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신대 너마저'의 탄식을 새겨들어라

국민일보 칼럼 읽은 한 목회자의 한국 교회와 신학교에 대한 충언

'한신대 너마저'의 탄식을 새겨들어라 기사의 사진
한국기독교장로회 서재일 증경 총회장
반세기 전 쯤 한신에 들어 갈 때 동네 지도나 한반도 지도를 가지고 갔다. 그러나 프린스턴, 하버드, 에딘버러, 하이델벨크 등 유명 대학 출신 교수들은 세계지도를 보여 주었다. 그리고 세계 언어인 영어를 공부하라고 했다. 신학의 고향인 독일어를 배우라 했다. 그리고 성경을 알기 위해 원어인 히브리어 희랍어를 익히라고 했다. 흡사 신학교가 무슨 언어학교 같았다. 1학년에서 2학년 올라 갈 때는 이 언어훈련에 합격된 자라야 가능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세계적인 언어훈련은 세계적 신학을 공부하기 위해서였다. 한국에 태어났지만 세계적 언어로 세계적 신학을 배워 한반도는 물론 세계 땅 끝까지 선교사명으로 헌신하라는 것이었다.

당시 우리가 배운 세계신학은 2차대전 이후의 신정통주의 신학의 노선이었다. 이 신학은 성경과 사도신경적인 정신에 철저한 정통주의 신학을 따르면서도 문예부흥 이후 발전한 인간의 철학이나 과학이나 예술을 끌어안은 자유주의 신학의 방법을 따르는 노선이었다. 말하자면 인간의 죄성을 약화시키고 인간의 가능성을 강화시킨 자유주의의 오만을 1,2차 대전을 치르며 철저히 배격하고 거기서 탈출하되 자유주의의 계몽 지성인 시대를 구원하려던 그 자세를 소중히 여기며 출발했다. 그런 뜻에서 정통주의가 보수적이라면 신정통주의는 진보적이라 할 수가 있다.

한국교회사와 한신대의 신학노선

한국에서의 보수적 정통주의는 일본강점기에 선교사들 주도로 시작된 평양신학교를 거점으로 시작되었다. 신사참배 문제로 이 신학교가 문을 닫아 미래 목회자 양성에 차질이 생길 위기를 맞자 그 대안으로 서울에서 조선신학교를 열게 되었는데 이 신학교가 오늘의 한신대 전신이다.

평양신학교는 거의 모두 미국의 장로교신학 본부인 프린스턴 초기 보수적 정통주의 영향을 받은 선교사들에 의한 신학이었다면 조선신학교는 프린스턴 초기 보수적 정통주의 세력이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로 분리해 나간 이후 이 신학교 신학사상을 지배해 온 후기 프린스턴 진보적 신정통주의신학 훈련을 받은 한국인에 의한 신학이었다.

때문에 평양신학교 영향을 받은 보수적 정통주의 노선의 사람들과 진보적 신정통주의 영향을 받은 진보적 신정통주의의 노선의 사람들과 갈등 충돌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 결과 진보적 조선신학교를 중심한 신학과 신앙 노선의 출발을 한 장로교가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가 되었다.

조선신학교 즉 한신대는 세계적 신정통주의신학의 연구와 토의 그리고 그 신학정신에 의한 한국사회 도전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국민일보 전정희 종교국 부국장은 칼럼에서 이렇게 정의했다.

‘…6.25한국전쟁 직후 한국사회에 예언자적 자세로 진보적 가치의 신앙관을 표출해 왔다. 한국사회 그리고 한국교계가 소금의 맛을 잃을 경우 고난을 감수하며 저항했다. 그 저항신학의 신학적 배경이 한신대였다. 한국현대사에 정의 평화 인권 생명을 위한 신앙적 연대는 김재준 장준하 안병무 서남동 문익환 강원룡 등 이 학교를 거쳐간 지도자들 이름 석자에서도 금방 알 수있다. 실천신학의 요람이었다.’(2016년 5월 14일자 국민일보 ‘삶의 향기’ 중에서)

이 외에도 헌신한 김정준 전경연 이우정 박봉랑 정하은 이장식 등 기라성 같은 교수진에 의해 강한 신학운동과 예언자적 외침이 끊이지 않았다.

본 회퍼 그리고 한신 신학

이 신학은 별난 신학이 아니라 종교개혁의 나라요, 기독교 본부 격인 독일에서 2차대전의 불이 붙기 시작한데서부터 시작된 성서적 신학이다. 그때 대부분의 독일연방교회는 주범 히틀러에게 그 모든 권한을 위임한 일을 하고 말았다. 다시 말해 영혼 문제에 대해서는 우리 교회가 책임 질 테니 나라와 민족의 정치와 세상 문제는 권력자가 책임지라는 태도를 무심코 가진 것이었다.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의 영광”이 아닌 “민족의 영광”을 위한 전진 함성을 지르며 모든 청년들의 피를 끓게 한 선전포고까지 품고 말았다. 수많은 도시를 파괴하고 수많은 사람을 죽이며 유럽대륙의 전쟁의 불을 지른 독재자는 독일교회의 아멘의 소리를 들으며 독일민족의 우수성을 입증하기 위해 미치도록 뛰었다. 이 미친 광인이 전쟁의 전차를 끌고 막 달리는데 교회는 언제까지 그 뒤를 따라가며 그 차에 치어 죽은 자들의 장례식이나 치를 것인가.

