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보다 특종을 좇던 기자였습니다. 올해 초 3살 딸아이가 급성백혈병 진단을 받고서야 ‘아빠’가 됐습니다. 이후 인영이의 투병 생활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땅의 모든 소아난치병 환우와 아빠엄마들을 응원합니다.


백혈병 환아를 둔 부모들에게 정기적으로 돌아오는 골수검사(골검)는 트라우마다. 치료 중간 중간 재발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과정일 뿐 아니라 검사 자체가 어른도 참기 힘들만큼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오늘은 인영이가 네 번째 골검을 받는 날이었다. 집중항암치료를 마치고 2년간의 유지치료에 들어가기에 앞서 재발 여부를 확인하는 중요한 검사다. 새벽부터 자는 애를 깨워 서둘러 집을 나섰다. 인영이는 요즘 매일 밤 “엄마 내일 병원 가?”라고 물어본 뒤 안 간다는 말을 들어야 안심하고 잔다. 어젯밤 우리부부는 거짓말을 했고, 새벽에 일어난 인영이는 옷을 갈아입히자 “병원 가는거야?”라고 울먹였다.
골수검사를 마친 인영이가 12시 넘어 첫 끼니인 쥬스를 먹고 있다. 골검이후 지혈을 위해 4시간 누워있어야 한다.

오전 10시 검사시간이 돌아왔다. 아이들은 고통을 면하기 위해 대부분 수면마취를 받는다. 겁에 질린 인영이를 검사실에 안고 들어갔다. 마취액에 인영이 고개가 떨거지고 검사실 침상에 눕힌 뒤에야 오늘 인영이 시술을 하는 수련의(레지던트)가 지난 번 척수검사 때 장갑을 내던지고 나간 수련의라는 것을 알았다.(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0909702&code=61121111&sid1=prj&sid2=0043)

나는 검사 선생님을 바꿔달라고 말할까 잠시 고민했지만 아무 말 없이 검사실을 나왔다. 유난 떠는 보호자로 또 병원에 찍힐까 두려운 마음이 있었고, 그 수련의도 난처해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내 결정은 잘못이었다.

검사실 문은 닫혔고 아내와 난 차단막이 가려진 검사실 앞에서 기도하는 심정으로 서 있었다. 불안한 눈빛의 아내에게 별 일 없을 것이라 위로했지만 10분 쯤 지나 검사 도중 마취가 깼는지 인영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검사실 문을 열고 들어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보통 15분이면 검사실에서 나왔던 윤영이는 30분이 지난 10시30분에야 나왔다. 우리는 함께 나온 간호사에게 평소보다 왜 이리 길었냐고 물었지만 검사가 조금 길어질 수 있다는 말만 들었다.
새벽에 잠이 깬 인영이는 병원 가는거냐며 울먹였다. 어젯밤 병원 안간다고 거짓말을 한 엄마아빠를 원망하는 눈빛이었다.

11시 넘어 마취에서 깬 인영이는 지난번 3번의 골검 때보다 더 고통을 호소했다. 12시가 넘어 누워있는 아이에게 첫 끼니인 주스와 죽을 먹였다.
오후 2시, 귀가 전 인영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담당 교수 진료를 받으러 갔다. 교수는 진료 도중 “조직검사는 못했다면서요?”라고 물었다. 우리 부부는 어안이 벙벙해 “네?”라고 되물었다. 교수는 “얘기 못 들으셨어요? 조직검사가 안됐으니 검사비용이 조금 줄어들 겁니다.”라고 했다. 교수는 골수검사가 2개로 나눠 진행되는데 하나를 못한 것이니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찜찜한 마음에 진료실을 나왔고, 오전에 인영이 상태를 살펴 본 젊은 교수를 만났다. 경위를 묻자 그 수련의가 검사 도중 이 교수에게 조직 추출이 잘 되지 않는다고 전화로 물어왔고, 이 교수는 무리하지 말고 검사를 마무리하라고 지시했다고 했다.
나중에 인터넷을 뒤져보고 골수검사는 골수액 검사와 조직검사 2가지로 진행되는걸 알았다. 조직검사는 골수(뼛)조각을 조금 떼 조직 내 암세포가 있는지 검사하는 것인데 인영이는 골수액만 체취된 것이다. 검사시간이 평소보다 배 가까이 오래 걸린 것도 이 때문이란 그제서야 알게 됐다.
아픈 아이들이 수련의 대상이 되는 현실을 바꿀 수는 없는 것일까. 어린이 병원비 무상복지보다 더 급한 것은 고통을 줄이는 복지다.

조직검사를 꼭 안 해도 큰 문제는 없다는 설명을 들었지만 이전 3번의 검사에서 이런 적은 한번도 없었다. 그리고 할 필요가 없는 검사를 넣어놓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검사가 중간에 어려움이 있었고, 결론적으로 실패한 것을 아픈 아이의 보호자인 우리 부부는 검사가 끝나고 4시간 뒤에야 ‘우연히’ 안 것이다. 담당 교수의 말투는 왜 그걸 아직도 모르고 있냐는 뉘앙스였다.
물론 검사가 잘 안될 수 있다. 그러나 검사를 담당한 수련의든, 함께 검사실에 들어간 간호사든 검사 직후 이런 사실을 보호자에게 설명을 해줘야 하는 것은 ‘환자 알 권리’ 운운을 떠나 기본 상식의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인영이를 검사한 그 수련의는 검사가 끝나고 2번 정도 인영이 침상을 지나갔지만 아무 말 없이 지나갔다.

나는 그 수련의 개인의 잘잘못을 따지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건 아니다. 이건 근본적으로 시스템의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그게 의사 분들이 말하는 의료보험 저수가 때문인지, 아니면 기획재정부 공무원들이 강조하는 의대 정원을 늘리지 않는 의사 집단 이기주의 때문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다만 왜 우리 아이들이 3개월마다 바뀌는 수련의의 수련 대상이 되어야 하는지, 그 현실이 암담할 뿐이다.
왜 우리 아이들은 숙련된 의료진에게 골수 검사를 받을 수 없는 것인지, 왜 아픈 아이의 부모들은 3개월마다 바뀌는 수련의들 중 누구누구가 안 걸렸으면 좋겠다며 마음 졸여야하는 것인지, 그것이 어떤 원인 때문인지 간에 이 시스템은 바뀌어야 한다. 뜻있는 사회시민단체들이 중증 어린이 병원비 국가지원 운동을 벌이고 있다. 아이들이 치료비 걱정 없이 치료하는 복지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아이들이 덜 고통 받는 복지가 먼저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인영이는 차에서 오는 내내 울었고, 얼마나 아픈지 그렇게 좋아하던 장난감 백화점 갈 수 있겠냐는 물음에도 “아파서 내일 가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집에 와서는 걷지도 못하고 내내 기어 다니다 잠들었다. 아빠는 자책감에 불면의 밤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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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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