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보다 특종을 좇던 16년차 기자였습니다. 올해 초 3살 딸아이가 급성백혈병 진단을 받고서야 ‘아빠’가 됐습니다. 이후 인영이의 투병 생활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땅의 모든 소아난치병 환우와 아빠엄마들을 응원합니다.


집 떠나와 병원생활한지 벌써 12일째다. 하지만 병원생활은 여전히 낯설고 불편한 게 많다. 아픈게 죄라고 했던가. 기자의 눈으로 봤을 때 불합리한 것들 투성이다.

오늘은 인영이 가슴에 심은 케모포트라는 중심정맥관이 문제가 됐다. 주사액은 잘 들어가는데 반대로 채혈할 때는 피가 잘 안나왔다. 간호사들은 혈관이 막혔다며 아이 가슴에 꼽는 주사바늘을 교체했지만 뚫리지 않았다. 인영인 경기하듯 울어대고 간호사 3명이 달라붙어 또 다시 주사바늘을 꼽으려했다. 의사 지시도 없이 이렇게 해도 되냐고 물었더니 애들은 자주 막힌단다. 3일 전에 시술한 정맥관이 갑자기 막히면 전문가가 와서 살펴볼 일이지 원래 자주 그렇다며 주사바늘을 계속 꼽아대기만 하면 될 일인가. 의사를 불러달라는 요구에 결국 레지던트로 보이는 의사가 왔고, 전문가를 불러 해준단다. 그런데 막상 전문가라도 데려온 의사는 지 밑에 인턴이었다. 인턴은 무식하게(인영이 가슴에 바늘을 꼽고 무자비하게 후비는) 처치를 하더니 수혈에 성공해 돌아갔다. 내일 또 막힐지 모른다는 말을 남긴 채...

어제는 심장 초음파 검사가 문제였다. 항암치료 전에 심장 상태를 체크하기 위해 필수적인 검사라고 했다. 문제는 아이가 움직이면 안 된다는 이유로 검사 전에 수면 유도제를 먹여야 한다는 점이다. 며칠 전 1차 검사 시도에서 수면 유도제를 먹였지만 인영이는 잠들지 않았고 오히려 신경이 날카로워져 실패한 전례가 있었다. 나는 인영이가 자연스럽게 낮잠이 들면 검사받으러 가게 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초음파실 검사 시간에 환자가 맞춰야 한다는 답을 받았다. 그래서 두 번째로 인영이 컨디션이 나쁘지 않아 잘 달래면 수면 유도제를 복용하지 않고도 검사를 받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지만 돌아온 답은 수면 유도제를 안 먹으면 초음파 검사실에서 아이를 받아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결국 몸에 좋지도 않은 수면 유도제를 먹였고 잠이 들었지만, 인영이는 검사실로 이동 중 잠이 깨버렸다. 종국에는 어르고 달래서 맨 정신에 검사를 성공적으로 받았다. 결과적으로 굳이 먹지 않아도 될 수면유도제를 2번이나 먹은 셈이다. 어른도 아닌 어린 환자에 한해서라도 의료진 편의보다 환자 위주 치료를 해주면 큰일이 나는 건가.
1차 항암치료(관해요법) 시작 전의 인영이. 수혈을 해도 안색이 살아나지 않는다.

또 하나. 인영이가 지내는 무균실은 말 그대로 무균 상태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여러 면에서 엄격한 통제가 이뤄진다. 특히 환아에게 익히지 않은 모든 음식은 먹일 수 없고, 생수도 ‘제주’라는 상표의 생수만 허용되며 개봉한 지 4시간이 넘으면 먹여선 안 된다. 그런데 아이러니한건 인영이에게 나오는 가루약을 타서 주는 작은 약병은 한번 쓰고 버리니 간호사가 그러지 말고 잘 씻어서 말려 재사용하라고 한다. 아니 생수는 4시간 내에 먹고 빨대나 종이컵을 사용하라 하면서 인영이 입에 직접 닿는 약병은 재활용하라니... 이해는 안됐지만 따지는 게 무의미하다는 생각에 약사 친구에게 빈 약통 한 박스를 보내달라고 했다.

인영이와 24시간 내내 붙어있어야 할 아내 역시 먹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병실 내에서는 병원에서 제공하는 보호자식만 취식이 가능하고 외부에서 가져온 음식은 무균실 내 보호자용 식당에서 먹어야 한다. 그런데 세종 청사 구내식당 수준인 보호자 식대가 한끼에 만원이나 한다. 한달이면 보호자 식대만 100만원 가까이 나오는 셈이다. 초등학생 정도 되는 환자 보호자야 잠시 보호자용 식당에서 싸온 음식을 먹을 수 있지만 인영이를 한시도 떼어놓을 수 없는 아내 입장에서는 ‘만원내고 병실에서 밥 먹을래 아님 굶을래’란 양자택일을 받은 셈이다. 아내는 입맛도 없다며 인영이가 남긴 밥을 먹으면 된다며 한사코 보호자식을 거부하고 있다.

선배 보호자들 말에 따르면 이 병원이 그나마 제일 친절하고 합리적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다른 병원은 도대체 어떻다는 건지... 앞으로 이런 불합리하다고 느껴지는 일이 많을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그래도 흥분하고 화를 내선 안 된다. 아이 생명을 담보로 싸울 순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 회진을 도는 담당교수가 아무리 친절하게 설명을 해줘도 나도 모르게 두 손이 다소곳이 모아지고 고개가 숙여진다. 여느 장관 앞에서도 잘못된 것 아니냐 따지던 배짱은 사라졌다. 나는 기자가 아닌 아빠, 그들에게 ‘을’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내일은 인영이에게 첫 항암제가 투여된다. 우리 인영이가 잘 이겨내길 바랄 뿐이다. 어느새 환우 언니오빠를 따라 링거 대를 끌고 가는 인영이가 하루빨리 자유롭게 걷는 날이 오리라 믿는다.

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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