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생일에 민감하다. 처음 연애를 할 때 자기 집은 음력과 양력 생일 모두 챙긴다는 말을 농담으로 알았는데 사실이었다(나는 음력생일도 모른다). 신혼 초엔 음력 생일을 잊었다고 한동안 삐졌던 적이 있다.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올해도 생일이 다가오니 조금 흥분하는 듯 했다. 특히 올해는 음력생일(20일), 양력생일(21일), 주민등록상 생일(22일)로 이어지는 생일 시즌이었다.
진부한 말이지만 가족은 삶의 가장 큰 힘이다.

우선 생일 전야제에 마지막 남은 비자금을 상납했다. 인영이 병원 데리고 다닐 때 필요하다며 틈날 때마다 노트북 검색을 하는 걸 허투루 넘기는 센스 없는 남자는 아니다. 그리곤 다음날 센스없게 하루 종일 야구를 하고 왔다. 노트북 상납 약발은 단박에 끝났다. 이제는 몸으로 때워야 한다. 열심히 청소를 하고 맛난 것을 먹으러 가고, 머리하는데도 데려갔다.

생일 시즌 중 마지막 날인 22일은 인영이의 4박5일간의 항암치료가 시작되는 날이었다. 새벽 5시 반 일어나 집을 나섰다. 아내는 종일 인영이를 케어하고, 나는 병원 기자실에서 기사를 썼다. 마감을 하고 병실에 가니 아내가 초췌하다. 아침에 머리도 못 감고 나왔단다. 미리 잡아 둔 병원 앞 호텔로 아내를 떠밀어 보내고 인영이를 팔베개를 해서 재웠다. 아이와 깜박 잠이 들었는데 기사를 고쳐달라는 전화에 깼다. 호텔서 계속 쉬라했건만 아내는 꾸역꾸역 병원으로 돌아와 치료를 마친 인영이를 안고 호텔로 갔다. 내 새끼가 아파 병원에 누워있는데 쉬긴 뭘 쉬냐며 샤워만 하고 나왔단다.
우리집 세 여인. 좋은아빠도 아니었지만 좋은 남편은 더더욱 아니었다. 미안하고 고맙운 아내다.

좋은 아빠도 아니지만 좋은 남편은 더더욱 아니었다. 2000만원 정도 모았다고 결혼한 뒤 마이너스 2000만원짜리 통장을 “부채도 자산”이라며 뻔뻔히 건넨 철없던 ‘흙 수저’로 시작해 “기자는 술 먹는 게 일”이라는 지극히 자가당착적 논리로 아내를 외롭게 했다. 아내는 두 아이 낳고 키우느라 경력단절로 승진에 애를 먹었다. 인영이가 아픈 뒤 휴직하고 하루 종일 인영이와 씨름하며 인영이 약을 꼼꼼이 챙기는 것도 아내 몫이다. 지금까지 내가 잘 한 거라고는 윤영이 3살 때 6개월 육아휴직 한 것과 ‘나는 아빠다’ 쓴 것 밖에 없는 것 같다. 미안하고 많이 고맙다. 특히나 나를 닮은 아들놈이 아닌 천사 같은 두 딸을 낳아준 것만으로 아내는 내게 ‘일갑영갑(한번 갑은 영원한 갑)’의 존재다. 다시 한 번 아내의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한다.(8월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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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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