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피디아 이미지 캡처.

미술 작품, 비싸면서도 실용성은 없다고?

“봐봐. 그 아줌마 맞지? 에르메스 가방 들었잖아. 저 비싼 걸 남편이 사 줬나봐!”
여성들이 남편보다 더 좋아한다는 게 명품 가방이다. 한국 여성의 유난한 명품 사랑이야 루이뷔똥을 ‘3초(秒) 백’ ‘지영이 백’이라 부르는데서 알 수 있다. 오죽 사랑 받았으면 길 가다 3초마다 하나씩 눈에 띈다고, 지영이라는 이름만큼 흔하다고 그런 별명이 붙었을까.

명품 가방 하면, 어떤 장면 하나가 떠오르며 실없이 웃음이 난다. 10 년 전의 일이다. 지금은 대학생, 재수생으로 있는 두 아들이 초등학생일 때다. 주식 잔고를 탈탈 털어 4가족이 유럽 4개국 패키지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말이 유럽여행이지 ‘저가 여행사’ 7박 9일 프로그램에 이탈리아, 스위스, 프랑스, 영국 네 나라를 돌았다. 스위스는 반나절 머물고 인증샷을 찍었다(짧은 일정의 핑계를 대면 직장인이다보니 휴가를 길게 내기 어려운 점도 있었다.)

패키지라 여러 부류의 단체 손님이 있게 마련인데, 60대 초반으로 보이는 부부가 있었다. 귀국길, 런던 히드로국제공항에서였다. 면세점 구경(입이 벌어지는 가격 때문에 다들 그야말로 구경만 했다)을 하다 이륙시간이 다 돼 게이트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눈이 아연 한쪽으로 쏠렸다.

그 부부다. 남편이 가방을 사준 모양이다. 토트백을 걸치고 남편의 팔짱을 낀 아내의 표정은 귀부인이라도 된 듯 득의에 차 있었다. 걸음걸이마저 달라져 있었다. 행복해하는 표정을 짓는 아내 옆에서 남편은 인생의 가장 큰 의무를 마침내 수행해 낸 것처럼 뿌듯해 했다. 일행 중에는 친구끼리 계를 해서 온 또래의 여성들도 있었다. 명품 가방을 든 동년배 여성을 바라보는 그 부러운 표정들이라니.

한국 사회에서 명품 가방은 그런 것이다. 여자들에게는 ‘신데렐라 구두’를 신은 듯한 신분 상승감을, 남자들에겐 재투성이 신데렐라를 궁궐로 데려오는 왕자가 된 기분을 선사한다. 그러지 못한 남자라면 명품 가방 이야기만 나오면 한없이 작아지고 마는, ‘21세기 심리적 신분증명서’ 같은 게 명품 가방이다. 그도 그럴 것이, 100만원 안짝에 살 수 있는 프라다는 명품 축에도 끼지 못하며, ‘3초 백’이라 불리는 루이뷔똥만 해도 200만원이 넘고, 에르메스는 싼 게 800만원 정도라니 말 다했다.

가방 가격만 들어도 헉, 하고 입을 다물지 못할 판인데, 그 돈으로 명품 가방 대신에 그림 한점 사는 건 어떠냐고 제안하려고 한다. 명품 가방이나 그림이나 다 저 좋아서 하는 자기만족감 때문에 사는 거라고 하지만 출발이 다르다. 명품 가방은 내가 들고 다니는 걸 남이 알아줄 때 오는 기쁨이 있다. 특히 타인으로부터의 인정 욕구가 강한 한국 사람에게 명품 가방은 어쩌면 최소한의 투자로 가장 확실한 효과를 거둘 수 있는, 타인으로부터 인정받는 방법인지 모른다. 거기다 가방은 가방인지라 실용성이 있으니 일거양득이다.

그림은 어떤가? 실용성도 없는 건 아니다. 거실에 걸어두고 인테리어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문제는 거실에 있는 그림은 남에게 자랑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집안에 둔 금송아지 자랑하는 것과 똑같다. 그림 자랑한다고 자주 집으로 손님을 초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그림은 그렇게 나 스스로 좋아서 사는 자족적인 물건의 성격이 강하다.

