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온의 영화이야기]<87>애거사 크리스티의 영화 기사의 사진
추리소설의 여왕 애거사 크리스티의 걸작을 원작으로 한 영화 두 편이 리메이크된다는 소식이다. ‘오리엔트특급 살인사건(Murder on the Orient Express)’과 ‘검찰측 증인(Witness for the Prosecution)’. 눈이 핑핑 돌아가는 액션 위주의 요즘 범죄영화에 질린 고급 혹은 옛날 취향의 추리영화 팬들에게는 이보다 반가운 소식이 없다.

이 두 작품은 영화화된 수많은 크리스티의 작품 가운데 늘 1, 2위를 다투는 명작이다. 시드니 루멧이 1974년에 만든 ‘오리엔트~’는 셜록 홈즈에 필적하는 크리스티의 명탐정 에르퀼 포와로가 나오는 작품이다. 포와로 역의 앨버트 피니를 비롯해 초호화 캐스트로도 큰 관심을 모았다. 또 빌리 와일더가 연출한 1957년작 ‘검찰측 증인’은 명탐정이 등장하지 않는 법정 추리물로서 마를렌 디트리히와 찰스 로턴의 명연기가 극찬을 받았다.

그런데 20세기 폭스가 리메이크하는 이 두 편의 영화는 각각 한사람이 주연 감독을 맡을 예정이라고 한다. ‘오리엔트~’는 ‘제2의 로렌스 올리비에’로 통하는 케네스 브래너, ‘검찰측 증인’은 배우와 감독 겸업 활동을 활발히 벌이고 있는 벤 애플렉이다. 브래너는 이미 ‘헨리5세(1989)’ ‘토르(2011)’ ‘신데렐라(2015)’ 등으로 연출능력을 인정받았고 애플렉 역시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아르고(Argo, 2012)’로 감독으로서도 명성을 떨쳤다. 브래너는 포와로 역을 맡을 예정이지만 애플렉은 주연이라는 것만 알려졌을 뿐 무슨 역할을 맡을지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의 영화에서는 늘 주요 역할을 담당했던 전례에 비추어 오리지널에서 찰스 로턴이 연기했던 노련한 변호사역을 맡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오는 11월에 크랭크인해서 2017년 11월 개봉 예정인 ‘오리엔트~’는 그러나 아직 넘어야할 산이 많을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무엇보다 오리지널에 견줄만한 톱스타들을 얼마나 많이 데려오느냐가 관심의 초점이다. 피니 외에 리처드 위드마크, 존 길거드, 숀 코너리, 앤소니 퍼킨스, 마이클 요크, 잉그리드 버그먼, 로렌 바콜, 웬디 힐러, 바네사 레드그레이브, 재클린 비셋 등 그야말로 기라성 같은 대배우들이 총출동한 오리지널을 능가하지는 못해도 적어도 그에 못지않은 톱스타들이 출연해야 관객의 기대에 맞출 수 있을 텐데 과연 가능할까. 이미 안젤리나 졸리가 출연요청을 거부했다는 소식마저 나오고 있는 판에.

이 두 작품의 리메이크 소식과 함께 그간 영화화된 무수한 크리스티의 작품들이 떠올랐다. 일찍이 1928년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한 크리스티 원작 영화는 모두 36편. 영. 미 외에 프랑스 소련 인도 영화까지 포함해서다. 1938년에 시작된 TV물까지 합하면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영상화된 크리스티의 작품들은 대개 세 부류로 나뉜다. 크리스티가 창조한 벨기에 출신 명탐정 에르퀼 포와로가 출연하는 작품들과 영국 시골 마거릿 미드 마을의 노처녀 할머니 명탐정 미스 제인 마플이 나오는 작품들, 그리고 명탐정이 등장하지 않는 일반 추리영화들이다. 그리고 굳이 하나 더 추가하자면 크리스티가 쓴 희곡을 원작으로 한 것들도 있다. 크리스티는 간혹 소설 외에 추리 희곡도 썼다. 이를테면 나중에 언급할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는 소설 ‘10개의 인디언 인형’을 희곡화한 것으로 양자의 결말이 다르다. 이에 따라 각각 소설과 회곡을 바탕으로 한 영화들도 결말이 다르다. 그런가 하면 오리지널 희곡 ‘쥐덫(Mousetrap)’은 1952년 런던의 웨스트엔드에서 초연된 이래 지금까지 공연이 계속됨으로써 역사상 최장기 공연 연극으로도 유명하다.

