 외할아버지 집에, 어머니는 대전 본가에, 인영이와 우리 부부는 병원에 흩어져있는 신세지만 인영이가 웃으며 하루를 보내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다.

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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