그래서 그림을 사는 이들은 많지 않다. 냉장고, TV같은 가정 필수품도 아닌데다 한번에 최소 수백만원을 들여야 하니 덜컥 지갑에서 돈을 꺼내기엔 부담스럽다. ‘교양 사치품’으로 분류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10년 후 돈이 될 그림이라면 어떤가. 그림은 쏠쏠한 투자 상품이 될 수 있다. 주식보다 높은 수익률을 올릴 수 있는 투자 상품이 될 수 있다. 꾸준히 그림을 사 모았는데, 두, 서너 개가 대박이 터져 엄청난 투자 수익을 안겨줬다는 컬렉터도 있다. 5, 10년은 기다려야 하는 참을성이 필요하다지만, 중년이 지나니 깨닫는다. 5, 10년 정말 후딱 간다. 수백만 원 주고 산 그림이 수천만 원으로 올라 자식에 손 안 벌리고도 노년에 유럽 여행을 갈 수 있는 경비가 빠진다면 혹하지 않는가. 좀 더 과감하게 지른 그림 한 점이 10년 후 딸 혼수 자금 밑천이 될지 누가 아는가.

컬렉션을 더 잘 하기 위해 뒤늦게 미술공부에 빠지고, 주말마다 골프장 대신 갤러리를 순회하는 새로운 취미가 생겨나 삶이 풍요로워진다면 이건 또 어떤가. 또 수십 년 모은 컬렉션을 바탕으로 노년에 미술관이나 갤러리를 차리는 등 자신도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인생이 열린다면. 이보다 매혹적인 투자가 있을까.

오르지 않으면 어떤가. 반해서 산 그림이라 그냥 보고 있으면 편안해지고 위로가 된다면. 걸려 있는 것만으로도 집안이 환해지는 장식이 된다면 그것도 좋다. 무엇보다 ‘키다리 아저씨’가 된 기분으로 내가 사 준 그림 한 점이 당장의 생활고, 미래의 불확실성 등 이중고와 싸우며 예술혼을 불태우는 젊은 예술가들에게 격려와 후원이 된다면, 그래서 사과 한 입 베문 것 만큼이라도 메디치가의 기분을 맛볼 수 있다면. 생애 첫 구매한 작품은 이런 모든 가능성을 품은 씨앗이다.
'한국적 인상주의'를 개척한 강요배 작가의 작품 소재 중에서는 호박 그림이 유난히 인기가 있다. '귀덕 호박', 2010년 작. 캔버스에 아크릴, 112x145.5cm. 학고재 갤러리 제공

생애 첫 컬렉션으로 10년 후 인생이 달라진다면?

가장 확실한 구매 가이드는 실전의 경험이다. 그래서 나 역시 사실상의 생애 첫 컬렉션에 도전하고자 한다.

고백컨대, 미술 담당 기자로 일하면서 미술품의 개별 가격에는 평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신문에서 미술품 가격은 최고가 경신 등 뉴스성이 있을 때 기사가 된다. 이를 테면 지난여름에 나온 ‘김환기 작품 전면 점화 54억원… 사상 최고가 경신’ 같은 것들이다. 내가 쓴 전시회 기사에서 다룬 유명작가들의 작품 가격은 알고 보면 싼 게 수천만원이며 대부분 수억원, 수십억원 한다. 그런 가격 문제에는 그 동안 별 관심이 없었다.그러나 구매를 염두에 두니 미술 현장이 달라 보인다. 가격이 우선 들어온다. 주머니 사정 때문이다.

