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은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그럴 땐 주로 만화책을 펼쳐 놓고 따라 그렸습니다. 학창시절엔 대부분 혼자 밥을 먹었습니다. 소년과 대화했다는 사실을 자랑거리로 삼는 이도 있을 정도였답니다. 소년은 혼자 있는 동안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세월이 흘러 소년은 청년이 됐고, 청년은 아이들을 위한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상수역 4번 출구로 나와서 좁은 골목길을 따라 들어가면 ‘스튜디오 썸띵’이라는 작은 편집숍이 나옵니다. 이곳을 운영하는 이동희(34)씨의 이야기입니다.

스튜디오 썸띵 전경

 동희씨는 어렸을 적 드래곤볼이라는 만화책을 좋아했습니다. 틈만 나면 드래곤볼에 나오는 장면을 따라 그렸습니다. 화가가 되고 싶었답니다. 동네 작은 미술학원에 다녔습니다. 그림을 계속 그리고 싶었지만 집안 형편이 여의치 않았습니다. 학교 점심시간에 도시락 뚜껑을 열면 항상 ‘3치’가 들어있었답니다. 김치 멸치 참치. 교실에 냄새가 풍길까봐 혼자 도시락을 먹었습니다. 예고에 가고 싶었지만 부모님은 그런 동희씨를 만류했습니다. TV를 켜면 밥 로스 아저씨가 캔버스에 그림을 그린 뒤 “참 쉽죠?”라며 기만했습니다.

 미련이 남았습니다. 집에서 8정거장이나 떨어진 미술학원을 찾아가 기웃거렸고, 붓을 슬쩍 한 적도 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결국 미대에 진학합니다. 그림을 그리려면 돈을 벌어야 했습니다. 미술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고, 구로공단에 있는 시계공장에서도 일했습니다. 초등학교 때는 혼자 만화책을 따라 그리고, 중·고등학생이 돼서는 혼자 도시락을 먹었던 동희씨는 대학생이 돼서도 일을 하느라 친구들과 어울릴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도 좋아했던 여자는 있었답니다. 졸업할 때까지 한 여자만 좋아했습니다. 사람 대하는 데 서툴렀던 그는 그 여자 앞에 서면 속이 울렁거렸습니다. 이 남자가 짝사랑했던 이야기를 꽤 오랜 시간 들었지만 여기에 남기진 않겠습니다. 보기 드문 순정파입니다. 차분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이어가다가 가끔씩 빙긋 웃었는데 미소가 참 선해보였습니다. 지금 만나고 있는 여성은 없답니다. 혹시 몰라서 적습니다.

스튜디오 썸띵 반지하 카페에 앉아 있는 이동희씨의 모습

 대학 졸업을 앞두고 게임회사에 취직했습니다. 출근시간은 오전 8시 30분인데 7시면 회사에 도착했습니다. 성실해야 한다는 강박은 그의 삶에 껌처럼 들러붙어 있었습니다. 그런 그가 회사를 그만둡니다. ‘내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스며들자 그는 사표를 냅니다.
 그 뒤 서울 용산구 효창동에 ‘썸띵인마이하우스’라는 스튜디오를 차리고 아이들을 위한 그림을 그립니다. 그의 그림을 보면 동화처럼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어린 시절을 외롭게 보낸 그의 의식 속에 어쩌면 따뜻함에 대한 갈증이 쌓여있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난해 7월 상수동에 ‘스튜디오 썸띵’을 차립니다. 여기에 가면 동희씨처럼 따뜻한 그림을 그리는 작가들의 작품을 볼 수 있습니다.

동희씨가 그린 아이들을 위한 그림

 스튜디오 썸띵의 반지하 공간에는 카페가 있습니다. 고개를 최대한 깊숙이 숙이고 계단을 내려가야 합니다. 찾는 사람이 별로 없는 오래된 박물관 같은 느낌입니다. 페인트가 벗겨진 허름한 벽면엔 착한 사람 눈에만 보이는 그림도 걸려있습니다.(저는 한 폭의 아름다운 수채화를 아주 또렷하게 봤습니다.)
 가끔 강아지가 내려와 박물관의 경비원처럼 카페 안을 휙 둘러보고 갑니다. 이 강아지의 이름은 단비입니다. 평소엔 2층에 앉아 있는데 손님이 문을 열면 짖기 시작합니다. 깜짝 놀라는 손님도 여럿 봤습니다. 그래도 목줄을 채우진 않습니다. 동희씨가 단비와 함께 지낸지는 7년 정도 됐습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던 그에게 아마 단비는 누구보다 소중한 친구였을 겁니다.

스튜디오 썸띵의 문이 열리자 2층에 있던 강아지 단비가 고개를 빼꼼 내밀고 있다

 많이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밥 로스도 아이와 동물을 사랑했습니다. 그의 집에 우연히 들어온 다람쥐나 새를 돌보는 걸 좋아했다고 합니다. “참 쉽죠?”라고 반복해서 말했던 것도 아이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서였겠죠. 여러모로 밥 로스와 닮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림이 왜 좋아요?
 “그냥 그림을 그리면서 살고 있다는 것 자체가 좋아요. 나만의 스타일로 그린 작품을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주면 더 할 나위 없겠지만 현실적으로 그건 어렵겠죠. 어린 시절 무작정 만화책을 펼쳐놓고 따라 그렸던 것처럼 저는 무언가를 그리고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해요.”

sotong203@kmib.co.kr


더 보기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