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보다 특종을 좇던 기자였습니다. 올해 초 3살 딸아이가 급성백혈병 진단을 받고서야 ‘아빠’가 됐습니다. 이후 인영이의 투병 생활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땅의 모든 소아난치병 환우와 아빠엄마들을 응원합니다.


지난 주 주6일 근무한 덕에 이번 주는 금토일 3일 연휴였다. 3일 내내 인영이를 관찰해보니 참 가닥 있게 잘 논다. 소싯적 좀 놀았던 아빠 딸 아니랄까봐 지치지 않고 논다. 잘 놀려면 부지런해야하는 걸 아는지 인영이는 밤 12시 넘어 자도 아침 9시면 무조건 눈을 뜬다. 잘 때는 아빠는 마루에서 자라며 내 쫓더니 아침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내 손을 잡아끈다. 장난감으로 온 집안을 어지럽히다 지겨워지면 밖에 나가자고 조른다. 나가봤자 집 앞 이마트(하루에 2번씩은 가는 듯)나 단지 내 놀이터인데도 나가자고 하면 눈이 반짝인다. 낮잠은 물론 안잔다. 그러면서 정신력으로 밤 12시까지 버틴다. 자자고 불을 끄면 갑자기 배가 고프다며 밥을 달라 한다. 가끔 밤 8시쯤에 잠에 취해 쓰러지지만 12시가 되기 전에 “엄마, 아침이야?”라며 일어나 밤참을 먹고 밤 12시를 넘긴다. 아내와 롤을 바꿔 아내가 일을 하고 내가 휴직을 했다면 아마도 나는 회초리를 준비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윤영이가 마치 엄마처럼 인영이를 안아준다. 큰 딸 답다.

인영이는 항암 주사를 잠시 쉬는 첫 유지기간을 잘 보내고 있다. 다음주는 담당 교수님이 휴가라는 이유로(아내는 처음에 농담인 줄 알았단다) 외래 치료도 한 주 건너뛴다. 물론 매일 밤 먹는 항암약이 있는데 자기 전 공복 1시간 이후에 먹여야 한다. 인영이가 먹고 바로 잠드는 경우가 많아 아내나 나나 둘 중 한명은 안 자고 기다리다 자는 애를 깨워서 약을 먹여야 하는 어려움이 있지만 그 정도는 감내할 만 하다. 이렇게 인영이 컨디션이 좋으니 예전 일상으로 돌아온 듯싶다. 어제는 윤영이를 데리고 극장에 가서 팝콘을 먹으며 초딩들에 싸여 만화영화를 보고, 오늘은 거금을 들여 산 자전거를 타고 금강변을 한 시간 달리기도 했다.
토요일 오전 윤영이와 영화관 데이트를 했다. 다 좋긴했는데 만화영화가 너무 지루해 영화를 보면서 페북질을 했다.

 금요일 밤에는 아이 아프고 처음으로 백혈병 관련 서적이 아닌 책도 완독했다.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가 쓴 사법부라는 책인데 유신부터 이어진 사법부의 어두운 역사를 읽으며 오랜만에 나라 걱정(?)도 했다. 권인숙씨 성고문 사건을 권력부의 압력에 덮은 김경회 인천지검장이 당시를 “거대한 정신병동에 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회고한 부분이 인상 깊었다. 최근에 만난 한 검사 분께 이 책을 읽고 있다고 하자 “5공 때는 죄 없는 사람 죄를 만들어서 문제였지 죄 있는 놈은 아무리 센 놈이라도 다 쳐 넣었다. 그런데 지금은 죄 있는 놈을 못 잡아들이게 하니 5공보다 못한 셈”이라며 한탄했다. 맞는 말 같다.
할머니처럼 밖에 마실나가자고하면 좋아 죽는 인영이.

3일간의 이런 일상이 계속됐으면 하는 바람인데 가끔은 위태한 일상이 되기도 한다. 어제 아침 윤영이와 조조 영화를 보고오니 인영이가 웬일인지 12시까지 못 일어나고 열이 37.5도까지 올라갔다며 아내가 사색이 돼 있었다. 인영이 얼굴을 보니 안색이 좋지 않았다. 괜찮을 거라며 아내를 안심시켰지만 내 머릿속은 이미 119를 불러 가까운 충남대 병원 응급실을 가야할지 아니면 차를 몰고 바로 서울 성모병원으로 가야할지를 놓고 싸우고 있었다. 다행히 38도를 넘기지 않고 열이 떨어져 한숨을 돌렸지만 아픈 아이를 둔 부모들은 언제든 긴장을 풀어선 안된다는 걸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인영이가 3일 간의 일상을 넘어 3개월, 3년의 일상을 우리 가족에게 선물로 주기를...

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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