그림을 사겠다는 생각을 한 적은 두어 차례 있었다. 실행에 옮긴 적도 있고 사지 못해 지금도 몹시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사례도 있다. 1994년 신혼 초다. 당시 직장 5년 차였다. 판화 한 점을 사겠다고 했다가 남편과 언쟁을 한 적이 있다. 당시 신도시가 대거 생겨나며 거실 장식용으로 판화가 유행하던 때다. 사려던 판화 가격은 25만원 선. 그 때 우리집 TV가격이 그 정도였던 것 같다. 신혼 주부에게는 크다면 큰, 작다면 작은 금액인데, 남편의 반응이 의외였다. ‘웬 유한 마담이냐’는 투였다. 그랬던 남편의 태도가 180도 달라진 건 남편의 지인이 놀러와 ‘무지몽매’를 벗어나게 해준 덕분이다. 요지는 그림이 감상용을 넘어 투자 상품이 될 수도 있다는 거였다. 지금 재수생 아들 방에 걸려있는 그 판화의 작가는 한 때 TV 교양 프로에도 등장하고 했지만, 지금은 경매에 내놔도 팔릴까 싶을 정도로 인기가 시들해졌다.

또 한번의 경험은 1995년 5월의 일이다. 당시 화랑협회가 화랑의 문턱을 낮추겠다며 유명작가부터 신진작가까지 모든 작가의 작품을 파격적으로 일괄 100만원에 판매하는 행사를 가졌다. 서울과 지방의 117개 화랑이 참여하는 이 행사는 박서보, 이대원, 서세옥 등 낯익은 유명작가의 소품도 100만원에 살 수 있는 기회였다.
그 때 강요배 작가를 알게 됐다. 학고재 갤러리에서 전시가 열렸는데, 기억 속의 그의 유화는 들풀, 파밭, 호박 등을 농촌의 들과 밭의 ‘별 것 아닌 풍경’을 그린 것이다. 유독 나를 사로잡은 건 유화로 그린 파밭이다. 파, 아니 파밭도 미술 소재가 될 수 있구나, 하고 놀랐다. 유년의 따스한 기억도 소환했다. 방학이면 시골 할머니 댁에 놀러 갔다. 할머니가 구부정히 허리 굽혀 일하던 그 밭에서 보던 푸른 파 줄기의 투박함과 넘치는 힘. 농사꾼 아내의 거친 손등 같은 맛이 파에 있었다. 털모자에 달린 방울 같은 파꽃은 조형적으로도 재미있었다.

야외의 꽃이나 풀을 그리더라도 그가 눈길을 준 것은 장미, 양귀비 같은 예쁜 것이 아니다. 베어내야 할 잡풀조차 화폭의 주인공으로 모셨다. 풍경 소재의 민중적 확장이라는 느낌이 와락 들었다. 19세기 프랑스 화가 귀스타브 쿠르베가 그 때까지 초상화의 주인공이던 귀족을 밀어내고 평범한 사람들을 화폭에 담기 시작해 사실주의 시대를 개척한 것처럼 말이다.

문제는 가격이다. 아무리 파격적인 할인이라지만 직장 초년생에게는 부담이 되는 금액이었다. 미술을 담당하던 한참 선배에게 쭈뼛쭈뼛 물었다.
“선배, 화랑에선 3개월 할부는 안 되나요?
조금 생각하던 눈치를 보이던 선배가 말했다.
“무리가 되면…. 음, 안사는 게 낫지 않을까.”
더는 얘기를 못 꺼냈다. 결국 내 것이 되었을 수 있었던 강요배 그림은 그렇게 날아갔다. 사고자 하는 의지가 부족했는지도 모른다. ‘한국적 인상주의 작가’ 강요배는 그 때도 알려진 작가였지만 이후 이중섭미술상 등 여러 상을 수상하며 꽤 비싼 작가가 됐다.

그림을 사는 것, 이건 그래서 열정 못지않게 용기가 필요한 행위이다. ‘지름신’이 강림해야 가능한 일일지 모른다. 주변의 컬렉터들은 말한다. 첫 구매가 힘들어서 그렇지, 한번 사고 나면 계속 사게 된다고. 그러나 생애 첫 컬렉션과 만나는 건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500만원이라는 ‘큰 돈’으로 나는 사실상 생애 첫 작품 구매에 도전한다. 왜 500만원인가에 대해서는 차차 이야기할 것이다. 이 글은 어느 날 내 집에 걸릴 미지의 그 작품을 찾아가는 여행기이자 도전기이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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