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규야!
아니, 인영아빠!
...
카톡에서 인영이 사진을 봤다. 세상 근심 다 짊어진 것 같이 어두운 아빠의 얼굴과는 대조적으로 밝게 웃는 모습이 역시 애들의 순수함이 이런 것이다 싶고, 그 어떤 병마도 그 미소 앞에서는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할 거 같은 자신감도 생기는 것 같더라.
...
너 지금 많이 힘들고 앞이 깜깜하지? 내가 능력이 부족해서 인영이를 잘 돌보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공포감도 느끼지? 지금까지 살아 온 인생도 자꾸 눈에 밟히고 뒤돌아보게 되지? 내가 누구한테 너무 가혹하게 한 적은 없는지, 아니면 남의 가슴에 큰 상처를 입힌 적은 없는지 등등... 아마 이런 큰 일 앞에서 그런 감정이 들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니? 특히 가장의 위치는 언제나 무한책임 아니겠니... 그러나 네가 꼭 유념해야 할 것은 말 못하면서 너보다 더 아파하는 제수씨와 아픈 동생 때문에 한참 찬밥(?)이 되어 있는 큰 애의 고통도 있다는 거야. 그리고 무엇보다도 직접 병마와 싸우며 힘든 항암치료를 받고 있는 인영이의 아픔, 고통, 좌절을 잊지마라.. 어른도 한번 받으면 그렇게 힘들다고 하는 항암치료를 그 어린 녀석이 앞으로 얼마나 더 받아야 할지 모르는 게 현실 아니겠니...
그래서 지금 가장 중요한 건 가족이다.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없이 혼자 이 싸움을 해야 한다면 너무도 힘겨울 것 같다. 외부의 도전 앞에서 가족은 언제나 한편이다. 나는 가족의 힘을 믿는다. 가족 구성원 모두 한마음, 한 뜻이 되어서 인영이와 함께 싸운다면 인영이가 두 배, 세 배 힘을 내서 결국엔 싸워 이겨 내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 가정의 의지를 한 곳에 모으는 노력도 결국엔 네 책임이다. 가족 구성원끼리 항상 열린 마음으로 상의하고 힘들더라도 밝은 얼굴 빛 내고 하는 노력이 그 출발점이라 생각한다.
...
성규야!
너 힘든 데 함께 하지 못해 미안하구나.
형이 가을에 돌아가면 위로의 소주 한잔 사마.
...
이제 봄이 얼마 안 남았구나.
하지만, 겨울은 올 때보다 떠날 때가 그 칼끝이 더 날카롭다고 했다. 떠나는 겨울의 칼끝에 무수히 많은 인간과 꽃들이 베이고 상처받고 하지. 아마도 떠나기 싫어 부리는 몽니 아니겠니... 가족 모두 떠나는 겨울의 칼끝에 상처 받지 않도록 건강관리 잘 하고 굳은 심지 가지고 끝까지 잘 극복해 나가길 빈다.
너와 네 가정에 신의 은총이 늘 함께 하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2016.2.25.
S형
인영이가 항암치료를 받는 서울성모병원 낮병동. 대기가 길어 무균병실에 입원하지 못할 때는 5일동안 연속으로 출퇴근을 하면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


“S형,
형 숨결이 느껴지는 편지 잘 읽었어요. 나 혼자 읽고 울고, 집에 와서 아내랑 읽으면서 또 울었어요. 이제 다시 울지 않으리라 다짐했는데 형 덕분에 또 울었네요.
형 고마워요. 힘내고 있긴 한데 가끔 견디기 힘들 정도로 힘든데, 형 편지가 다시 힘을 주네요.
형, 여기는 봄이 오려고 해요. 저하고 형 공통점은 술 한 잔 만해도 얼굴이 벌개지면서 낮술을 좋아한다는 거죠. 동학사 근처에서 봄꽃 보면서 막걸리 한 잔 했던 시절도 떠오르네요. 가을에 소주 한 잔 하자 하셨죠? 그때는 제가 형한테 소주 한 잔 사야겠어요. 형 편지가 길고 길었던 제 겨울에 마침표를 찍게 한 데 대한 보답이라고 해 두죠.
제 몸을 자주 떨리게 했던 겨울이, 떠날 것 같지 않던 겨울이 사그러 지는걸 보니 가을도 곧 올 것 같아요. 그때까지 무소식이 희소식이려니 생각하세요.
형, 보고싶어요.”(2016년3월8일)

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


더 보기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