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가 뭐야?”
아내가 서울서 돌아오는 고속버스 안에서 자막 뉴스를 보고 물었다. 인영이가 아픈 뒤 아내는 세상과 단절된 사람이었다. 환우 카페와 보호자 투병 블로그에는 매일 접속했지만 핸드폰에 뜨는 네이버 메인화면을 들여다볼 여유는 없었나보다.
“아 컴퓨터랑 바둑을 두는 거구나.”
아내의 관심은 그걸로 끝이었다. 자막 뉴스가 원영이 사건으로 전환되자 저런 사람들은 우선 사형시키기 전에 매주 헌혈을 시키고 골수를 뽑아야 한다고 했다.(공무원도 국민을 섬기는 사람이니 골수기증을 필수적으로 해야 합격시켜야 한다 과격한 주장도 덧붙였다.)

인영이는 오늘도 항암 치료를 거뜬히 잘 받았다. 이제 설사도 하지 않는다. 타고난 항암 체질 같다. 다만 탈모가 심해 위생을 위해 병원 지하 이발소에 가서 다시 한 번 머리를 밀었다. 단 5분 걸렸는데 어른 요금을 받았다. 내일은 병원이 쉬는 날이라 부득이 항암치료는 하루 건너뛰어야 해 집에 돌아왔다. 인영이는 집안 이곳저곳을 들쑤시고 다녔다. 머리만 새알이 아니라면 아픈 것도 모를 정도였다.

그런데 윤영이 안색이 창백했다. 어디 아프냐고 물어보니 목이 칼칼하단다. 열을 재보니 38도. 엄마와 소아과를 갔다. 감기라고 약을 받아왔다.
‘하필 이런 때에…’
감기는 인영이한테 치명적이다. 특히 항암치료를 받을 땐 더욱 면역수치가 바닥으로 떨어진다. 감염 확률이 높아 특별히 조심해야 하는 시기다. 네 가족 모두 마스크를 쓰고, 윤영이는 따로 재우기로 했다. 근데 자꾸 인영이가 언니랑 논다고 다가갔다. 나도 모르게 윤영이한테 동생한테 떨어지라고 소리쳤다. 아픈 윤영이보다 혹 또 아플지 모를 인영이 걱정만 앞섰나보다. 윤영이는 엄마와 방에 들어가더니 약 기운에 잠들었다.
잠든 첫째 딸을 보니 지난 한 달 넘게 난 참 나쁜 아빠였다. 인영이 위생을 신경 쓴다고 윤영이가 아끼는 헝겊인형을 물어보지도 않고 버렸다. 인영이는 며칠 전 동생이 선물 받은 베개를 탐내다 꾸중을 듣자 “내가 아끼는 건 다 버리고, 동생만 새 것 사준다”면서 울기도 했다. 우리는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윤영이를 새벽부터 이집 저집으로 돌렸다. 윤영이는 그동안 알파고처럼 새 학기 학교적응 등 부모가 도와야 할 일을 스스로 잘 해냈다. 하지만 윤영이는 알파고가 아니었다. 매일 밤 엄마가 그리운 9살 꼬마일 뿐이었다. 알파고가 이세돌을 또 이긴 날, 우리 집 ‘알파고’는 처음으로 넘어졌다.(2016년3월12일)

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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