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보다 특종을 좇던 기자였습니다. 2016년 초 3살 딸아이가 급성백혈병 진단을 받고서야 ‘아빠’가 됐습니다. 이후 인영이의 투병 생활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땅의 모든 소아난치병 환우와 아빠엄마들을 응원합니다.


두 달 가까운 휴식기간을 끝내고 인영이 항암치료는 지난 주 골수·척수검사를 시작으로 다시 재개됐다. 지난 주 목요일 항암치료가 예정이었지만 간수치가 300이 넘어 시작하지 못했다. 정상적인 사람의 간 수치가 20~30 정도인데 인영이는 10배 가량 높은 상태다. 6개월 동안 쌓인 항암 독성을 인영이 간이 해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심각한 엄마아빠와는 달리 인영이는 정말 간이 피로한 애가 맞는지 잘 놀긴 한다.
이른 아침 진료를 위해 전날 병원 근처 호텔에 방을 잡았다. 새벽 6시가 넘으면 잠에서 덜깬 아이들이 하나 둘 외래 치료실 복도로 모여든다.

월요일 치료를 위해 일요일 밤 우리 가족은 서울 병원 근처 호텔에 짐을 풀었다. 병실대기가 밀려 일주일동안 출퇴근 외래로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첫날 새벽에 자는 아이를 깨워 나서는 것 보다 낫겠다 싶어 이른 저녁을 먹고 길을 나섰다. 인영이는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집에 가자고 졸랐다. 아내는 그제서야 조금 싼 호텔로 고집부린 것을 후회했다. 아이를 달래기 위해 근처 마트에 가서 장난감을 고르게 하고, 계산대에서는 뺀 채 간단히 요깃거리를 사서 방에 돌아왔다. 그제야 기분이 좋아졌는지 언니와 포카칩을 먹고 “아이라서 잘 수 없어”라는 매일 밤 같은 레파토리를 되뇌다 잠들었다.
엄마의 특기는 마트 계산대에서 장난감 빼기다. 인영이는 종종 자기가 고른 장난감을 잊어버린다. 아빠는 속이 탄다.

새벽, 동이 터온다. 인영이는 오늘 혈액검사 결과 간수치가 항암을 시작할 정도로 나아졌으면 바로 항암치료에 들어가고 그렇지 않으면 집에 다시 돌아가야 한다. 인영이는 이제 9개월간의 집중치료 기간 중 마지막 단계인 ‘강화’치료만을 남겨놓고 있다. 앞으로 2개월의 치료만 잘 받으면 예전의 일상과 좀 더 가까워질 수 있다. 아마도 내년여름에는 집에서 구명조끼를 입고 수영장 가자며 조르는 인영이를 수영장에 데려갈 수 있을 것이다.
인영이는 지난주 골수검사를 받았다. 미취학 환우아이들은 대부분 전신마취를 한다. 등허리에 또 하나의 흉터가 남았다.

조금 있으면 잠도 덜 깬 아이의 팔에서 피를 뽑고, 가슴관에 다시 바늘을 꼽아야 한다. 곤히 잠든 인영이 얼굴을 보며 예전처럼 우리 가족은 휴양지에 놀러온 거고, 아침에 느지막히 일어나 물놀이를 하러 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잠시 상상했다. 반복된 골수·척수검사에 등허리에 남은 바늘자국을 보면 그동안 인영이가 잘 참고 견뎌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며칠 전 언니 윤영이가 아침에 기분 좋게 자기 꿈 얘기를 했다. 인영이는 다 낫고, 세상에 지진과 방사능이 없어지고, 사람들은 죽지 않고 계속 살며 하늘에서 매일 100만원씩 떨어지는 꿈이었단다. 그 말을 들으며 속으로 그 중에 단 하나만 이뤄줬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마지막 고갯길이다. 좀 더 힘을 내자, 인영아!
병원 1층에 있는 수족관. 병실이 모자라 항암제를 맞으면서 링거대를 꼽고 복도를 배회해야 하는 현실에서 환우 부모들은 저거라도 있어서 다행이라고 말한다.

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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