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보다 특종을 좇던 기자였습니다. 올해 초 3살 딸아이가 급성백혈병 진단을 받고서야 ‘아빠’가 됐습니다. 이후 인영이의 투병 생활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땅의 모든 소아난치병 환우와 아빠엄마들을 응원합니다.



항암 유지 치료 첫날이었다. 인영이는 오늘을 시작으로 매일 자기 전 항암 약을 먹어야 하고 주 1회 혈액검사, 월 1회 항암주사를 맞아야 한다. 그렇게 2년이 지나면 인영이의 항암 치료는 종결된다.
골수검사 이후 간수치가 급격히 높아져 항암치료가 연기됐다. 심란한 엄마아빠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인영이는 신이 났다.

3일간 예정된 첫 유지치료에 집중하기 위해 국감 기간임에도 염치불구하고 휴가를 냈다. 새벽 5시30분에 출발해야 하는데 30분 늦게 출발했더니 평소보다 1시간이나 더 걸렸다. 개천절 공휴일 다음날의 낮 병동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혈액질환 환자로 넘쳐났다. 10시가 되서야 침상을 잡고 가슴포트에 바늘을 꼽아 혈액검사를 하고 항암 주사 투약을 기다렸다. 평소보다 투약 지시가 늦어져 이상타 했는데 전문 간호사님이 오셔서 인영이 간수치가 300이 넘어 오늘은 항암을 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호텔방에 들어와서 지난주 득템한 뽀로로 계산기로 마트 놀이를 즐기고 있다. 마트 종업원으로 아르바이트를 해서 노벨상 수상자가 되길.

정상 간수치가 30 미만이니 인영이는 10배가 넘는 셈이다. 지난주 골수검사 받기 전까진 간수치가 정상이었는데 골검 이후 간수치가 급격히 뛴 것이다. 오후에 간수치를 내리는 수액을 맞고 담당 교수님 진료를 봤다. 무리하지 말고 금요일 혈액 수치를 확인하고, 괜찮으면 다음주 월요일부터 유지치료를 시작하자고 했다.
수액치료받으며 그림 그리기. 엄마아빠닮아 그림엔 소질이 없어보인다.

오후 5시, 집에 돌아갈 힘도 없고 이미 병원 앞 호텔에 체크인을 해둔 터였다. 집에 가자는 인영이를 달래 호텔에 왔다. 예정대로 치료가 진행되지 못해 상심한 엄마아빠 마음은 아는지 모르는 지 인영이는 7층 엘리베이터에 내리자마자 신나게 뛰어간다. 어딘지 알고 가나 싶었는데 749호에 멈춰서더니 들어가자고 한다. 우리 방은 755호인데 이상타 했는데 “아까(인영이는 모든 과거의 일을 '아까'로 표현한다) 있던 우리 집”이란다. 생각해보니 한달 전 우리가 묵었던 방이다. 이런 말 안하려고 했는데 우리 딸 천재다. 오늘 하루의 피로와 근심이 싹 풀렸다. 왠지 노벨상 한번 받을 것 같은 예감. 아내 말대로 이제 한고비 넘었다 싶고, 이제 좀 괜찮아 진거 같으면 여지없이 뒤통수를 치는 병마지만, 이 순간순간이 가장 행복한 시간임을 깨닫는다. 오늘 하루 해피엔딩이다.

[관련기사 보기]
▶'나는아빠다' 모아보기


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


더 보기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