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보다 특종을 좇던 기자였습니다. 올해 초 3살 딸아이가 급성백혈병 진단을 받고서야 ‘아빠’가 됐습니다. 이후 인영이의 투병 생활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땅의 모든 소아난치병 환우와 아빠엄마들을 응원합니다.



인영아,
아빠는 이 세 글자를 써놓고 한동안 네 이름만 뚫어지게 쳐다봤구나.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 노트북을 열었는데, 마치 첫사랑 소녀에게 아무 고백도 못하고 얼굴만 빨개진 소년이 된 기분이야. 그래, 차근차근 하고 싶은 말들을 내려놓아볼게. 아빠는 지금 너에게 사랑 고백을 해야 잠들 수 있을 것 같거든.
집중항암치료 마지막날, 인영이가 아빠 팔뚝에 뽀로로 반창고를 붙여주면서 즐거워하고 있다.

너는 아빠 인생에서 가장 힘들 때 찾아왔어. 2012년 여름, 아빠는 6개월의 파업 막바지에 일주일동안 단식을 하는 등 심신이 만신창이가 돼 있었어. 누가 툭 건들이면 항상 우는 울보였기도 했고. 그때 즈음 네가 엄마 뱃속으로 들어왔다는 소식을 들었어. 미안하지만 그땐 기쁘기는 했지만 ‘삶의 무게가 더 늘겠구나’라는 철없는 생각도 했단다.
이듬해 봄. 네가 태어나고 너를 데리고 세종으로 내려오면서 비로소 아빠는 네 미소에 푹 빠져들었어. 넌 파업둥이이자 세종둥이였고, 아빠의 절망과 희망의 시기의 징검다리였어. 너는 언니만큼 오목조목한 예쁜 얼굴은 아니지만 ‘볼매’ 스타일이거든.
인영이가 아끼는 아가들이다. 이불을 덮어주고 잘 돌봐주는데 가끔 머리채를 쥐고 목욕시킨다며 물고문을 하곤한다.

그런데 아빠하고 엄마는 나빴어. 너를 외할아버지에게 맡겨놓고, ‘먼 훗날 너희들을 위해서 이러는 것’이라는 착각에 정신없이 일에만 몰두했거든. 올해 초, 네가 알 수 없는 고열에 일주일동안이나 힘들어할 때도, 그 지친 눈빛으로 출근하는 엄마아빠를 잡을 때도, 아빠는 휑하니 뒷모습을 보여주기 바빴으니까.
뒤늦게 너를 데리고 대전의 소아전문병원을 거쳐 대학병원 응급실에 가서 네가 백혈병일 수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아빠는 너무 무서웠어. 애써 엄마에게 별일 아닐 거라고 했지만 그날 밤 아빠는 혼자 훌쩍훌쩍 울었어. 그리고 다음날 서울의 큰 병원으로 와서 백혈병 확진 판정을 받고 난 이후엔 너에게 너무 미안했어. 아빠는 ‘아빠’보다 ‘기자’였거든. 정말 ‘아빠’라면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을 거라고, 다 아빠 탓이라고 생각했어. 지금도 여전히 아빠는 많이 미안해. 왜 미안하냐고? 그냥 미안해. 그냥...
치료가 끝난 뒤 병원 앞 우동집에서 조촐한 집중치료종료 축하파티를 열었다. 세 여인의 웃는 모습에 새벽부터 운전한 피로가 싹 풀린다.

항암치료가 시작되고 네가 까까머리가 됐을 때 아빠는 비로소 아빠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어. 그리고 아빠를 닮지 않은 멋진 놈과 너를 결혼시키는 것을 아빠 생의 목표로 정했단다. ‘뭣이 중한디’란 질문의 답을 찾았다할까. 이후 아빠 주변의 많은 분들이 우리를 응원해줬고, 엄마아빠는 힘을 냈어. 엄마보다 강하진 못해 네가 바늘에 찔릴 때 쳐다보지 못하고, 장난감을 몰래 사주는 정도였지만, 아빠는 평생 한 기도보다 더 많은 기도를 했단다.

