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보다 특종을 좇던 기자였습니다. 2016년 초 3살 딸아이가 급성백혈병 진단을 받고서야 ‘아빠’가 됐습니다. 이후 인영이의 투병 생활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땅의 모든 소아난치병 환우와 아빠엄마들을 응원합니다.


며칠 전 인영이가 척수 검사를 받던 날 썼던 글(http://media.daum.net/society/others/newsview?newsid=20160906004722700)을 보고 한 의사 분께서 장문의 메일을 보냈다. 레지던트들의 고단한 일상과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이해해달라고 하는 내용은 이해할 수 있었지만 ‘레지’라는 표현에 대한 문제제기에는 당혹스럽고 황당했다. 그 의사는 ‘레지던트’를 ‘레지’라고 줄인데 대해 “레지라는 표현은 병원에서 아무도 쓰지 않는 표현입니다. 레지는 다방에서 종업원을 줄여 칭하는 표현 아닙니까? 저는 병원에서 딱 두 번 들어봤습니다. 평범한 직장인이 한 번. 기자가 한 번”이라고 말했다.

기자들은 줄임말을 쓰는데 익숙해있다. ‘전시작전권’을 앞에 쓴 뒤에는 전작권,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라고 표현한 뒤에는 사드라고 쓰는 것처럼 말이다. 레지던트라는 단어가 자꾸 반복돼 기계적으로 레지라고 줄여 표현했다. 만약 그 레지던트가 남자였더라도 나는 레지라고 줄여 썼을 것이다. 뒤늦게 기사 댓글을 보니 본질은 없어지고 레지라는 표현에 꼬투리를 단 댓글이 넘쳐났다. 나는 졸지에 여혐론자가 돼 있었다.
'나는 아빠다'를 연재하는 것은 의료진들을 불편해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나와 비슷한 처지의 엄마아빠들과 그 아이들이 이 글로 조금이라나 위로와 힘을 받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쓰는 것이다.

원고지 10매는 족히 넘을 듯한 그 의사의 메일과 비슷한 시각에 또 하나의 메일이 와 있었다. 자신을 소아난치성 딸을 둔 아빠라며 5~6줄의 짧은 메일을 보내왔다. 그는 “아이가 아프면 부모가 해줄 수 있는게 너무 작다는 것을 뼈져리게 느꼈다”며 “질기게, 정말 질기게 인내하시면 반드시 병을 이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가족을 지키는 것도 아빠의 몫입니다. 아내를, 아이를 지키는 것도 아빠의 몫이더군요. 가끔 힘들때마다 병원귀퉁이에서 눈물을 흘리는 것도 아빠의 몫”이라고 한 뒤 마지막으로 “더 좋은 글로 위로를 해 주지 못해 죄송합니다”라고 글을 맺었다.

그는 죄송하다 했다. 사과할 사람은 아빠가 아닌 의사 같은데 아빠가 죄송하단다. 병원 측이 불편할 수 있는 글을 올릴 때마다 주변에서 물어본다. 병원에서 어려워할 것 같다고. 하지만 반 년 넘게 지켜본 결과, 그들은 나를 귀찮아 할 뿐 어렵거나 힘들어하지 않는다. 또 나를 어려워하고 인영이가 다른 환아들보다 더 관심을 받기 위해서 ‘나는 아빠다’를 연재하는 것은 아니다. 이 글로 인해 아픈 아이를 둔 부모와 그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위로받고 힘을 내라고 쓰는 것이다. 나는 죄송한 부모들과 뻣뻣한 목을 가진 의사들을 수없이 보고 있다. 레지라는 표현에 발끈하는 의사들이 늘 ‘죄송한’ 엄마아빠들을 그만큼이라도 생각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다음부터는 ‘레던’이라고 줄여 표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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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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