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소위 잘나가는 이들에 대해서만 이야기합니다. 대통령 국회의원 장관 검경 연예인 스포츠 스타를 소개하는 기사는 많지만 평범한 이웃들의 삶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듭니다. 이들도 다 사연이 있고, 소중한 이야기를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상수동 사람들'은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교수는 대학에서 강의를 마친 뒤 곧장 식당으로 달려가 손님 안내를 했습니다. 낮엔 교수, 저녁엔 식당 안내 직원. 사회적 평가가 완전히 다른 두 신분을 넘나드는 생활은 2년 넘게 이어졌습니다. 세종시 전동면 운주산 자락에 위치한 뒤웅박고을. 장인들이 우리나라 전통 장을 직접 담그고, 이 장으로 음식을 만드는 곳입니다. 교수는 뒤웅박고을 설립자의 딸이기도 했습니다. 명색이 교수인 딸에게 손님 응대를 시키는 아버지가 가끔은 원망스럽기도 했습니다.

세종시 전동면 뒤웅박고을에서 만들어진 전통 장이 담긴 항아리들

 딸 딸 아들. 손유성(47·여)씨는 1남2녀 중 둘째입니다. 장을 만드는 사람치고 고집 세지 않은 사람 없다던데, 아버지도 자식들에게 엄격했습니다. 유성씨와 네 살 터울인 남동생은 지금도 아버지 전화를 받을 때 무릎을 꿇는답니다.
 아버지는 둘째 딸이 첼로를 치길 바랐지만 유성씨는 그림을 그리는 게 좋았습니다. 흰 종이만 보이면 펜을 꺼내들고 그림으로 채워 넣었답니다. 아버지를 설득하기 위해 고등학교를 그만 둔 적도 있습니다.
 결국 대학에서 실내디자인을 전공했고 대학원까지 마친 뒤 대학 강단에 섰습니다. 최근에 만난 유성씨는 꽤 오랜 시간동안 아버지의 고집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누가봐도 그 아버지에 그 딸이었습니다. 유성씨 역시 오랫동안 장을 가까이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손유성씨가 반려견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있다.

 2013년 3월 뒤웅박고을에 세종전통장류박물관이 들어섰습니다. 넉 달이 지나 유성씨는 이 박물관을 총괄하는 역할을 맡게 됩니다. 식당 손님들로부터 2년 넘게 장맛에 대한 현장의 소리를 들었고, 따로 장인들을 찾아가 장에 대해 공부했던 게 박물관 운영에 도움이 됐습니다.
 박물관 관장이 됐으니 유성씨도 박물관협회에 새로 가입을 했습니다. 그곳 회원들은 다들 70~80대 어르신들이었고 유성씨만 40대 초반이었습니다. 호칭은 ‘교수님’에서 ‘아가’로 바뀌었습니다. 장에 대해 알면 알수록 뒤웅박 장이 박물관에만 머물러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서울로 올라옵니다.
 지난해 5월 상수동 좁은 골목에 주택을 개조해 음식점을 차립니다. 지난 9월 15일에 소개해드린 이동희씨가 운영하는 편집숍 ‘스튜디오 썸띵’의 바로 맞은편입니다. ‘빈의 왈츠’. 콩(Bean)이 춤춘다는 뜻입니다. 모든 음식은 뒤웅박고을의 전통 장을 이용해서 만듭니다.

빈의왈츠 전경

 인적이 드문 곳에 있다보니 오다가다 가게를 보고 들르는 손님은 별로 없습니다. 워낙 곰살맞은 성격이라 한번 들렀던 손님이 계속 찾는 편입니다. 친해진 사람들도 많습니다. 어떤 손님은 새로 사귄 여자친구를 소개시켜주려고 일부러 찾아왔고, 지방으로 회사를 옮기면서 작별인사차 들른 손님도 있었습니다. 여기서 소개팅을 한 뒤 결혼을 하게 된 커플도 둘이나 됩니다. 수다 떠는 모녀마냥 유성씨에게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전하러 오는 젊은 여성 손님도 있습니다. 교수에서 아가로, 지금은 다시 아가에서 엄마가 된 느낌이랍니다.

손유성씨가 음식을 만들기 위해 뒤웅박 장이 담긴 항아리를 열고 있다.

 공교롭게도 어렸을 때부터 친구였던 남편 역시 실내디자인을 합니다. 음식점 안쪽에 남편의 작업공간이 있는데 여기엔 강아지 ‘딱이’가 살고 있습니다. 딱이는 주인과 떨어져 있으면 몹시 불안해합니다. 분리불안증 때문에 식당에 나올 때도 딱이를 집에 혼자 둘 수가 없답니다. 저녁 9시만 되면 짖어서 식당 운영에 방해가 된 적도 있습니다. 그래도 이제 가족이 된 딱이를 돌보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은 마음이 따뜻하다고 합니다. 정말 그래보였습니다.

빈의왈츠 가게 안 남편의 작업공간에 있는 강아지 '딱이'의 모습

 1809년에 빙허각(憑虛閣) 이씨(李氏)는 가정살림에 대해 적은 책 ‘규합총서’를 썼습니다. 이 책엔 이런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만일 장맛이 사나우면 비록 진기하고 맛난 반찬일지라도 능히 잘 조화치 못할 것이니 어찌 중하지 않겠느냐.’
 요즘 많은 사람들이 뭣이 중허냐고 묻던데 이 책을 보면 장맛은 정말 중헌 거 같습니다. 유성씨는 사람들이 점점 장맛을 잃어가는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습니다. 아마도 공장에서 만들어진 인스턴트 장이 워낙 많다보니 이렇게 된 것이겠죠. 시간이 흐르면서 원래 가지고 있던 고유의 성질을 잃어가는 것…. 비단 장 뿐만은 아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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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tong203@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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