젊은 본회퍼(D. Bonhoeffer) 목사와 그를 따르는 헌신자들이 “우리의 주는 그리스도”라며 그 미친 운전자 없애는 암살단에 가담하며 세상교회와 맞서 ‘고백교회’를 출범시켰다. 그리고 루터와 함께 종교개혁의 불을 든 장로교의 조상 칼빈을 되살린 발트(K.Barth)가 본회퍼를 격려하며 바르멘 선언의 주인공으로 일어났다.

이 선언은 당시의 전쟁 주범 나치 정권과 권력자를 겨냥한 것이 아니라 이런 정권을 허용한 독일교회를 겨냥한 것이었다. 즉 성경과 성경의 주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믿음의 거점을 두지 않고 문화나 역사나 자연이나 민족이나 그 외 어떤 정치적 이념에 믿음의 거점을 둔 한 마디로 그리스도 반석이 아니라 세상 모래 위에 집 짓는 어리석음의 교회를 공격한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올 사람이 없다.”(요14:6)는 제 1조로부터 6조까지 모두 성경 원문을 인용하며 성경적 도전으로 비성서적 “거짓의 아비”(요8:44) 사탄과 그 하수인들에게 대든 것이었다.

그리고 그 밑바닥에는 우리 주 만왕의 왕 예수 그리스도가 영적인 영역에서 만이 왕이 아니라 육적인 모든 영역에서도 왕이라는 고백이 깔려있다. 교회의 주 만왕의 왕만 아니라 정치 경제 교육 사회 문화 세상 모든 영역에서도 왕되시는 세상 만민의 구세주 왕이시라는 강한 ‘그리스도 왕권’ 강조가 거기에 있다.

동시에 이 성서적 신앙고백과 선언과 함께 인간이 얼마나 그리스도를 필요로 할 정도로 죄인인가가 또한 강조가 되고 있다. 그래서 이 신학 노선은 인간이 전쟁을 일으켜 세상을 다 파괴시킬 정도로 인간은 전적 타락의 죄인이라는 것을 탄식한다. 그런 면에서 인간이 신도 될 수 있다거나 지상 낙원을 건설 할 수 있다는 인간으로부터의 자신감이나 꿈을 강조한 자유주의 신학을 거부한다.

좌도 우도 아닌 ‘진리가 자유케 하니’

그러므로 한신 신학은 자유주의 신학 노선도 아니며 세상의 어떤 이념에 좌지우지 되는 유행 신학 노선의 길을 걷지 않는다. 성경을 문자로 보지 않고 문맥으로 보며 그 문맥 속에 깃든 성서의 놀라운 새 세계에 도취하되 성경중심인 그리스도 신앙고백에 철저하다.

신정통주의 신학 노선을 따르다 보니 저절로 ‘교회로 하여금 교회 되게’하는 일에 승부를 건다. 공산주의는 물론 사람을 소외시키는 자본주의의 물질주의나 부익부 빈익빈 경제 구조 그리고 그 성장주의를 정면으로 거부한다.

특히 비성서적이나 성경의 주 예수 그리스도에 기반을 두는 그 뿌리 내림에 힘을 쓰지 않고 성장주의의 기술과 전략에 힘써 갑자기 줄기나 이파리가 무성해지는 교회성장주의를 경계한다. 교회가 제사장적인 사랑은 있되 예언자적인 정의는 무시하는 경향을 ‘뒤집지 않은 전병’ 같은 모습이어 싫어한다(호7:8). 나아가 영성을 강조하며 성령충만과 그 은사 그리고 밤낮 66권 성경 말씀을 강조하면서도 독일 연방 복음주의 교회가 그러했던 것처럼 군사독재권력자들과 유사한 권력자들 편에 서고 조찬기도회를 열어 그 불의 부정을 지지해 주고, 만수무강을 빌며 가난한 약자를 짓밟고, 의로운 청년 양심세력들을 고문하고 죽이는 불의를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 소름이 끼칠 정도로 두려워하고 반대한다.

한신개혁은 곧 건강한 한국교회

‘한신대 너 마저’ 글에 감격하며, 새삼 한신대 출신으로 1045명 동문들이 순식간에 한신대 개혁을 외치며 일어난 ‘한신개혁 네트워크’ 대표로서 응답한다. 오늘의 한신대 사태는 지금까지 한신대 안팎에서 파도처럼 계속 일어났던 그 모든 연장선상의 일 중 작은 하나에 불과하다. 그 이는 파도 그 밑의 밑 심층수 흐름은 고요하듯 한신대 본래성의 세계적 학문하는 신학 학문성이나 그 학문 중심의 성경정신 그 성경정신의 주 만왕의 왕 예수 그리스도 근거인 신앙과 하나님나라 운동에 변함이 없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 진리만이 우리를 자유케 하기 때문이다.(요8:32) 영원한 우리의 신앙고백을 더욱 드높이며 교회 침체기에 교회가 교회되는 걸음으로 우리 한신대마저 교회와 세상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으려 울부짖음으로 자신을 치며 몸부림치고 있는 것뿐이다.

새가 두 날개로 날 듯 교회는 보수와 진보로 움직여 왔는데, 보수의 날개가 꺾이지 않도록 진보의 날개가 꺾이지 않도록 그래서 건강한 한국교회로 일어나길 기도를 할 때다. 서재일 목사(원주영강교회 담임·신개혁네트워크 대표·기장증경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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