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온의 영화이야기]<88>북한 핵과 핵전쟁 영화 기사의 사진
북한이 5차 핵실험을 했다. 우리와 세계가 인정하든 안하든 북한의 핵 보유는 기정사실화됐다. 한국의 어느 대통령은 북한이 핵을 가질 의사도 능력도 없다고 단언하면서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면 내가 책임지겠다고 떵떵거렸지만 책임지기도 전에 죽어버렸다. 그런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았으니 오늘날 북한이 핵 대국 행세 하는 것을 보면서 전전긍긍하는 것도 우리 국민들의 자업자득이겠으나 그 얘기는 그만두자. 엎질러진 물 주워 담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

그보다는 북한이 핵 보유국으로 묘사된 영화 얘기나 해보자. 미국의 ABC-TV가 방영한 특집드라마 ‘사이언스 픽션의 대가들(Masters of Science Fiction)’ 중 한 에피소드인 ‘각성(The Awakening)’. 스티븐 호킹이 소개자 역할로 나와 로버트 하인라인, 할란 엘리슨 등 SF소설의 대가들 작품을 각 60분짜리 TV영화로 만든 4부작 중 하나인 ’각성‘은 그러나 타이틀과는 달리 대가급이라고는 할 수 없는 하워드 패스트라는 작가의 원작을 영상화한 것이다.

그 내용은 지구를 찾은 정체불명의 외계인과 조우한 지구 각국이 외계인의 충고랄지 협박에 의해 핵무기를 모두 버리고 평화시대를 맞는데 나중에 정체를 드러낸 그 외계인은 지구인들에게 익히 잘 알려진 날개 달린 ‘천사’였더라는 것. 그런데 여기서 눈길이 가는 부분은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간주하고 중국 러시아 파키스탄과 함께 미국에 맞서는 것으로 묘사한 대목이다. 즉 외계인의 실력 과시로 인해 중국을 맹주로 한 예의 4개국은 스스로 핵무장을 해제하겠다며 미국에도 동일한 조치를 요구하지만 미국은 그것이 미국만 빈손으로 만들려는 이들 4개국의 속임수일 수도 있다는 의심을 떨치지 못해 요구를 거부한다. 그러자 중국 등 4개국은 미국에 핵 공격을 해서라도 핵무장을 해제시키겠다고 협박하고 세계는 핵전쟁 일보직전의 위기에 빠진다.

결국 사태는 평화적으로 해결되지만 그런 스토리보다는 이 시리즈의 제작년도가 2007년인데도 그때 벌써 미국(의 방송)이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치부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중국이 핵을 보유한 북한을 자신의 한 팔 또는 방패로 삼을 수도 있다는 설정이 섬뜩하다. 중국이 북한의 핵무장을 말로만 반대한다고 설레발치면서 실제로는 내버려두거나 심지어 부추기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도 혹시 영화 같은 사태-중국의 대미(對美) 핵 협박이나 핵 과시-에 대비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북핵과 직접 관련된 것은 물론 아니지만 핵(전쟁)에 관한 영화들은 핵시대가 도래한 이래 냉전기를 거치면서 무수히 쏟아져 나왔다. 대부분은 그다지 눈길을 끌지 못했으나 몇몇 작품만은 작품 자체도 인정을 받고 큰 관심을 끈 데다 그 파급효과도 대단히 컸다.

우선 ‘페일 세이프(fail safe)’. 페일 세이프란 발사된 핵무기가 더 이상 비활성화될 수 없는 한계지점을 의미한다. 나는 조지 클루니 등이 주연한 2000년판 TV영화를 먼저 보고난 뒤 그것이 리메이크임을 알고 1964년에 나온 헨리 폰다 주연의 오리지널 영화를 찾아봤다. 흑백으로 제작된, 그래서 냉전시기의 암울함이 더욱 돋보였던 이 영화를 봤을 때의 충격이라니.

내용은 이렇다. 실수로 미국의 전략폭격기 편대가 소련에 대한 핵 공격 임무를 띠고 소련으로 향한다. 미국은 실수를 깨닫고 폭격기 조종사들에게 임무 중단 명령을 내리지만 조종사들은 그것이 소련의 속임수라고 믿고 굳건히 돌진한다. 결국 미국은 자국 공군에 격추명령을 내리지만 실패하고 나중에는 소련에 폭격기들의 방향, 속도, 성능 등 중요한 정보를 주면서까지 격추시키도록 한다. 그 결과 대부분의 폭격기는 소련의 방공망에 걸려 격추되지만 한 대는 끝끝내 살아남아 모스크바에 핵폭탄을 투하, 모스크바를 지도에서 지워버린다.

미국 대통령의 고뇌는 여기서부터다. 자,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미국의 공격이 실수든 뭐든 소련의 보복 핵공격으로 이어질 것은 자명하고 그 경우 인류는 멸망할 게 틀림없고 보면 선택지는 하나 밖에 없다. 미국도 똑같은 정도의 손실을 입을 만큼 자해(自害)하는 수밖에. 결국 미국 대통령은 뉴욕에 핵폭탄을 투하하라고 공군에 명령한다. 영부인이 마침 뉴욕을 방문하고 있었음에도.