포와로 영화로는 예의 ‘오리엔트 특급살인사건’ 외에 피터 유스티노프가 포와로로 나온 ‘나일강에서의 죽음(Death on the Nile, 존 길러민, 1978)’과 ‘죽음과의 약속(Appointment with Death, 마이클 위너, 1988)’이 유명하다. 또 미스 마플 영화의 대표작으로는 마거릿 러더포드가 미스 마플역을 맡았던 ‘Murder, She Said(조지 폴록, 1961)’와 앤젤라 랜스베리가 마플로 나온 ’깨진 거울(Mirror Crack’d, 가이 해밀턴, 1980), 그리고 마플역을 맡은 노장 배우 헬렌 헤이스의 마지막 작품이기도 했던 ‘거울살인사건(Murder with Mirrors, 조지 엑스타인, 1985)’을 들 수 있다.

그리고 명탐정들이 등장하지 않는 일반 추리영화의 대표작으로는 ‘검찰측 증인’ 외에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And Then There Were None, 르네 클레르, 1945)’가 가장 유명하다. 원작소설이 발표될 당시인 1925년 영국판 소설 원제였던 ‘10개의 검둥이 인형(Ten Little Niggers)’ 또는 미국판 제목 ‘10개의 인디언 인형(Ten Little Indians)’으로도 널리 알려진 이 작품은 65년 조지 폴록, 74년 피터 콜린슨, 89년 앨런 버킨쇼가 계속 리메이크했고, 2014년에는 데이빗 아이어가 아놀드 슈워체네거와 샘 워딩턴을 기용해 놀랍게도 액션물로 ‘개작’하기도 했다.

특기할 것은 크리스티 원작 영화들은 대부분 호화 캐스트가 출연했다는 점이다. 글쎄, 톱스타들이 크리스티의 이름에 이끌려 출연을 결심했는지는 몰라도 덕분에 영화팬들의 눈을 즐겁게 했다. 이를테면 ‘나일에서의 죽음’에는 베티 데이비스, 데이비드 니븐, 매기 스미스, 미아 패로 등이 모습을 보였고 ‘죽음과의 약속’에는 존 길거드, 로렌 바콜, 캐리 피셔, 파이퍼 로리, 헤일리 밀스 등이 나왔다. 또 ‘깨진 거울’에는 엘리자베스 테일러, 킴 노박, 토니 커티스, 록 허드슨 등이 얼굴을 내밀었으며 6대 제임스 본드 피어스 브로스넌은 이 영화로 데뷔했다. 이와 함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에는 배리 피츠제럴드와 월터 휴스턴, ‘열개의 인디언 인형’ 74년판에는 리처드 어텐보로, 올리버 리드, 샤를르 아즈나부르, 엘케 좀머 등이, 89년판에는 도널드 플레즌스, 허버트 롬, 브렌다 바카로 등이 출연했다.

그러나 이처럼 호화찬란한 출연진 말고도 크리스티의 작품들은 독자나 관객의 의표를 찌르는 기막힌 반전(反轉)을 비롯해 지적 유희를 즐기고 지적인 만족감을 줄만한 요소가 많다. 셜록 홈즈마저 액션활극의 히어로(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로 변신시킨 것처럼 단세포적 활동사진 같은 액션 범죄영화만 만들지 말고 두뇌를 자극할 수 있는 크리스티의 작품을 포함한 명작 추리소설들이 더욱 많이 영화화 또는 리메이크되기를 고대한다.

김상온(프리랜서 영화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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