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보다 특종을 좇던 기자였습니다. 올해 초 3살 딸아이가 급성백혈병 진단을 받고서야 ‘아빠’가 됐습니다. 이후 인영이의 투병 생활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땅의 모든 소아난치병 환우와 아빠엄마들을 응원합니다.



시차 적응에 실패해 새벽 3시까지 잠들지 못했다. 여수에서 올라온 장인어른에게 윤영이를 맡기고 6시 서둘러 길을 나섰다. 오늘은 인영이 척수검사가 있는 날이다. 마취 없이 생으로 검사를 받는 날이기 때문에 아내도 나도 긴장했다. 특히 3개월에 한번 씩 바뀌는 주치의(레지던트)가 새로 온 지 일주일도 안됐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에 예전처럼 또 사달이 날까 두려웠다.
척수검사에 독한 항암약에 인영이는 많이 울었다. 무서워서 울고, 부작용에 손발이 저리다고 울고 토하면서 울었다. 따스한 말 한마디가 그리웠다.

오전 10시. 검사 시간이 다가왔다. 인영이는 등허리에 마취크림(사실상 별 효과가 없는 위약 행위)를 바르자 예전 공포가 되살아났는지 울기 시작했다. 검사실에 들어가 전문 간호사가 인영이 몸과 다리를 잡고 엄마는 인영이 손을 잡고, 나는 발치에서 인영이에게 “괜찮아 인영아”를 반복하고 있었다.
처음 보는 여자 레지던트가 들어왔다. 레지는 아이가 울건 말건 10cm가 넘는 대바늘을 쥐고 인영이 등허리를 만졌다. 인영이는 울부짖고 레지는 쉽사리 바늘을 꼽지 못했다. 1분 여 시간이 흐르자, 전문간호사가 먼저 교수님에게 부탁을 하는 건 어떻겠냐고 레지에게 제안했다. 나 역시 불안하던 차에 전에도 한번 사고가 있어 아이가 공포감이 크다며 교수님이 해주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그 순간 레지는 불쾌한 표정을 짓더니 아무 말 없이 위생장갑을 패대기치며 일어났다. 우리 부부도, 전문간호사도 순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도저히 공포에 울부짖는 네 살배기 환자를 앞에 두고 할 행동은 아니었다.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아픈 아이 앞에서 도대체 뭐하는 짓입니까.” 잠시 침묵하던 레지는 진심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말투로 “죄송합니다”하고 검사실을 나갔다. 그 한 단어가 레지가 5분여 동안 검사실에 머물며 우리에게 한 처음이자 마지막 말이었다.
새벽 6시 길을 나선다. 인영이는 "우리 병원가는거야"라고 종알대다가 중간쯤 잠이든다.

며칠 전 소아암 전문의 한분에게 이메일을 받았다. 그 의사분은 의료진의 불합리한 행태(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 에 대한 글을 보고 메일을 썼다 했다. 그 분은 현재의 건강보험 저수가 상황과 대형병원 쏠림 현상에서 의료진 역시 넘쳐나는 환자에 치여 사는 ‘을’이지 ‘갑’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들을 미워하기 보다는 그들을 이해하도록 노력해보라고 조언했다. 그 분의 메일에는 어린 환자에 대한 애정이 묻어있었다. 그분께 선생님의 의견과 조언과 감사드린다고 답을 보냈다. 그리고 의료진 역시 우리 환우와 함께 길을 가는 동지로 생각하자고 다짐했다.
그러나 오늘 일을 겪으며 이건 시스템의 문제가 아니라 인성 교육의 문제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레지가 검사실에 들어와 인영이에게 따뜻한 한 마디만 건넸더라도, “너무 걱정마세요 어머니”라고 한 마디만 던졌더라도 우리는 레지를 믿고 기다렸을 것이다. 나는 그가 왜그리 화가났는지 알 길이 없다. 자신의 실력을 알아주지 않아서 그런건지, 부족한 실력에 스스로 짜증이 났는지, 아니면 그런것 하나 제대로 못해 호출하냐는 교수의 질책이 두려웠는지 알수없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레지의 손길은 의술이 아닌 서툰 기술로 비쳤다는 점이다. 적어도 아픈 아이를 둔 부모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한 지인이 말했다. 오늘은 엄마아빠에겐 힘든 날이었지만 인영이에게는 짜장면 먹은 날로 기억될 것이라고. 오늘 힘들었으니 내일은 덜 힘들 것이다.

인영이는 오늘 많이 울었다. 울다 지쳐 잠들고, 베갯잇에는 빠진 머리카락이 수북했다. 저녁때는 오늘 먹은 전부인 스파게티를 다 토했다. 감기 기운도 있는지 콧물도 나왔다. 기사를 쓰기 위해 기자실과 병실을 오가면서 분주히 하루를 보내고 나니 시차적응은 사치였다. 12시간의 낮 병동 입원을 마치고 인영이는 짜장면 두 그릇을 먹고(타이어 펑크까지 나며 병원까지 와서 우리 가족에게 저녁을 사주신 민경동 차장님 고맙습니다..) 잠들었다. 인영이도 우리 부부도 참 힘든 날이었다. 그만큼 내일은 덜 힘들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된다.

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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