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보다 특종을 좇던 기자였습니다. 올 초 3살 딸아이가 급성백혈병 진단을 받고서야 ‘아빠’가 됐습니다. 이후 인영이의 투병 생활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땅의 모든 소아난치병 환우와 아빠엄마들을 응원합니다.


지난 6개월 동안 아픈 아이의 보호자로 지내면서 말기 암 환자의 감정 변화를 체험했다. 감정의 변화는 인영이의 몸 상태에 대한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의료 현실에 대해서다. 처음 인영이가 아프고 나서 불합리한 관행과 열악한 의료 환경에 ‘그래도 OECD 회원국인데’라는 생각에 부정했고, 분노했다가 이런 환경에서 아이를 치료해야하는 현실에 슬퍼했다. 지금은 다른 환우 보호자들이 그러는 것처럼 어느 정도 체념하고 받아들이고 있다.

우리나라 병원의 가장 큰 문제는 정보의 비대칭성이다. ‘의사는 환자의 증상과 치료 필요성, 부작용 등을 상세히 설명해줘야 하고 환자는 알 권리와 치료선택권을 갖고 있다’고 병원 벽에는 적혀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면역력이 약한 백혈병 환아들을 위한 무균병동은 늘상 대기다. 아이들은 외래병동에서 병상하나 배정받지 못한 채 그 독한 항암주사를 맞으며 병원 복도를 배회해야 한다.

어제 인영이는 2달 동안 쉰 항암치료를 재개했다. 당초 지난주가 예정이었지만 간수치가 300이 넘어 상태를 보고 항암 재개 여부를 결정하기로 돼 있었다. 어제 인영이 간수치는 160. 많이 떨어졌지만 정상(20~30)보다 크게 높은 수치였다. 항암을 시작하자는 의료진에게 아내는 걱정스런 마음에 “해도 될까요?”라고 물었지만 돌아온 답은 “해야 한다”는 말 뿐이었다고 한다. 물론 해야 한다는 의료진의 판단을 존중하지만 4살 딸아이의 부모로서는 항암을 받을 수 있는 평균적인 간수치와 이런 상태에서 항암을 받을 때의 문제는 없는지, 그래도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듣고 싶었다. 그러나 우리나라 의료 현실은 “해야 한다”는 말에 토를 달 수 없는 분위기다.

결국 인영이는 항암을 시작했고, 항암 도중 갑자기 체중이 1kg이나 불어 이뇨제를 맞기도 했다. 여느 때처럼 우리 부부는 선배 환우 부모님들에게 “이런 경험이 있었냐” “괜찮은거냐” 말 동냥을 하면서 스스로를 안심시켜야 했다.

물론 의료진은 할 말이 많을 것이다. 한정된 인력과 시설인데 아픈 아이들은 과포화 상태다. 아이들 하나하나에 대해 충분히 설명해주고 싶지만 현실은 1시간대기 1분 진료일 수밖에 없다. ‘대전에도 치료기관이 있는데 누가 이 병원 오라고 했나요?’라고 속으로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의료계가 이런 열악한 환경의 원인으로 짚는 건강보험 저수가 문제를 부정할 생각은 없지만, 또 하나의 근본 원인은 의료계의 ‘밥그릇 지키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난달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서비스업 선진화 대책에서 의대 증원 문제는 초안에 들어갔다가 의료계의 반발에 슬며시 빠졌다. 기재부 한 공무원은 “의료진을 늘려야 3분 진료가 아닌 30분 진료로 특화하는 병원도 생기고 경쟁도 일어날텐데 ‘의대’란 말도 못 쓰고 ‘의료인력 증원’이라고 표현했지만 결국 발표되지 못했다”고 한탄했다. 이른바 빅5라는 독점기업이 전체 시장을 좌지우지하고 있는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경쟁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인력이 증원돼야 하는데 의료계는 그 첫발부터 떼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병원에서 환자 ‘대우’를 받을 생각은 애초부터 접어야 한다. ‘36개월 이상 아이들은 어느 정도 컸으니 고통을 참고 견뎌야한다’는 병원 내부 규정에서 없는 논리에 한번 ‘개긴’(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0643480&code=61121111&sid1=prj&sid2=0043) 이후로는 몇몇 의료진은 ‘노골적으로’ 우리에게 불친절하다.

3~4살된 아이들이 병실도 없어 병원 복도에서 항암주사를 맞으며 링거대를 끌고 다니는 현실은 차지하더라도, 그런 아이들을 사무적이고 기계적이 아니라 사랑스럽게 대해주는 의료진을 보는 것은 쉽지 않다.
6개월 동안 병원생활을 하면서 우리 가족에게 가장 친절했던 병원 관계자는 병원 현관 앞에서 교통정리를 하시는 분이었다. 이 분은 비가오나 눈이오나 항상 웃으면서 “네 고맙습니다, 조심히 가세요, 아픈데 수고하셨습니다”라고 말한다. 나는 “고생 많으셨죠(이 분은 우리 애가 얼마나 아픈지, 내가 왜 병원에 오는지 모른다)”라는 이 분의 따스한 말 한마디에 울컥 눈물이 날 뻔한 적도 있다.

지난달 29일 이른바 ‘종현이법’이 시행됐다. 종현이는 2010년 백혈병으로 투병하던 9살 아이였다. 긴 항암치료 막바지에 종현이는 정맥으로 투여돼야하는 항암제 ‘빈크리스틴’이 척수강으로 잘못 투여돼 하늘나라로 갔다. 제 2의 종현이가 생기지 않기 위한 환자안전법인 이 법은 의료사고를 막기 위한 여러 가지 장치를 만들었다. 환자의 알 권리도 강조했다.
아이가 종현이와 같은 병으로 아파 종현이가 맞았던 빈크리스틴을 맞고 보니 종현이 부모님의 찢어지는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다. 그 어려운 시기를 다 견디고 이제야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학교도 보내고, 놀이터에서 놀게 할 마음에 들떠있었을 종현이 부모님의 마음은 공감은 하지만 어느 누구도 대신하지 못할 것이다.

아마 병원에서 볼 때 나는 블랙리스트일 것이다. 백혈병 아이들 천지고, 대부분 보호자들은 병원에 불만이 없는데 뭐가 그리 불만이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을들이 불만이 없어서 침묵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갑이 알아줬으면 좋겠다. 제2, 제3의 종현이가 계속 생긴다면 을들도 침묵하지 않을 것이다. 사회 각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을의 반란이 언젠가 의료계에도 일어날 수 있다.

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

[관련기사 보기]
▶'나는아빠다' 모아보기



더 보기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