물론 아빠엄마보다 100배 강했던 건 인영이 너란다. 수백번의 채혈, 어른도 참기 힘들다는 골수검사와 그 독한 항암약을 너는 너무나 잘 견뎌줬어. 그러면서 부쩍부쩍 잘 자라주기까지 했으니 아빠는 너무 고마워할 수밖에 없어. 처음 아팠을 때 “아빠, 회사(갔어), 언니, 학교(갔어)”, “빠빵(타고), 집(에 가자)”이란 말밖에 못하던 네가 지금은 뒷좌석에서 차가 조금만 흔들리면 “아빠 운전 똑바로 해~”라고 타박을 줄 정도니. 또 “엄마, 아까(너는 모든 과거는 다 아까라는 단어로 표현한단다) 아이 아플 때 왜 회사 갔어?”라는 말로 엄마를 미안해 울게 만들기도 할 정도로 우리를 들었다 놨다 하지.
내게 안겨 병원에 실려왔던 인영이가 어느새 치료가 끝나면 자기 가방을 끌고 간다. 아빠는 네 삶의 걸음걸이 뒤에 항상 있을테다.

인영아, 오늘 아빠가 이렇게 기쁜 마음으로 편지를 쓰는 건 만 8개월 동안 진행됐던 네 집중항암치료 기간이 끝났기 때문이야. 오늘 너를 태워 병원을 오갈 때, 아빠는 정밀 검사를 위해 서울의 큰 병원으로 향했던 지난겨울이 떠올랐어. 너는 고온에 창백했고, 엄마와 아빠는 아무런 말도 없이 차를 몰아 응급실 간이 병동에서 만 하루를 쪼그린 채 버텼었어. 이후 자고 있는 네 숨소리를 들어야 안심했던 무서웠던 밤들, 전신마취에 고개를 떨구던 네 얼굴, 척수주사에 발버둥치던 네 몸짓...
그런 것들을 아빠는 오늘 오가면서 차창 밖에 모두 버리고 왔단다. 아직 2년 동안의 긴 항암유지치료가 남아있지만 아빠는 인영이가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잘 이겨낼 거라고 확신해. 아빠는 지난 8개월 동안 인영이가 누구보다 강한 아이라는 걸 알았거든.
지난 2월초 무균병동에 입원했을 때. 어디가 아픈지 제대로 표현도 못했던 인영이가 이제는 뒷자석에서 "아빠 운전좀 똑바로 해"라고 훈수를 둔다.

아빠가 연애편지를 쓴 건 군대시절이 마지막이니 근 20년만인 것 같아. 소싯적 한때, 아빠는 연애박사여서 연애에는 ‘밀당’이 중요하다는 걸 아는데 네 앞에서는 무너져 내려. 비밀을 고백하자면 매일 밤 엄마하고만 자려는 네가 아빠를 침대 밑으로 내쫓지만, 네가 잠들면 몰래 네 옆에 누워 네 팔다리를 만진단다. 네 손으로 아빠 볼을 비비고, 네 다리를 아빠 다리에 올려놓다 네가 깰까싶으면 후다닥 침대 밑으로 내려온단다. 아마 네가 이 편지를 읽을 때는 건강해져서 학교에도 다니고, 친구들과 어울려 놀이터에서 마음껏 뛰놀고 있겠지? 그리고, 이 편지는 아빠 신문사 서버에 수십년 동안 저장돼 있을 테니 네 결혼식 전날에도 읽게 할 테야. 왜냐고? 다른 놈에게 가기 전 마지막으로 아빠의 짝사랑을 기억해달라는 소박한 바람이랄까.

인영아, 앞으로 아빠 인생에 어떤 선택의 순간이 올지라도 항상 1순위는 네가 될거야. 아빠가 진심으로 사랑해.

2016년 9월24일 너 태어난 날 이후 두 번째로 기쁜 날 아빠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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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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