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어도 욱하는 성질머리는 고쳐지지 않는다. 횟수는 눈에 띠게 줄었지만 가끔 그런다.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원래 어제 끝날 인영이 9주차 항암은 간수치가 높아져 오늘로 연기됐다. 어제 아내 혼자 고속버스 타고 오가느라 고생하고 인영이 면역수치도 떨어져 오늘은 차에 태워 병원에 왔다.
주사실 철제 의자에 앉아 채혈을 하고 대기하다 운 좋게 빨리 베드를 배정받았다. 그런데 가보니 우리 베드가 옆으로 밀려 링거대가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좁았다. 옆 베드 환자 보호자가 밀어 놓은 것 같았다. 백혈병 외래환자들이 이용하는 BMT주사실은 최대한 많은 베드를 놓기 위해 베드 간 간격이 무척 좁다. 그래서 보호자 의자를 침대 옆에 놓을 공간이 안돼 사람이 오가는 복도에 의자를 놓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런데 옆 베드 보호자는 그 좁은 간격에 자기 의자를 집어넣으려고 우리 베드를 밀어놓은 것이다. 다시 원상복구를 했더니 옆 베드 보호자가 “이렇게 침대를 밀면 어떻게 해”라고 말했다. 처음엔 커튼을 사이에 두고 아내가 “원래대로 해 놓은 거예요”했더니 인영이가 누워있는 베드를 밀친다. 순간 욱해 커튼을 열고 그 아줌마에게 따졌다. 자세히 보라고, 당신이 넘어온 거라고.

하지만 내 욱하는 성격의 단점은 목소리만 커졌지 조목조목 따지지 못한다는 데 있다. 아내는 항상 제발 흥분해도 논리적으로 조용조용 말하라고 충고하지만 고쳐지지 않았다. 씩씩거리며 병원 기자실에 와 앉아 있는데 화가 나기보다는 짜증이 났다. 왜 수십cm의 간격을 가지고 힘든 보호자들끼리 언성을 높여야 하는지 란 생각에서, 이 나라는 도대체 왜 이따구인지까지 발전했다. 과연 내일 투표를 제대로 하면 바꿔질까? 그렇지 않다는 걸 경험칙 상 알고 있지만 밀란 쿤데라가 말했던 것처럼 ‘그렇게 할 수 밖에.’(2016년4월12일)

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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