조지 클루니가 모스크바에 핵폭탄을 떨어뜨리는 미 공군 조종사로, 리처드 드레이퍼스가 미국 대통령으로 나오는 TV영화(60년대 냉전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특이하게도 원작 영화처럼 흑백으로 만들어졌다)도 좋았지만 헨리 폰다가 고뇌하는 미국 대통령으로 열연한 시드니 루멧 감독의 오리지널 영화는 더욱 좋았다. 인류를 절멸시킬 수 있는 핵무기가 단순한 착오나 실수에 의해 지구를 핵 불구덩이로 만들 수 있음을 이 영화는 뚜렷이 각인시켜주었다.

이와 비슷한 내용이 스탠리 큐브릭의 걸작 ‘닥터 스트레인지러브(1964)’지만 그것이 블랙코미디였던데 비해 ‘페일 세이프’는 실수나 착오에 의한 핵전쟁의 위기를 정면으로 진지하게 다뤘다는 점이 다르다. 다만 ‘닥터 스트레인지러브’가 같은 해 먼저 개봉하고, 1인 다역의 주연을 맡은 피터 셀러즈의 호연에 힘입어 비평과 흥행 모두 크게 성공하는 바람에 ‘페일 세이프’는 거꾸로 관객동원에 실패했다. 하지만 이제 와서는 ‘페일 세이프’ 역시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와 마찬가지로 컬트 걸작으로 추앙받고 있다.

‘페일 세이프’ 못지않은 명작 핵전쟁 영화가 ‘그날이 오면(On the Beach, 1959)’이다. 명장 스탠리 크레이머가 연출하고 그레고리 펙, 에바 가드너, 프레드 아스테어 등이 주연한 이 영화는 단연 반핵영화의 최고봉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착오에 의해 핵전쟁이 발발한다는 것은 ’페일 세이프‘와 같은 아이디어지만 영화는 ’페일 세이프‘와 달리 핵전쟁이 끝난 후의 상황을 묘사한다. 핵전쟁이 끝나고 유일하게 살아남은 미국의 핵잠수함이 생존자들을 찾아 방황하지만 결국 아무도 찾지 못하고 승무원들 스스로도 방사능으로 인해 서서히 죽어가는 그 상황의 깊디깊은 절망감은 관객의 숨을 막히게 한다.

핵 영화는 아니지만 핵전쟁으로 인해 지구가 원숭이 세상으로 변하고, 파괴된 채 반쯤 바닷가 모래에 파묻힌 자유의 여신상이 느닷없이 떡하니 눈앞에 나타났던 라스트 신의 반전(反轉)이 일품이었던 ‘혹성탈출(Planet of the Apes, 프랭클린 J 샤프너, 1968)’을 생각나게 한다. 파괴된 자유의 여신상을 바라보던 찰턴 헤스턴이 “인간아, 망할 놈의 인간들아. 결국 저질러버렸구나”하고 오열하던 그 심사가 ’그날이 오면‘을 보면서 고스란히 느껴진다.

다만 ‘그날이 오면’은 핵전쟁으로 인한 세계의 종말, 인류 멸망이라는 거대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 탓에 암울한 절망감과 비관의식은 압도당할 만큼 크지만 핵전쟁의 참상을 현실적으로 느끼기는 힘들다는 측면이 있다. 이에 비해 핵전쟁을 누구나 피부에 와 닿는 참상으로 느끼게 해주는 영화가 있다. ‘더 데이 애프터(The Day After)’. ABC가 1983년에 방영한 TV영화다. 하지만 그 현실적인 묘사에서 어느 영화보다 인상적이다. 이 영화는 방영 당시 미국에서만 1억명이 시청해 이제까지 TV영화 중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핵전쟁의 전모보다는 미국 캔자스주 로렌스라는 도시 주민들에게 닥친 핵전쟁의 참상을 주로 다뤘다.

그러나 핵무기 폭발로 인한 신체 손상 등을 묘사한 영상이 너무 잔혹해서 많이 삭제되거나 톤다운 됐다고 한다. 이를테면 사람들이 장작처럼 불에 타는 모습이라든지 인간의 육체가 한순간에 숯으로 변하거나 하얀 뼈만 남는 장면, 눈알이 녹아내리고 얼굴과 신체 피부가 녹아 늘어지는 장면, 날아오는 유리 파편에 찔려 죽거나 사지가 절단되는 장면, 사람들이 충격파에 부서진 건물에 깔려 납작해지거나 건물과 함께 날아가는 장면, 대피소에 숨어있던 사람들이 불폭풍이 몰아치자 질식해 숨지는 장면, 방사능 낙진으로 인한 원자병에 걸린 인간들의 비참한 모습, 그리고 식량과 생필품을 얻기 위한 생존자들 간의 목숨을 건 사투, 약탈, 폭동 등.

그런 참상이 북한의 김정은 생각 여하에 따라서는 우리의 현실이 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 그런데도 정치권과 정부가 그 잘난 정파 간의 정치적 이익을 따지느라, 대외경제 고려하느라, 주변국 눈치 보느라 나 몰라라 하고 있대서야 말이 안 된다. 5000만 국민의 목숨이 달린 일이다. 좌고우면할 필요도 여유도 없다. 김정은 일당 제거를 비롯해 모든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 핵전쟁을 다룬 영화들을 보면서 제발 정신 좀 차리기를.

김상온 (프리랜서 영화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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