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보다 특종을 좇던 기자였습니다. 올해 초 3살 딸아이가 급성백혈병 진단을 받고서야 ‘아빠’가 됐습니다. 이후 인영이의 투병 생활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땅의 모든 소아난치병 환우와 아빠엄마들을 응원합니다.


두 달 전 쯤 인영이가 항암치료를 받기 위해 입원해있을 때 옆 병상에 인영이보다 2~3살 많아 보이는 남자아이가 들어왔다. 할머니와 함께 입원한 첫날, 아이는 빵을 먹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다. 백혈병 환아들이 먹을 수 있는 빵은 완전 밀봉돼 있어야 하는 등 엄격한 기준이 있어서 간호사선생님의 허락을 받고 먹어야 한다. 그런데 아마도 당장 허용된 빵이 없었는지 아이는 울먹울먹 거렸다.

다음날에도 아이의 노래는 끊이지 않았다. 그리고 아이는 하루 종일 고민에 빠져 있었다. 할머니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며 심각하게 다음날 먹을 음식을 정했다. 소아 무균병동에서는 다음날 식단을 고를 종이를 나눠준다. 스파게티나 볶음밥 중 택 1, 계란후라이나 김 중 택 1 같은 식이다. 아이의 하루 중 가장 중요한 일은 식단을 정하는 일 같았다. 또, 자신이 선택한 음식을 남김없이 다 먹고, 또 배고프다고, 과자가 먹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다. 우리 부부는 옆 병상에서 그 아이의 목소리를 들으며 먹고 싶은 게 많은 모양이라며 조용히 웃음을 짓곤 했다.
어머니가 죽은 아들을 안고 있다. 아들은 열여덟살에 전장에서 죽었다. 독일 작가 케테 콜비츠는 실제 자신에게 있었던 아픔을 조각했다. 작품을 만들며 그녀가 흘린 눈물이 느껴지는 듯 하다.

인영이가 1주일의 치료를 마치고 퇴원할 즈음에 그 아이가 재발해 입원했다는 것을 알았다. 인영이처럼 항암치료차 짧은 기간 입원했다 퇴원하는 부모들은 오랫동안 입원해있는 아이들과 그 부모들에게 괜히 미안한 마음에 조용히 퇴원 절차를 밟는다. 인영이가 그 먹성 좋고 건강해보이던 아이 옆에서 퇴원할 때는 왠지 더 마음이 찹찹했다. 3년여에 걸친 길고 고단한 항암치료를 마치고 이제 다 나았다며, 다른 아이들처럼 뛰어 놀고 마음껏 먹고 싶은 것 먹일 수 있겠다고 생각한 그 아이의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늘, 잊고 지냈던 그 아이가 하늘나라로 갔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아이의 얼굴은 잘 떠오르지 않는데, 빵 노래를 부르던 아이의 통통 울리던 목소리는 기억 속에 남아있다. 그 아이가 하늘나라에 가서는 맛있는 빵을 많이 먹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하늘나라 식단에는 곱빼기 메뉴가 있어 그 아이가 먹고 나자마자 배고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영화 ‘부산행’에서 아빠는 마지막 기관차에서 자신의 몸을 던져 어린 딸을 구한다. 아마 대부분의 부모들은 그런 선택의 순간이 오면 영화 속의 아빠처럼 행동할 것이다. 그런데, 아픈 아이를 둔 부모들은 몸을 던질 기회조차 없다. 내 딸 대신, 내 아들 대신 항암과 조혈모세포 이식의 부작용을 견딜 수 있다면, 내 아이의 등허리에 꼽는 골수·척수 대바늘에 내가 대신 찔릴 수 있다면 좋으련만, 우리 부모들은 그냥 손을 잡아주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제 그 아이의 부모님은 잡아줄 손조차 없어지게 된 것이다. 그 부재의 슬픔과 고통을 감히 상상할 수 없어 여기에 아무런 위로의 말을 적지 못하겠다. 그저 그분들을 위해 한 줌의 눈물로 기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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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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